이혼이란게 다가옵니다. 2

팡고른곰팡이 작성일 15.02.11 10:4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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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저 눈물 핑도는 조언과 위로 너무 감사드립니다.

용기를 내어 12시부터 새벽 3시까지 대화를 하였습니다. 우리딸은 왜케 잠이 없을까요..?

부모를 많이 못봐서 그런가...싶을땐 또 울컥 하네요.

두리뭉실했던 전편(?)과는 달리 현실적으로 쓰고 조언과..위로를 청해 봅니다.

 

 

대화는 사실 순탄치 않았습니다.

아내는 정말 제가 화가 많이 났던 여행건때 했던 그대로,

괴로워서 더이상은 안되겠다. 일단 이혼하자  라는 의견이었습니다.

괴로움의 원인은 쉬지않고 일해도 나아지지 않는 경제적 상황과...

제가 싫다는..많이 싫다는 부분입니다.

 

 

경제적 상황은 뭐, 별 할 말도 없이 그래도 열심히 살아야지 이혼이 답이 될 순 없다는 것, 아내도 알거에요.

그러겠죠..?

제 대화가 그런쪽으로 향하자 아내의 답변은

그 원망의 화살이 저한테 향한다는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도 아내가 너무 미워 모든걸 끝내자고 한 전과자인지라,

제가 할 수 있는 말이라고는

아이러니 하게도 당신이 '아이 때문에라도' 그러지 말자는 그 말에 여기까지 버텨 왔다고 했습니다.

말하면서 느꼈는데 그 때 그날과 완전 정 반대의 입장이더군요.

그 날 이후 서서히 회복되어가는 마음으로 다시 잘 해 보자는 희망이 생겨났지만,

매일 얼굴한번 보기 힘든 상황에서 뭘 할수 있는게 없었다고 했지만

그 이전에는 좋았냐는 말에 할말을 잃었습니다.

 

오지않는 잠을 청하며 지난 날을 생각해 보았습니다.

 

아내에게 나는 왜 그리 따듯하게 못 대해 주었나. 곰곰히 되세겨 보며 과거로 돌아가 보았습니다.

 

아내는 남다른 처녀 시절을 보냈습니다.

여유롭지 않은 집안의 장녀로 아픈 동생과 12살 가까이 차이나는 여동생이 하나 더 있습니다.

학창시절엔 태권도도 하고 꽤나 싸움좀 했나봅니다. (바뀌는건 없겠지만 이런건 좀 결혼전에 말씀해주세요, 장인어른..)

유달리 돈에대한 집착아닌 집착이 쎄리란건 다들 예상하실 거라 생각합니다.

더욱이 그 집착이란것이, 단순히 없어서가 아니라 없음에서 오는 차가운 현실 때문이라면 더 그랬겠지요.

성격은 원래 그랬는지 위의 이유로 후천적인지 매우 털털하고 거침없었습니다.

왠만한 여자는 아내를 딱 보면 '겁나 쎄보인다' 라고 느꼈다고들 하더군요.

고등학생이던 막내가 학교에서 무시당하지 않게, 무리를 해서라도 이름있는 넓은 아파트에 월세로 살 정도였습니다.

실로, 졸업을 마친 처제는 졸업과 동시에 작은 집으로 이사해 버리고 나서야 집안 현실에 매우 충격이었다..하더군요.

 

제 입장의 감정의 골은 이런 부분에서 시작되었던 것 같습니다.

기억속 첫 상처는 역시...돈이었습니다.

단어 자체는 잘 기억에 없습니다만...(사실 듣는 순간부터 잊으려고 노력했습니다)

이 월급으로 어떻게 사나  라는 뉘앙스였고, 사실 전...5년전 27살 제 연봉 실수령액 24백이 적지만은 않다고 생각했었죠.

그런 뉘앙스가 아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렇게 들리더군요.

순간 확 제 자신의 자존감이 무너짐을 느꼈지만, 아내는 원래 말이 좀 쎄니까...라며 넘겼습니다.

적다면 적은거지, 많다고 자기합리화 하는것도 웃기잖아    라며 ..자기 합리화 하였습니다..

'그런 뜻은 아니겠지' 라며...

그치만 저도 속이 좁다면 좁은 남자라, 그 이후론 왠지 저도 모르게 신경질적으로 변한 듯 합니다.

사소한거에 되려 반응이 약간씩 쎄졌고, 아내도 이때즈음부터 신혼인데도 상처를 받기 시작한 듯 합니다.

 

그 이후로도 잊고 싶어 잊었던 아내의 자존심,자존감을 파내는 말은 몇번 있었으나,

그것이 아내의 의도는 아니었을 것이고, 저 일때문에 되려 제가 일부러 상처를 만들어 낸것이라 해도 할 말 없을만큼

사소한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아내 역시 기억에 없을 것이구요.

처음에 꺼내지 못한 서운함은

그 뒤로도 쉽게 꺼내지 못했고 감정의 골을 깊게 파기 시작했습니다.

그때마다 저라고 가만 있었을까요..  아내도 상처는 깊어갔을 겁니다.

 

그 이후의 티격태격은 저 일이 베이스로 되어 파생된거라 같은 맥락이라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처음엔 치킨 장사 했는데 어찌나 아내와 트러블이 많았는지...

절망적 매출에 뇌는 예민해질대로 예민해졌고, 같이 해왔으면서 서로의 탓을 하기도 했지요.

근데 이때는...자세히 말씀 드리기 뭐 합니다만 전적으로 제가 너무 신경질적이고 아내한테 냉대했던 시기라고 생각됩니다.

위에 말한 서운함이 결국엔 삐져나와 바보같은 공격을 해댔다..라고 할 수 있을 듯 합니다.

 

나한테 왜 이럴까? 라고 생각했을 아내는 그래도 의연히 버텨 주었습니다.

그 모습이 업종을 바꾸고 숨통이 좀 트이며 그제야 보였고 미안하고 안타까운 마음은 쉬이 나지 않는 용기에 가려졌습니다.

용기라기 보다는, 그전에부터 저도 이미 '나한테 왜 이럴까..' 라는 마음이 있었기에 속이 좁아진 탓이겠지요.

 

어느날인가, 아내는 차를 사겠다고 했습니다.

혼전에 2천만원도 겨우...그것도 어머니가 제 월급 강탈로 모아주신 경험이 있는 저는 매우매우 부담 되었습니다.

하지만 나약한 저의 뇌는, 남들 있는데 이정도야 뭐..라며 흐물흐물 사게 되었습니다.

 

사실은,

아버지의 차가 있었습니다.

아버진 차를 안쓰다 시피 하셨고,

관리를 잘 해주신 덕인지 잘 굴러가긴 했고 필요할땐 그 차를 썻고 그것으로 충분하다 여겼습니다.

20년 가까이 된 소나타 2 였지요;;

 

하지만 아내는 창피해 했습니다.

좀 반박해보려 했으나, 20년된 차가 허름하긴 좀 허름했을까요, 게다가 애를 태울건데...

아내의 마음도 이해가 되었기에 돈이 무서웠지만 크루즈를 계약했습니다.

무서움도 잠시, 번쩍번쩍한 새차 보니 좋아라 했지요.

 

아이를 향한 강한 사랑은 그 뒤로 아내도 출근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렇게 크루즈는 아내가 몰았고, 늦게 들어오는 생활이 시작되며 슬슬 서로 다시 트러블이 생겨나곤 했습니다.

아시는 사람은 아시겠지만, 부동산 하는 사람들 돈 꽤나 만지지요.

주변에 타는 차들이 다 그런 차들이라 그런지....아내는 슬슬 크루즈도 좀 창피하다고 여기더군요.

급기야는 오래된 차를 모시는 장인어른께 팔고 그랜져 중고를 뽑더군요.

할부가 120만원 입니다; 저는...엄두가 안나는데,

아내도 벌고 그만큼 버니까 쓸만해서 쓰는거라고 생각..해버렸습니다.

20년은 타야지 했던 차는 1년도 채 안되서 가버렸습니다.

 

명품백도 있지만, 희안하게 제값 보다 더 받고 팔거나 다시 사고 하더군요;;

경제 관리 잘 하니까 알아서 하겠지 라며 터치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명품백 하나 못사주는 절 원망하면 했지 그런 부분은 아내가 잘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차를 안 가지고 나간 날 동료 직원이 태워다 주는 날이면

일부러 근처 이름있는 아파트에서 내려달라고 하고 걸어오기까지 하더군요.

날씨도 추운데 일부러 저러는 아내의 모습에

제 자신이 어찌나 한심하고 옛 상처를 되뇌였는지....

마치 지난 고생을 자랑스럽게 이야기하는 옛날 군시절 병장처럼 말하는 아내의 모습에

저는 어두워지기 시작했습니다.

 

일전부터 아는 성형외과 원장이 반 공짜로 얼굴도 수술해 주곤 했습니다.

그리고 그 원장이 병원 직원들과 (직원들과 아내도 저와 결혼하기 전부터도 친한듯 합니다) 같이 세미나 라며

해외로 가기도 했습니다.

여행한번 못 보내 줬는데 내가 뭐라고 막어...라고 생각했고

한가닥씩 하는 부동산, 병원 원장들을 보고 온 아내는 저와 다른 삶을 사는 듯 하더군요.

바람을 피울지도 모른다는 의심을 하지 않았다면 거짓말이겠지만

절대 내색은 안했습니다.

되려 여행도 못보내주고, 장사에 허덕이며 힘들다 소리만 해대는 저 자신을 저도 원망했습니다.

 

병원 원장 가볍게 봤는데 영어 유창이 하는 모습 보니 사람이 달라보인다는 말을

제 앞에서 말 할땐 딱히 제가 안그래도 될 말 같은데 저는 더욱 자존감이 사라지더군요.

그 뒤로도 별 말 아닌데도 제 머리속에선 나 자신을 찌르게 되는 생활은 계속 되었습니다.

여전히 아내는 늦게왔고,

그러다 또 해외를 나간다니 그제서야 터졌던게 제가 이혼하자고 했던 첫번째 사건이었지요.

 

그 뒤로도 생각 나는건 많습니다만...

어디서 사주 보고 오더니 아내랑 제가 서로 안맞는 사이라며 그걸 또 저한테 말한다던가..

저는 그런 말 들을땐 진짜 세상 무너지는 것 같더라구요.

 

이런 이야기 아내에게 했냐구요..?

용기를 내서 말해보려던 것도 있고 차마 무너지는 자존감에 미쳐 말하지 못한것도 있습니다만,

사실 다 말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대화 시작부터 막히곤 했습니다.

아내는 제가 말하는 건건마다 사유를 붙혔고, 저는 그 사유를 이해하지 못했습니다.

이런 돈 못버는 남자라 미안하다 까지도 말해봤지만

되돌아 오는 말이 그런데 어쩌겠냐,별 수 없지 않냐 그냥 살아야지.. 라는 말일땐 뭐....더이상 해볼수 있는건 없었습니다.

 

이후로는 상처를 곱씹는게 버릇이 되었는지 모든게 상처가 되더라구요.

값비싼 명품 가방, 난 뽑아볼 엄두도 몬낸 차, 몇백이나 드는 여행 누가 보내줘서건 자기가 가고싶어서건 가는 사람

이런사람 생일선물 뭘 사줘야 해요?

몇싶만원 현찰로 주면 그래도 생일 챙겨줬다고 좋아라 하더라구요.

근데 전 그 모습에 또 맘이 텁텁해 집니다.

 

그리고는 또 일하는 곳 사장이 매번 가는 부부여행에 같이 껴서 가기도 하며

 

저는 아이를 보며 그냥... 힘내야지 힘내자 그러고만 있었습니다.

 

실로 아내가 뭐 돈을 펑펑 써제껴서 경제적 위기가 오지는 않았습니다.

더 불리면 불렸지 아내는 그런 수완은 또 끝내줍니다.

그 모습에 반했기에 한 결혼이기도 하구요.

 

제 사업은 여러가지 이유로 슬슬 하향세를 타기 시작했고

아내도 괴로워 했습니다.

문자 그대로 쉬는날 없이 벌어봐야 빚은 그대로고, 더 늘어나기도 하니까요.

평상시엔 잘 되다가, 와 인제 좀 풀리나 싶더니 세월호 사고 뒤 5개월정도인가...정말 처참했습니다.

 

용기내어 힘내보자는 제 말이 사장이 같이 보내준 공짜 여행앞에 그리도 초라할 수 없더군요.

 

 

 

 

 

 

 

 

여기까지가 지금의 제 상황입니다.

그리고 금전적 절망감을 아내는 저한테 화살이 돌아가고 있다고 하고 있습니다.

더 할 말이 없더군요.

 

이전글 적었지만 저는 휴무날에도 일부러 나가 상사눈에 일부러 띄여 열심히 하는 모습을 보이기도 했습니다.

뭐 사실 업무가 너무 많아 다 끝내지 못해 휴무날 나가는 거였지만 전 그렇게라도 이용했지요.

 

하지만 그 행위가 쉬는날이여서 쉬는 동기들을 깍아내리는 행위였단걸 전 나중에야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동기들이, 그 쉬는날에 탱자탱자 놀았는지,

아니면 집안 사정으로 어쩔 수 없이 쉬어야만 했는지

더 절망적인 이유로 쉬어야 했는지...

그런건 상관없이 동기들은 별 점수를 못따고 비정규직으로 남아버렸고 곧 다 퇴사했지요.

 

지나고 후회하면서 그때는 뭘 그렇게 자랑스럽게 여겼는지...한심합니다.

뭐 아닐수도 있지만.. 모두 아니라곤 못하니까요.

 

아내에게 상처를 준 방식이 이런 식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또 저 역시 상처를 받은게 이런 식인지도 모르죠.

 

 

우울한 글 이지만

격려해주신 분들과 그 조언을 새겨들어 알수없는 힘이 생겨서

아내에게 고백해 보려고 글을 남깁니다.

좋은 결과를 보여주지 않을 글일지도 모르지만, 또는...용기가 없어 보여주지 못할지도 모르지만,

 

어쨌든 지난 5년 제 기억속 결혼생활은 이랬습니다.

 

아내의 마음은 이해가 가지만 의사표현도 못하는 딸아이에게 엄마를, 또는 아빠를 잃게 하기도 싫고,

이혼해서 서로 열심히 아이를 본다한들,

부모님이 이혼했구나 를...저도 받아보지 못한 슬픔을 주고싶지않아 힘이 닿는곳 까진 힘써보려 합니다.

 

매 분 매 초 제가 싫다는 아내의 말이 숨통을 조이지만...  그래도 힘을 내봅니다.

제 자신이 말했듯...후회없이 쏟아 봐야겠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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