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아일보]
“한반도 고화질로 훑는다”
폭우가 쏟아지는 전쟁터.
부대를 이끄는 대대장은 저 멀리 흐릿하게 보이는 작은 숲이 왠지 불안하다. 전진을 멈추고 고민하는 그에게 긴급 무전이 날아왔다.
“숲 속에 적의 탱크 부대가 숨어 있다. 포격을 시작하겠다.”
곧 아군의 포탄이 쏟아졌고 적 부대는 괴멸됐다. 무인정찰기가 ‘고해상도 영상레이더’로 찍은 사진이 부대원들의 목숨을 살린 것이다.
현대전에서 무인정찰기와 인공위성의 고성능 관측 장비는 대단한 위력을 갖고 있다. 적 부대의 위치부터 이동, 잠복까지 손바닥 보듯 훤히 들여다본다. 특히 영상레이더(SAR)는 기존 레이더와 달리 땅 위의 물체를 3차원 사진으로 볼 수 있다. 얕은 바다를 운항 중인 잠수함까지 알아낼 수 있다.
현재 최고 수준의 SAR는 미국의 무인기 프레데터나 글로벌호크에 달려 있는 30cm급. 백과사전 크기의 큰 책까지 식별할 수 있다.
국내에서도 최근 40cm급 고해상도 SAR가 나왔다. 가민호 한국산업기술대 전자공학과 교수팀과 삼성텔레스는 7일 40cm급 합성개구레이더(KPU-STC)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가로 세로 40cm×1.5m 크기의 물체를 구분해 선명한 영상을 보내주는 장치다.
이 연구팀은 최근 진동이 심한 헬기에 이 레이더를 실어 강원 삼척 지역을 촬영하는 데 성공했다. 국내에서 최고 해상도의 SAR는 국방과학연구소가 2004년 개발한 가로 세로 1.5m급 레이더 ‘KOMSAR’였다.
○ 전자기파로 땅 끝까지 훑는다
이 레이더는 밤에는 물론 비 또는 눈이 오는 것과 상관없이 이용할 수 있다. 아무리 구름이 많이 끼어도 사진을 찍는 데 문제가 없다. 빛 대신 전파를 이용해 지상을 보기 때문이다. 레이더에서 쏜 전파는 지상에 있는 물체에 부딪쳐 돌아오는데 이 정보를 읽어 물체의 모양을 본다. 건물의 높낮이, 나무 뒤에 숨어 있는 물체까지 알 수 있다.
가 교수는 “정찰기나 위성에 쓰는 고성능 광학카메라는 날씨 때문에 1년에 30% 정도만 이용할 수 있어 제한적”이라며 “동굴이나 콘크리트 건물에 숨지 않는 한 레이더의 눈을 피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SAR는 지하자원을 찾거나 재난 현장을 파악하는 데도 쓸 수 있다. 물체의 모양뿐만 아니라 토양의 성질을 분석하고 지하수가 얼마나 많이 흐르는지도 알 수 있기 때문이다.
금속은 특히 전파를 잘 반사하기 때문에 금속 자원을 찾는 데 유리하다. 2010년 발사될 아리랑 5호 위성도 1, 2호와 달리 광학 카메라 대신 SAR를 달고 우주로 갈 계획이다.
○ 목표는 10cm급 고해상 레이더
이 레이더는 작은 레이더 안테나를 이용해 거대한 ‘가상 레이더’를 만든다. 비행기에 몇 m 크기의 작은 레이더를 싣고 날아가면서 얻은 정보를 합쳐 수백에서 수천 배 넓이의 사진으로 합성하는 것이다.
비행기가 진동하면 전파신호가 흔들려 영상에 오류가 많이 생기고 정확도도 떨어진다.
이 연구팀은 위성위치확인시스템(GPS)과 고정밀 관성항법장치(INS) 센서로 비행기의 요동을 바로잡는 기술을 개발해 레이더의 정확도를 높였다. 레이더 신호를 모아 고해상도로 합성하는 기술도 개발했다.
세계가 목표로 삼은 건 10cm급 해상도의 SAR다. 사람의 머리도 식별할 수 있다. 현재 일부 나라에서 개발돼 시험 운용되고 있다.
가 교수는 “1, 2년 뒤에 고속 디지털 칩이 개발되면 우리가 만든 레이더의 구조를 조금만 바꿔도 최고 12.5cm급의 영상을 얻을 수 있다”며 “앞으로 우리나라 국토를 아날로그TV에서 고화질TV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