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쓰기 전에, 본인이 근무한 기관 중대에 대해서 써보고자 한다. (군 기밀에 걸리면 자삭하겠다.)
육군과 달리 공군은 대대가 업무에 따라 갈리며 그 밑으로 중대가 그리고 또 그 밑으로 '반'이 나뉜다. 본인 같은 경우,
야전 정비 대대, 기관 중대, 텟셀 반 (Test Cell)이었다.
가장 세분화된 반은, 정비반, After burnner반, 테스트 셀반, 오일반, 행정반, 엔진 뗘왔다 붙였다 하는 디스패치 반이 있다.
내가 일한 테스트 셀은, 민항기를 포함한 모든 항공기가 그렇듯이.. 정비를 한 후에는 꼭!!! 테스트를 거쳐야 한다.
정비반에서 정비를 마치면 그 엔진은 활주로 건너 우리 테스트 셀로 오게 된다. 이곳에서 풀 파워까지의 테스트를 거친후, 이상이 없으면, 중대로 다시 가지고 올라가서, 항공기에 엔진을 장착한 후, 다시 이곳 테스트 셀로 내려와 항공기에 엔진을 장착한 채 테스트를 하고 이상이 없으면, 비행대대로 올린다.
엄청난 소음과 장비 그리고 장소를 필요로 하는 테스트 셀 외에는 우리 중대는 대부분 이글루 안에 있었다.
아직도 눈에 선한것이, 그 큰 이글루 안에 들어가면 오른 편에는 거의 항상 세대 정도의 F-5가 정비를 받고 있었다.
물론, 다 채우면 6대도 들어가서 정비를 받을 수 있었으리라...
위의 기본 지식을 배경으로 한채 글을 읽으면 더 이해가 빠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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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락 이튿날 아침에 중대에서 아직 추락한 기체의 엔진이 중대에 오지 않았기 때문에, 굳이 일찍 오지 않아도 된다는 동기 녀석의 말이 있었지만, 그래도 평소보다 좀 일찍 올라갔다.
공군 비행단 전체가 조용했다. 그것도 그럴 것이, 전투기가 추락했으니, 그 원인을 밝힐 때까지는 모든 비행이 금지된다.
우리 비행단 뿐만이 아니다. 대한민국의 모든 동일 기종 (심지어는 타기종도)의 비행이 금지된다. ' 아마, 그 날은 F-5를 운용하는 모든 비행단이 비행을 멈췄을 것이다. 기억은 안나지만 꽤 오랜시간 비행이 없었다. 원인이 밝혀질 때까지...
우리 반 애들을 데리고, 중대에 가기 위해서 정비 이글루 안에 들어갔을 때, 우리는 모두 숨이 멈춰버리고 말았다.
왜냐면, 들어가는 입구 오른쪽에 기체반 애들이 새벽에 가져온 비행기의 잔해들이 아주 아주 처참하게 있었기 때문이다.
잘 정렬해놓았지만, 각 부서진 기체들은 정말.. 상상을 초월했다. 하지만, 그것은 시작에 불과했다. 그렇게 정렬된 파편들의 맨 앞쪽에 있는 것이 가장 큰 충격을 주었는데, 그것은, 바로...
조종사의 헬멧, 산소 마스크, 군화, 조종석, 그리고 파라슈트였다.
헬멧은 뒷부분이 금이 가 있었다. 어찌된 영문인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조종사 헬멧이 그렇게 뒷부분이 크랙이 있을정도면 엄청난 충격이 있었다는 이야기 인데, 사출시 캐노피에 충돌하지 않고서는 그정도의 크랙은 생기지 않았을 것이다. 다른 하나는 정상이었다.
지금 글을 쓰면서 생각해보니, 사출시 캐노피에 충돌한 것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헬멧에 붙어 있는 산소마스크는 더 처참했다. 산소 마스크를 한번 보니, 그 안쪽에 많은 피가 검붉게 굳어있었다. 사망하거나 중상을 입은 조종사의 산소마스크였을 텐데, 아마 사출후 스스로 그 산소마스크를 열지 못했던 모양이다. 만약, 산소 마스크를 열었다면, 저렇게 피가 잔뜩 고여있지는 않았을테지... 당사자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사출 후 산소마스크를 열지도 못한채 지상까지 내려왔고, 지상에서 역시 스스로 산소 마스크를 열지 못했던것 같다.. 그 후에, 입에서 피를 뿜었으리라..
파라슈트 (낙하산) 역시, 피가 잔뜩 뭍어있었다. 잘 이해가 되지는 않았다. 어떻게 파라슈트에 피가 묻어 있을 수 있을까? 어느분의 파라슈트인지는 알수 없지만, 추측해 보건대.. 사출, 지상 착지 후 어떤 이유에서든 파라슈트 위에 엎어졌든지 아니만 파라슈트가 조종사를 덮고 있었을 것이다. 아니면, 구조팀이 조종사들을 옮길 때, 파라슈트를 사용했을지도 모른다. 어쨌든 파라슈트에 그리도 많은 피가 묻어있었다는 사실은 이해하기가 힘들었다.
조종석 역시 처참한 모습이었다. 피는 묻어있지 않다. 이 사출좌석은 아마도 조종사를 살리기 위해서 제 힘껏 위로 조종사를 밀었으리라.. 그리고 나서는 힘없이 밑으로 추락하여 땅바닥에 쳐박혔을 것이다. 모든 부분에 흙이 잔뜩 묻어 있었다. 상황의 급박함을 알려주는 것이 있었는데, 바로 사출레버의 길이였다. 사출을 하기위해서 조종사는 레버를 당겼을텐데, 고참 말로는 저 길이가 나올수 없댄다.. 즉, 조종사는 다급한 상황에서 있는 힘것 사출 레버를 당겼고, 그 힘은 레버의 원래 길이보다 더 길게 뽑아져 나온 것이다. 조종사가 얼마나 급했는지 알수 있었다... 많이 안타까웠다.
군화는 밑창이 아예 나간채 있었다. 군화까지 아예 벗겨질 정도로 충격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구조팀이 조종사를 구조하면서 군화를 벗긴건지는 알수 없었다. 하지만, 밑창이 나간것을 보면 충격은 엄청 컸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었다.
이렇게, 모든 것을 하나하나 둘러보고 난 후 (위에는 길게 썼지만, 채 3분이 되지 않는다.) 얼른 중대로 갔다.
중대에 가니 예상은 했지만, 분위기가 너무 살벌했다. 그렇게 분위기 파악을 하다가 행정보는 동기한테,
"어떤 전투기야? 기체번호는??"
그러자 동기 왈
"어.. 5** 기야.."
이 말을 들었을 때 또 한번 놀랐다. 그 날이 화요일이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추락한 날은 월요일이고..
그런데, 단장님의 지시에 따라, 바로 그 전 일요일, 그러니까 추락하기 전날에도 작업을 하였는데, 바로 그날 정비한 항공기중 한대가 바로 5**기 였던 것이다. 13년이 지난 아직도 난 그 일요일이 선하다. 우리가 정비해서 올린 엔진이 바로 그 기체에 달리고 난 후 우리 테스트 셀에서 시험가동 했기 때문이다. 그 항공기.. 그 비행번호판.. 그 상황들.. 아직도 기억난다.
우리는 그 때, 이렇게 생각했다..
"* 같네.. 일요일까지 무슨 일이야... 왜 오늘도 작업해야 하나구!!! "
그러면서, 사무실에서 나와 시험 가동중인 그 비행기를 바라보고 있던 그 기억은... 평생 나를 따라다닐것이다.
그렇게 일요일에까지 정비하며, 우리의 손을 거쳐간 그 5** 기는 바로 그 다음날, 공군의 모든 기록속에서 영원히 사라지고
말았다. 한 분의 조종사와 함께 말이다...
- 글재주가 없어도 양해를... 3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