걍 심심해서 써봅니다.
예전 군생활 할 때 얘긴데요. 전역한지 꽤 된 지금도 기억에 남는 일이 있었습니다.
제가 일병일 때 일입니다. 저가 근무한 곳은 정말 최전방입니다. 그냥 북한과 거리가 불과 5km 안팍의 정도밖에 되지 않는 곳이었거든요. 그렇기에 저희부대 주 업무는 훈련이 아닌 근무가 주 업무였습니다. 그래서 남들 다 훈련받을 때 근무서러 산을 타고 다녔습니다.
제 업무는 산을 타면 터널이 나오고, 터널을 지나면 산 중턱에 만들어진 여단 지휘본부가 나오고 그 지휘본부 안에서 공군 XX기지에서 통신으로 보내주는 데이터로 레이더를 보는게 업무였죠. 그 곳은 우리 중대뿐이 아니고 타중대도 같이 근무하는 장소입니다. 한쪽은 해상을 한쪽은 공중을 감시하는 시스템이였습니다.
낮이라면 모를까 새벽이라면 이런 곳에서의 근무는 적과의 싸움이 아니라 잠과의 싸움이죠. 정말 졸려서 비몽사몽 레이더를 지켜보면서 졸다보면 시간이 훌쩍훌쩍 지나가고 있습니다. 옆에서 같이 감시하는 선임도 같이 꾸벅꾸벅 졸고 있고요.
그 날도 새벽에 정말 피곤해서 꾸벅꾸벅 졸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갑자기 같이 근무하던 선임이 어느새 잠에서 깼는지 뒷통수를 툭 치는겁니다. 깜짝 놀랐죠. 구타가 워낙 많은 곳이여서 한두번 맞은게 아니거든요.. 졸다가 걸리면 작살납니다 . 같이 졸면 모를까 선임 눈 뻔히 뜨고 있는데 후임인 저가 졸았다면 이미 끝난 얘기인거죠.
어쨌든 이 직후 선임이 저보고 졸지 말라고 주의를 주면서 "야 내가 3개국어 할 줄 아는거 아냐 모르냐." 이러는겁니다.
뜬금포죠. 평소라면 때리고 맞을 타이밍에 갑자기 저런 말을 하다니.. 어쨌든 한양대 공대 출신 선임이긴 하지만 평소에 공부하는 모습을 본 적도 없고 외국어를 쓰는 것을 본 적이 없는 사람인지라 전혀 의외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알아보겠습니다.(모른다고 하면 안되는 부대)" 하고 대답했죠.
눈치껏 주위를 보니 깨어있는건 저와 선임 둘 뿐 다른 중대에서 온 근무자들 2명도 자고 있었습니다. 그러길 잠시. 갑자기 선임이 또 의외의 말을 하는겁니다. "내가 3개국어로 노래를 불러줄께. 꿘(제 별명)이 잠에서 깨라고."
갑자기 조용히 이승철 노래를 부르더군요. 전 그냥 듣고만 있었습니다. 곧 노래가 끝나고 선임이 "어때 일단 우리나라말이다." 아직 잠에서 덜 깨서 별로 감흥도 없었습니다. 직후 선임은 또 다른 노래를 부르는데 일본노래였습니다. 그걸 또 어떻게 다 외웠는지 한 2분 좀 넘게 부르더군요. 러브히나라는 애니에서 나오는 주제가라고 했습니다. "어때 선임(3인칭으로 강조로 말하는게 이 사람 버릇입니다.)이 일본어 잘하지?" 일본 노래를 술술 부르는거 보니 잠에서 깨더라구요. 오오 정말 잘하는구나. 3개국어라니 이제 영어로 부르겠지? 팝송인가? 이런 생각을 하면서 선임이 나머지를 끝내기를 기다렸죠. 시키지 않더라도 착착 부르는게 꽤 자신도 있는 모양이었습니다. 선임이 갑자기 목을 커흠 되면서 가다듬더니 마지막 노래를 시작합니다.
"뚫훓뚫훓뚫~뚫훓뚫훓뚫~뚫훓뚫훓뚫 따다다! 뚫훓뚫훓뚫~뚫훓뚫훓뚫~뚫훓뚫훓뚫 따다다!
코! 쳐골면서~ 쳐졸지마라! 시벨아~ 니 때문에 잠이 다 깨버렸네 ..." 한 2분간을 뚫훓송으로 음에 맞춰서 제 욕을 하는데 너무 어이가 없어서 머리가 벙찌더군요. 그러다가 후렴구가 오는데 뒷자리에서 타중대 선임이자고있던 자던 자세 그대로 머리를 박은 상태로 "우어에에~" 하면서 뚫훓송의 후렴구를 부르는겁니다. ㅋㅋ 아놔 진짜 어이가 없어서
그렇게 둘이서 신이나서 한 3분 좀 넘게 뚫훓송을 부르더니 지들도 웃겨서 끝나고 ㅋㅋ 대는겁니다. 저도 ㅋㅋ댔다가 존거에 선임앞에서 웃었다고 머리좀 맞았죠.. 덕분에 잠은 안와서 근무 끝날 때까지 걍 앉아있다가 온 기억이 납니다. 전역한지 꽤 된 지금도 생각나요 ㅎ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