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날 해병대 이야기 (펌) - 4부.끝

전남대 작성일 08.12.03 01:5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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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병대가 광주에 투입됐더라면…”

또 다른 해병대 관계자도 “당시 전두환 정권은 해병대의 전통을 인정하는 듯했으나 ‘어떻게 하면 해병대의 위상을 격하시킬까’ 하는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면서 “박정희 대통령도 월남 파병 이후 비대해진 해병대를 버겁게 여겨 1973년 사령부를 해체하고 사령관 계급도 대장에서 중장으로 끌어내려 해군에 통합시켰다”며 해병대에 대한 ‘정치적 탄압’을 제기했다. 그는 “이후 대선을 앞두고 노태우씨가 해병대 표심(票心)을 얻기 위해 1987년 11월 해병대 사령부를 재창설하기까지 해병대는 14년간 시련을 겪어야 했다”고 토로했다.

이들은 특전사와 해병대의 지휘계통과 정치적·지역적 상황의 차이에 대해 언급하면서 “당시 해병대를 광주에 투입했다면 어땠을까” 하는 질문을 스스로에게 던졌다. 하지만 “해병대가 광주에 투입되지 않은 것은 어쩌면 다행이었는지 모른다”는 말로 5·18민주화운동의 또 다른 희생자인 공수부대원들의 처지를 배려했다.

아돌프 아이히만은 나치의 유대인 학살에 책임 있는 인물 중 하나로 전쟁이 끝난 후 아르헨티나에서 숨어 지내다 이스라엘 비밀경찰에 의해 체포됐다. 재판과정에서 그는 “나는 업무를 수행하면서 사람을 죽이려는 어떤 의도도 갖고 있지 않았고, 유대인에 대한 그 어떤 증오도 없었다. 다만 제3제국이 ‘합법적’으로 나에게 부과한 의무를 수행했을 뿐”이라며 “나의 위치에 다른 사람이 있었다면 그도 동일하게 행동했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재판을 지켜본 정치철학자 한나 이렌트는 아이히만이 악의 화신도 괴물도 아닌 극히 평범한 인간이었다고 결론을 내렸다.





아이히만의 증언을 들은 세계는 경악했다. 아이히만 개인이 유대인에 대한 독자적인 판단을 내릴 수 없는 상태, 이런 ‘완전한 무사고(無思考)’가 그가 유죄인 이유였다. 이에 대해 이렌트는 ‘악의 평범성(the banality of evil)’이라는 교훈을 얻게 됐다고 말한다.

부산·마산과 광주에서 전개된 군의 진압방식 차이를 두고 ‘공수부대는 악하고 해병대는 선하다’는 이분법을 세운다면 옳지 않다. 공수부대나 해병대나 명령에 충실히 복종하고 국민의 군대라는 점에서는 차이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나 공수부대와 해병대의 진압과정 차이는 ‘명령과 복종’으로 대변되는 군대라는 특수한 조직에서 지휘관 등 상급자의 의식과 태도, 그리고 조직이 존재하는 목적에 대한 구성원의 공감대가 어떤지에 따라 얼마나 상반된 결과를 초래할 수 있는지를 보여준 역사적 교훈이라 할 만하다.

우선 해병대 7연대는 박구일 연대장이 직접 나서서 장병들에게 작전에 임하는 자세와 목적에 대해 정신교육을 하고, 그 공감대를 바탕으로 부대를 이끌었다. 그러나 광주의 공수부대원들에게는 이와 같은 교육이 없었고 ‘내가 왜 광주에 왔는지’에 대해, 다시 말해 부대의 출동 목적에 대한 주체적인 자각이 없었다.

공수부대와 해병대의 진압과정 차이를 조직구조에서 찾는 견해도 있다. 군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해병대 지휘계통은 공수부대와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에 따르면 해병대는 적 후방에 침투해 게릴라전을 펴는 것이 주목적인 부대다.


‘불합리한 권위에 대한 복종’

그렇기에 간부 중심 지휘체계인 특전사에 비해 해병대는 병(兵) 통솔만으로도 작전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러한 해병대의 지휘체계는 소대나 중대 단위로 작전임무를 수행할 때 적의 집중 폭격이나 사격을 받아 전멸하는 사태를 방지하기 위한 것으로, 평시 소규모 분대 단위의 전투훈련에 집중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반면 간부 중심으로 구성된 공수부대는 원리원칙을 존중한다. 그들은 투철한 군인정신으로 상부의 지시를 철저히 수용한다. 그렇기 때문에 부당한 명령에도 공수부대원들은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한번 해병은 영원한 해병’이라는 모토처럼 공수부대에는 ‘안 되면 되게 하라’ ‘사나이 태어나 한번 죽지 두 번 죽냐’는 상징적 표현이 존재한다.

심리학의 유명한 학설인 ‘불합리한 권위에 대한 복종’은 1961년 스탠리 밀그램이 처음 이론화했다. 그는 사람들이 권위에 굴복하는 이유는 성격보다는 상황에 있을 것이라고 가정하고 ‘대단히 설득력 있는 상황이 발생하면 아무리 이성적인 사람도 도덕적인 규칙을 무시하고 명령에 따라 비도덕적 행위를 저지를 수 있다’는 가설을 세우고 이를 입증했다. 이러한 상태를 복종을 넘어선 단계, 즉 ‘응종(應從)’이라고 부른다.

전문가들은 ‘불합리한 권위에 대한 복종’이라는 심리가 광주에 투입된 공수부대원들에게도 있었을 거라고 추측한다. 그들이 불합리한 상부의 명령에 복종해 시민들을 강경하게 진압한 것도 인간 내부에 잠재된 심리적 본성의 하나라는 설명이다. 특히 책임을 명령권자와 희생자들에게 돌리며, 도덕적 판단의 의무로부터 회피하려는 것은 군과 같은 조직사회의 구성원이 불가피하게 가질 수밖에 없는 속성이라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tl_google.gi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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