혈의누 - 극 사실 주의의 수작

쟈렘주민 작성일 05.08.09 04:3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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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내공 : 상상초월


시나리오가 좋으면 영화는 반을 먹고 들어간다고 나는 생각한다
수백억 심지어 수천억의 돈을 들여 때리고 부수는 영화들을 만들어도 시나리오에 깊이가 없고 시사성이 빠져 있으면 마치 부피만 엄청 키운 뻥튀기를 먹은 듯하여 겉보기에 화려하고 먹을 때 기분은 좋으나 먹고나면 배는 부르지 않다
그러므로 좋은 시나리오는 모든 스탭들의 수고를 합친 것에 맞먹을 정도로 영화에 높은 기여도를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혈의누는 정말로 좋은 시나리오이다
시간의 흐름에 의해 관객들은 의문을 가지게 되고 또 다시 시간의 흐름에 의해 저절로 의문들이 풀려 나간다
그러나 주의 해야 할 것은 어느 한 순간 영화에서 집중을 떨어뜨리면 재 설명을 해주지 않는 이영화의 특성상 친절히 풀어주는 의문점도 캐치하지 못하게 된다
그러므로 관객은 항상 긴장을 해야 하고 영화관람의 집중도를 일정하게 유지 시켜 주어야 한다
그런 면에서 혈의누의 작가는 관객에게 충성도를 요구하는 카리스마를 지녔고 또 어설프지 않고 자연스럽게 관객을 복종 시킬 수 있는 세련미가 느껴진다
이는 흥행 작가로서의 매우 빼어난 자질이라 볼 수 있다


혈의누는 극 사실주의 영화이다
대부분의 미스테리 서스펜스 영화들이 사실주의를 기초로 하고 있지만 혈의누 정도의 표현법을 쓰는 영화는 앞에다 극이라는 수식어를 붙여도 전혀 무색하지 않게 느껴진다
영화의 전개중 무당의 존재가 나오고 무당의 입을 통해 초자연적 현상들이 언급이 되어지지만 영화를 전체적으로 조망해 본다면 이는 하나의 배경과 분위기 메이커의 역활이 주 임무임을 알 수 있으며 내용 전개상 기여한 면이 있다면 차승원이 살인범의 진상을 파악하는 꼬투리를 제공하게 되는 딸의 죽음에 대한 힌트를 제공하는 정도일 뿐이다


지나치다는 여론이 일 정도로 잔인한 장면을 여과없이 보여주는 면에서는 흥행을 의식한 감독의 의도가 어느 정도 깔려 있을 수도 있겠지만 어찌됐든 극 사실주의라는 지향성을 유지, 그리고 달성하기 위해서는 감독에게 너무나 매력적인 카드가 아니었나 싶다
이 영화에서 최고의 긴장감을 느끼게 해주는 부분은 바로 처참한 살인의 장면들인데
보통의 헐리웃 대작 영화들이 쫓고 쫓기는 장면이나 주인공과 악당의 대결 구도에서 긴장감을 주로 제공하고 있지만 그런 특수한 추격전 이라든가 특수한 상황, 특수한 인물들에 의한 대결 구도는 전혀 현실적이라고 할 수 없다
반면 혈의누는 현실 세계에서 사람들이 항상 긴장하며 공포를 느끼고 있는 주제 즉 사람의 죽음 특히 살인 이라는 현실적 소재를 가지고 보다 극단적 긴장감을 제공해 주고 있는데 그러므로 그 긴장감의 생생함이 마치 서해의 어느 외진 섬에서 실제 일어난 사건처럼 섬뜩하게 와 닿는 것이다


종반부에서 피의 비가 내리는 장면이 나온다
보통의 서스펜스 영화들이 종반에서 사건의 해결을 통해 관객들에게 심리적 해방감을 맛보게 하여 최종적인 카타르시스에 이르게 하는 형식을 취하는 반면 혈의누에서는 오히려 종반에서 꿋꿋이 참아왔던 메세지를 한번에 터뜨리어 관객으로 하여금 해방감이 아닌 다시 처음으로의 혼란함을 느끼게 만들어 주고 있다
이 피의 비는 과연 정말 피의 비 였을까?
물론 영화 상에서는 실제로 붉은 피의 비가 내리고 있다
그러나 그게 감독의 머리 속에서도 과연 피의 비였겠냐는 말이다


영화가 막 중반으로 접어들 무렵 차승원과 무당의 대화에서 이 영화의 중요한 코드가 하나 튀어 나오는데 바로 "심어로"(내가 듣기에는 이렇게 들렸음)라는 병이다
이는 쉽게 말해 귀신에 대한 심한 공포를 갖고 있으면 모든 것이 귀신으로 보인다 식의 일종의 히스테리라 할 수 있는데 강객주가 죽을 당시 " 내가 피의 비를 내리게 하겠다" 라고 했던 그의 말이 마을 사람들 전체의 마음에 암시로 남아 하나의 공포의 씨앗으로 마을 전체에 공유되고 있었던 것이다
그것이 최후의 5번째 밀고자가 처형되는 현장에서 사람들은 또한번 죽음이라는 공포에 접촉을 하게 되고 그의 몸에 서 뿜어지는 피를 보게 되는데 때마침 비가 내리게 되고 마을사람들과 차승원은 이 비가 바로 강객주가 뿌리고 있는 피의 비라고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물론 이 추리는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 생각이다
참고로 차승원마져 평범한 비가 피의 비로 느껴져야할 이유가 없다고 생각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으나 차승원은 아버지의 만행에 대해 엄청난 양심의 가책을 느끼고 있었고 그것이 하나의 심어로로 작용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마지막 밀고자가 죽고 비가 내리던 그 현장에서 차승원과 마을의 모든 사람들은 그 비와 강객주가 죽으면서 말했던 피의 비를 동화시켜 그들의 집단이 공유하는 공포심리를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감독의 시사적 메세지가 여기에서 나오는데 그건 바로 평범한 사람들의 나약함이다
암시되어 있는 공포가 있으면 사람들은 그것으로 부터 절대 자유로울 수 없으며 어떻게 해서든 그것을 표출 시켜 해소하기를 원한다
감독이 보고있는 사람이라는 존재는 그런 정도의 존재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는 감히 생각해본다
영화상에서는 붉은 색의 피의 비가 내렸지만 이것은 차승원과 마을 사람들의 시선에 의해 보여진 색일 뿐 감독의 머리 속에서는 그냥 투명한 평범한 비였을 거라고
또한 그렇기 때문에 하늘에서 피의 비가 내렸다 하여도 이 영화가 극 사실주의 영화에서 이탈하고 있다고 볼 수 없는 것이다


이런 부류의 영화를 좋아하고 좋아하지 않고는 어디까지나 관객들의 몫이다
아마도 이런 영화들은 보편적으로 모든 사람들에게 재미를 줄 수는 없을 것이다
좋아하는 사람은 정말로 재미를 느낄 것이고 싫어하는 사람은 첫 번째 살인의 현장에서 영화를 포기 할 지도 모른다
한가지 확실한 건 애들은 절대로 이 영화에서 재미를 느낄 수 없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한마디만 하고 끝맺겠다
" 애들은 가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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