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세계대전 프랑스 vs 독일 전력비교

쿠라라네 작성일 09.10.08 18:17: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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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위 프랑스군

아래 독일군

 

 

 

당시 보병전력

 

 당시 육군사단 전력은 숫자는 서로 비슷하였다.

 연합군  총 136개 사단  독일군  총 136개 사단

 프랑스

94개 사단 

   

 영국

10개 사단     

 네덜란드

10개 사단 

   

 벨기에

22개 사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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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프랑스 전차

아래 독일군 전차

 

당시 기갑전력

 

연합군은 숫자와 성능 모두 우월했다.

당시 독일군 주력이던 1호 2호전차는 기동성은 뛰어났지만 화력면에서 현대의 장갑차에게도 밀릴정도의 성능이었다

 

 연합군

총 3000대 

독일군 

총 2400대 

신형33톤 B전차 47mm + 고속20톤 소뮈아전차 75mm 

 800대

1호전차 7.92mm기관총 + 2호전차 20mm캐논 

 1400대 

R35 르노전차 37mm + H35 호치키스전차 37mm 

 2200대 

3호전차 37mm 

 350대 

 

 

24톤 4호전차 75mm 

 280대 

 

하지만 독일군은 전차를 뭉쳐 총10개 기갑사단과 총 3개 기갑군단을 만들었고

연합군은 3개의 기갑사단을 제외한 기갑전력을 보병사단에 흩어두었다.

 

 

당시 포병 전력

 

연합군 (거의 프랑스)의 포병 전력은 우세했지만

독일군은 자주포를 운용해 기갑사단에 포함시켰다.

 

 연합군 11200문  독일군 7700문

 

 

당시 공군 전력

 

공군 전력은 연합군이 열세였다.

 

 연합군

총 1200대 

독일군 

총 3000대 

프랑스  

600대 

 

 

영국 

600대     

 

 

 

프랑스군과 독일군의 편제

 

프랑스 육군 최고사령관 가믈랭

북동전선 최고사령관 조르주

 

1집단군 사령관 빌로트 총40사단

 7군 사령관 지로 7개사단

 1군 사령관 블랑샤르 10개사단

 9군 사령관 코라프 8개사단

 2군 사령관 왕치제르 6개사단

 영국원정군 사령관 고트 9개사단

 

2집단군 사령관 프레텔라 총35사단

 

3집단군 사령관 베송 총14사단 (마지노선)

 

 

독일군 국방군 최고사령부 총참모장 카이텔

육군참모총장 브라우히치

 

A집단군 사령관 폰 룬트슈테르 총 45개사단 (7개 기갑사단 포함)

 4군 사령관 폰 클루게 14개 사단

  15기갑군단장 호트

    5기갑사단장 하르트리브

    7기갑사단장 롬멜

 12군 사령관 리스트 19개 사단

   41기갑군단장 라인하르트

    6기갑사단장 켐프

    8기간사단장 쿤첸

 16군 사령관 부쉬 12개 사단

   19기갑군단장 구데리안

     2기갑사단 파이엘

     1기갑사단 키르히너

     10기간사단 샤알

 

B집단군 사령관 보크 총 29개사단 (3개 기갑사단 포함)

 18군 사령관 폰 퀴흘러

 6군 사령관 폰 라이헤나우

 

C집단군 사령관 폰 레프 총 19개사단 (마지노선 견제용)

 1군 사령관 폰 비츨레벤

 7군 사령관 돌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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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최고사령관 가믈랭

 

프랑스 최고사령관 가믈랭은 1차세계대전당시 프랑스군 총사령관 조르프의 작전참모였고 1916년에는 프랑스에서 가장 젊고 능력있는 사단장이 되었다. 하지만 2차세계대전 시작할 무렵 나이가 예순여덟에 이르렀고 정치가들을 항상 고려하며 군사교리를 고수하는 군인이 되어있었다.

 

 

 

당시 양국의 전략

 

프랑스

프랑스는 1차세계대전 승전국이지만 전쟁을 자국 영토에서 수년간 치르면서 엄청난 피해를 입었고

따라서 다시 독일과 전쟁을 한다면 자국이 아닌 타국에서 하길 원하고 있었다.

1차세계대전 당시 독일군은 슐리펜계획하에 정면보다는 우익을 강화하여 네덜란드 벨기에를 거쳐 프랑스 북동쪽을 공략하는 방법을 사용했으나 당시 참모총장이던 소 몰트케가 우익의 전력을 약화시켜 진격이 파리까지 못가고 멈췄으며 참호전이 일어나게 되었다.

따라서 프랑스군은 독일과의 정면에 마지노선을 설치하고 독일군의 공격을 네덜란드 벨기에쪽으로 유도하여 즉시 프랑스 육군 주력을 벨기에 땅으로 진출하여 그곳에서 전선을 만들어 방어하겠다는 전략을 세웠다. 

만약 독일군이 아르덴 숲으로 진공하자면 그곳은 고속기동이 불가능하므로 이동해서 막는 다는 계획을 세워놓았다.

 

독일군

독일은 최고사령부 참모진이 원래는 네덜란드 벨기에쪽에 주공을 두고 슐리펜 계획을 재연하고자 하였으나

만슈타인 소장의 계획을 히틀러가 선택하면서 바뀐다.

그 계획은 B집단군이 벨기에 - 네덜란드에서 연합군을 끌어들인 다음 A집단군은 아르덴 숲을 돌파하여 전진한다.

작전명 지헬슈니트 즉 낫질작전.

 

 

 

 

 

결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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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군은 프랑스가 전쟁터가 되는게 두려워

벨기에로 이동하여 독일군을 막고자 하였으나

 

독일군은 아르덴 숲을 통해 대서양까지 돌파

벨기에 프랑스군 주력은 본토와 단절된다.

 

 

 

 

벨기에로 진출한 연합군의 퇴로는 끊어지고 독일군 기갑사단은 엄청난 속도로 대서양까지 진군한다.

독일군 기갑사단의 선봉은 불과 몇대뿐이었지만 전쟁 말기가 되자 나타나기만해도 연합군은 도망가기 바뻤다.

프랑스 전차의 성능은 우세했지만 흩어져있었으므로 대응하기가 너무 힘들었다. (보병들과 속도를 맞춰야 했다)

결국 6주만에 프랑스는 항복한다.

 

 

 

 

 

각국 사상자

독일군 사상자 15만 6492명 (전사 27074명 부상111034명 실종 18384명)

프랑스군 사상자 220만명 (전사 9만명, 부상 20만명, 실종 및 포로 190만명)

영국군 사상자 6만 8111명

벨기에 사상자 2만 3350명

네덜란드 9779명

 

 

 

 

결론

프랑스 vs 독일 전쟁은 현대전에 있어서 제공권의 중요성과

비슷한 전력의 군대가 1차세계대전 전술 vs 전격전으로 전술이 나뉨에 의한 큰 차이를 보여주는 전쟁이다.

 

 

참고자료 : 세계의 전쟁3 프랑스 1940 알란셰퍼드 지음 플랫미디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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