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최강이라는 말을 듣는 미군이 피로증후군을 보이고 있다. 좀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전쟁 피로증후군’이다. 미국은 현재 베트남 전쟁을 제외하고 역사상 가장 오랜 기간 전쟁을 벌이고 있다. 이라크전은 5년째이고, 아프가니스탄전은 7년째이다. 두 전쟁에 참전한 미군의 희생자 수는 갈수록 늘어가고 있지만 두 전쟁이 언제 끝날 지는 아무도 모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라크 전쟁의 경우, 지난 4월 말까지 4063명이 전사했다. 부시 대통령이 2003년 5월 1일 항공모함 에이브러햄링컨호에서 “이라크 전쟁은 2001년 9·11 테러 이후 지금까지 계속돼온 테러와의 전쟁에서 미국이 거둔 큰 승리”라면서 “이라크에서 주요 전투는 종결됐다”고 선언했지만, 5년이 지난 현재도 전쟁은 계속되고 있다. 미국은 지난해 6월 이라크 조기 안정화를 위해 미군 규모를 15만8000명으로 늘렸으며, 오는 7월까지 일부 증원된 병력을 철수시켜 14만명을 주둔시킬 예정이다. 특히 부시 대통령은 지난 4월 11일 오는 7월 이후로 예정됐던 단계적 병력 철수 계획을 무기 중단키로 결정했다. 이에 따라 내년 1월 새 대통령이 취임할 때까지 미군의 이라크 주둔 규모는 14만명을 유지할 것으로 보인다.
아프간 전쟁의 경우, 지금까지 미군 494명이 목숨을 잃었다. 미국은 2001년 아프간의 탈레반 정권을 붕괴시킨 이후 국제 테러조직인 알 카에다 조직원들과 탈레반 잔당 소탕을 위해 1만여명 정도의 병력만을 주둔시켜 왔다. 하지만 탈레반의 저항이 거세지면서 2005년 미군 병력을 2만5000여명으로 늘렸다. 그럼에도 불구, 탈레반은 더욱 공세를 강화했고 이에 따라 현재 미군은 3만2000명으로 불어났다. 미국은 또 내년 7000명 규모의 병력을 아프간에 추가 파병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부시 대통령은 지난 4월 나토 정상회담에서 2009년 아프간 주둔 미군 병력을 상당수 늘리겠다고 약속한 바 있다. 아프간에서 미군이 계속 증강되는 이유는 탈레반의 저항이 강화되는 데다 동맹인 나토 회원국들이 더 이상의 병력을 파견할 의지가 없기 때문이다. 자칫하면 아프간 전쟁도 이라크 전쟁처럼 ‘미국만의 싸움’이 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두 전쟁은 이처럼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군사력을 보유한 미국에 악몽이 되고 있다. 특히 직접 전쟁을 수행하는 미군은 눈에 보이지 않는 유·무형의 피해를 입고 있다. 무엇보다 미 국방부는 증파할 병력 부족으로 각종 모병 대책 마련에 부심하고 있다. ‘군 입대=이라크 파견’이라는 인식이 확산되는 바람에 미국 젊은이들의 자원 입대 기피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당장 14만명의 주둔 병력 수준을 유지하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자원병으로 충족되지 않으면 주 방위군을 차출해야 하지만, 순환근무 원칙 등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자타 공인 ‘세계의 경찰’이라는 미군이 심각한 병력 부족 상황에 빠진 셈이다. 현재 미 육군의 모병률은 매달 목표치의 20~40%씩 모자라고 있다.
현 모병제에서 미국 젊은이들은 만 17세가 되면 부모 동의하에 군 입대가 가능하다. 올해 17세가 되는 미국 젊은이 420만명 중 군 복무 자격을 갖춘 인구는 30% 미만이다. 이러한 추세는 2015년까지 계속될 전망이다. 군 복무자격자들 중 고교졸업 혹은 검정고시 합격 등 신원 관련 요건을 갖추고, 체중과 건강진단 및 범죄 기준 등의 검사에 합격해야 입대할 수 있다. 이런 자격을 갖춘 젊은이 중 3분의 2는 대학 진학을 계획하고 있다. 군 입대를 우선적으로 고려하는 인원은 매년 40만명 미만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녀의 군 입대에 찬성하는 부모나 후견인의 비율이 역사상 최저 수준인 39%에 불과하다는 점이다. 부모들이 자녀의 전사 등을 우려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러다 보니 병력 충원이 더욱 어려울 수밖에 없다.
미 국방부는 이에 따라 군 입대 지원자에게 상당한 혜택을 제공하는 등 모병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다. 신규 입대하는 남녀 모두에게 복무 기간에 따라 최고 4만5000달러의 주택 구입자금을 지급하고, 사업에 필요한 자금 마련, 대학 학자금 지급 등 인센티브를 부여하고 있다. 또 지난해 6월부터 신병 모집 연령상한을 기존 35세 미만에서 42세 미만으로 올리고, 몸무게 기준을 낮추는 등 신체 조건이나 교육, 범죄경력 등에 대한 기준도 완화했다. 이와 함께 부시 행정부는 이민자 출신 신병에게 3년 복무 기간을 채우지 않고도 즉시 시민권을 신청할 수 있도록 했다. 2001년 9·11 테러 사건 이후 미군 입대를 통해 시민권을 취득한 이민자는 2001년 750명에서 지난해 4600명으로 대폭 늘었다. 부시 행정부는 연간 100여만명으로 추정되는 합법 이민자들에게 시민권 조기 발급을 미끼로 한 모병 활동을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미 국방부는 또 젊은 여성의 입대를 대대적으로 추진하고 있다. 현재 전체 미군 중 여군은 15% 정도인데, 이를 20% 정도로 늘리려는 계획이다.
특히 해병대가 대대적인 여성 모병에 나서고 있다. 전투 임무가 많은 해병대는 여군 복무 비율이 6.2%에 불과하다. ‘소수 정예 남성(a few good men)’이라는 슬로건을 내세웠던 해병대가 ‘소수 정예 여성(a few good women)’을 찾아 나선 셈이다. 해병대는 또 예비역들을 현역으로 다시 입대시키는 강제 동원령까지 내렸다. 해병대는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가장 전투가 격렬한 곳에 병력을 파견하다 보니 전투 병력이 크게 부족한 실정이다. 해병대는 예비역 중 최대 2500명을 현역으로 동원, 12개월에서 18개월 동안 현역으로 복무시킬 계획이다. 해병대 사병은 현역에서 4년을 복무한 후 4년간 예비역으로 남는데, 현재 예비역은 3만5000여명이다.
미군이 현재 직면한 가장 큰 문제점은 전체적으로 입대 자원의 질이 나빠지고 있는 데다 전투력까지 크게 떨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 범죄 경력자들이 크게 늘어나면서 각종 부작용이 나타나고 있다. 미 국방부는 현재 범죄 경력자에 대해 “다시는 범죄를 저지르지 않겠다”는 약속을 받고 입대시키고 있다. 이 같은 서약 입대자 수는 2006년 15%를 차지했지만, 지난해 18%로 증가했다. 전체적으로 신병 10명에 3명꼴로 서약 입대를 받은 것이다. 해병대의 경우 2006년 10월부터 지난해 6월까지 서약 입대한 신병의 69%가 마약 복용 경험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육군의 경우도 지난해 입대한 신병 중 전과기록 보유자가 1만2057명이나 됐다. 전과자들의 경우 군 생활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할 뿐만 아니라 탈영 등 각종 범죄를 저지르는 비율이 일반 병사보다 높다.
전체 병사의 평균 학력과 지능지수가 떨어지다 보니 최첨단 무기를 다루는 능력도 떨어지고 있다. 과거에는 고졸 이상이 90%였지만, 현재 충원되고 있는 신병은 76%에 불과한 형편이다. 또 자살률도 급증하고 있다. 지난해 자살한 병사는 모두 121명으로, 1980년 관련 통계가 시작된 이래 가장 높은 수치를 보였다.(워싱턴포스트 1월 31일자) 또 지난해 자살을 기도하거나 자해한 수는 2100명으로, 2002년 350명에 비해 무려 6배나 증가했다.
이처럼 자살이 급증하고 있는 것은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전쟁이 장기화하고 있는 데 따른 측면이 강하다고 군 의학 전문가들은 분석했다. 실제로 과거에는 해외 주둔 장병들의 자살률이 상대적으로 낮았지만 최근 들어 상황이 바뀐 것으로 나타났다. 지난해의 경우 이라크나 아프간에서 자살한 병사가 미국 본토보다 두 배 이상 많은 것으로 조사됐다. 이 때문에 미 국방부는 이라크와 아프간의 복무 기간을 15개월에서 12개월로 줄이기로 했다. 자살하는 병사가 늘어나고 전쟁에 따른 스트레스가 가중되어 군의 사기도 덩달아 저하되면서 전투력도 떨어지고 있다.
새로 입대한 미군 신병들이 복무 규칙을 선서하고 있다. 대위와 소령 등 중대장이나 대대장급 지휘관들이 대거 퇴역하는 것도 큰 문제가 되고 있다. 지난해 육군의 대위와 소령급 지휘관은 3000명이 부족했고, 2010년이면 두 배로 늘어날 것이란 전망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2002년 웨스트 포인트(육사)를 졸업한 장교 중 58%가 의무복무기간이 종료되자마자 전역했다. 제대로 된 지휘관이 없으면 전투에서 승리할 수 없다는 것은 너무나 뻔한 사실이다. 이러다 보니 앞으로 북한, 이란, 시리아, 대만해협 등에서 전쟁이 일어날 경우 미군이 승리하기 어렵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나왔다. 미국 외교전문지 포린 폴리시(3·4월호)가 전·현직 장교 34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응답자의 80%가 지금 당장 주요 전쟁이 발발했을 경우 미군이 승리하기 어렵다고 답변했다. 장차 전쟁위험이 높은 지역에서 미군이 현재 승리할 가능성에 대해 10점 만점 기준으로 북한 4.7점, 이란 4.5점, 대만해협 4.9점, 시리아 5.1 점인 것으로 나타났다. 미군은 이라크와 아프간전으로 또 다른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상태라고 이 잡지는 분석했다. 미국의 군사력은 세계 최강이고 국방 예산 또한 세계 최대임에도 불구하고, 다른 전쟁을 수행할 수 없는 상태라는 점은 충격적일 수밖에 없다.
현대전은 말 그대로 ‘돈의 전쟁’이다. 각국마다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상당한 국방예산을 사용하고 있다. 부시 행정부가 지난 2월 의회에 제출한 2009 회계연도(2008년 10월~2009년 9월) 예산안에서 국방예산은 5154억달러(약 508조2200억원)였다. 이런 예산 규모는 미국을 제외한 군사비를 많이 쓰는 세계 10대 국가들의 국방 예산을 전부 합친 것보다도 많다. 부시 행정부는 이런 국방 예산 이외에도 이라크와 아프간 전쟁 비용 1781억달러, 국토안보 보장 비용 376억달러를 추가로 요구했다. 미국은 또 5년간 육군 규모를 6만5000명 늘어난 54만7000명으로 늘릴 계획이다. 이 경우 국방 예산은 더욱 늘어날 수밖에 없다.
문제는 미국이 앞으로도 이처럼 엄청난 규모의 국방 예산을 계속 지출할 수 있는 능력이 있는지 여부이다. 미국은 현재 경기 침체로 경제가 어려운 상황에 빠져 있다. 또 재정적자를 줄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현실을 감안할 때 과도한 국방 예산을 지출하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특히 이처럼 대규모 국방 예산을 투입하는데도 불구, 전투력마저 형편없어 전쟁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한다면 ‘밑 빠진 독에 물 붓기’인 셈이다. 국민들도 전쟁이 계속되는데도 불구, 별다른 진전이 없으면 국방예산 감축을 요구할 것이 분명하다. 때문에 미국의 차기 대통령은 누가 되든 국방 예산 삭감 압력을 받을 가능성이 높다.
이 때문에 미국이 세계의 경찰 노릇을 하려면 새로운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이 제기되고 있다. 이와 관련, 앤서니 지니 전 중부사령관 등 미군 예비역 장성 50여명은 차기 대통령이 ‘스마트 파워’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스마트 파워는 군사력과 같은 ‘하드 파워’와 문화나 이데올로기 같은 ‘소프트 파워’를 적절히 함께 활용하는 외교 전략을 의미한다. 이들은 “미국이 국경을 넘나드는 테러리즘과 전염병, 기타 다른 위협으로부터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는 군사력에만 의존할 수 없다”면서 “대신 전 세계의 안정을 강화하는 개발과 비군사적·외교적 수단에 대한 투자를 늘리고 글로벌 경제의 이익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2008 회계연도에서 미국의 국방 예산은 전체 예산의 22%에 이르지만, 외국에 대한 외교와 지원사업은 예산의 1%를 겨우 웃돌 뿐”이라면서 “미국의 안보를 위해 새롭고 대담한 전략이 필요하다는 점을 차기 대통령에게 촉구한다”고 밝혔다.
ㅣ미군의 세계 배치 ㅣ
6개 지역사령부 두고 각 지역분쟁에 개입…‘테러와의 전쟁’ 작전 지역을 세계로 확대
현재 전 세계 국가들 중 미국을 상대로 단독으로 전쟁을 벌일 만한 군사력을 보유한 국가는 없다. 미국의 군사력을 보면 병력은 142만7000명(육군 48만5000명, 해군 40만명, 공군 36만7600명, 해병대 17만4400명, 해안경비대 3만7582명)으로 중국에 이어 2위이지만, 전략핵미사일을 비롯해 항공모함, 전략 폭격기, 전투기, 이지스함, 잠수함 등에서 다른 나라에 비해 월등한 군사력을 보유하고 있다. 미국은 이 같은 군사력을 바탕으로 해외에 병력을 주둔시키면서 이를 통해 자국의 안보를 강화하고 영향력을 확대하는 전략을 추진해왔다.
실제로 미국은 북부·남부·유럽·중부·태평양·아프리카사령부 등 6개의 지역사령부를 두고 군사적으로 전 세계를 통제하고 있다. 미국은 이와 함께 각국의 지역분쟁 등에도 필요하면 개입하려는 의지와 준비태세를 갖추고 있다. 이에 따라 미국은 2001년 10월 발표한 ‘4개년 국방전략보고서(QDR)’에 입각, ‘1-4-2-1’전략을 추진해왔다. 1-4-2-1 전략은 미국 본토를 방위하고(1), 유럽·중동·서남아·동북아 등 4개 지역에서 전쟁을 억지하며(4), 2개 지역에서 동시에 전쟁을 수행하고(2), 1개 지역의 전면전에서 결정적으로 승리한다(1)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이후 미국은 테러와의 전쟁을 수행하면서 2006년 2월 발표한 QDR에서는 “‘1-4-2-1’ 전략을 4개 지역만이 아닌 지역에 제한 없이 전 지구적 차원에서 수행한다”는 내용으로 수정했다.
이를 위해 해외주둔 미군도 재배치 계획을 통해 새롭게 개편했다. ‘전 세계 주둔 미군 재배치 계획(Global Posture Review)’이라 불리는 이 전략은 최첨단의 군사기술로 무장한 미군을 21세기의 전투 환경에 맞춰 정비하고 이라크와 아프간을 제외한 해외주둔기지의 통폐합과 동맹관계의 재조정을 통해 유연성과 기동성을 통해 신속대응능력을 강화한다는 것이다.
이런 전략의 목표는 국가가 기본단위가 되어 적과 장소가 확실했던 과거와는 달리 언제 어디서 어떤 형태의 위협에도 대응한다는 것이다. 하지만 적의 실체를 모르는 상황에서 불확실성이 증폭됐고, 이를 대비하기 위한 미군 병사들의 스트레스도 가중됐다. 또 전선이 전 방위적으로 확대되면서 병력의 집중도가 옅어졌다. 또 유연성과 기동성을 강조하면서, 잦은 이동과 배치에 따른 병사들의 피로가 누적됐다. 때문에 미군이 직면하고 있는 가장 큰 문제점은 전 세계 분쟁에 너무 개입하려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는 ‘세계의 경찰’이라는 미국의 역할과 기능에 따른 어쩔 수 없는 부담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