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작 추천 No.4 시계 태엽 오렌지 (A Clockwork Orange, 1971) 작품성★★★★★ 초강추

ㅇ허언ㅁㅁ 작성일 06.01.12 04:13:44
댓글 6조회 2,042추천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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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내공 : 상상초월


벌써 4번째 글이네요~^^
제가 글솜씨가 부족해 "조제..."를 제외하고는 평론가분들이나, 영화고수님들의 평을 싣게되네요..


영화매니아분들껜 대단히 유명한 작품이죠~

이 작품은 제 인생 최고의 영화중 한편입니다.
"샤이닝", "풀메탈자켓"을 인상깊게 본 뒤 큐브릭감독의 전작들을 살펴보던중에 유난히 제목이 눈에띄어 보게 되었는데..아..대박이더군요..영화보는 내내 무아지경에 빠졌었죠~ㅋ
특히 영화초반부 주인공이 "singing in the rain"을 부르며 강간하던 모습은...정말 인상깊었습니다.그리고 독특한 편집센스를 보여준 집단섹스신도 대단했구요~

x같은 대한민국사회에 발을 딛은 후 다시한번 이 작품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회물에 찌들어서일까..아님 학창시절때의 순수함(?)을 잃어버려서일까..새삼스레 인간의 본성에대한 의구심과 회의심이 강하게 생기더군요.(별에별놈이 다있죠...특히X같은 윗대가리들...)

뜬금없이 소싯적에 배웠던 순자의 성악설과 함께..
"인간의 자유의지는 악으로 이어질 수 밖에 없으며, 인간은 어떠한 제약도 없는 상태에서 결코 선할 수 없다" 이란 글귀가 생각나더군요..

음....좋은작품(소설이든 영화든)은 볼때마다 늘 새로운 의미가 되어 다가오는듯 합니다..
다음은 제 인생의 전환점이 된 글귀입니다..(원작소설중의 내용입니다)
교도소장인 목사가 출옥하는 주인공에게 하는말이죠..

“그래, 착한 사람이 되는 것은 좋은 일이지, 6655321. 하지만 나쁜 일일 수도 있단다. 아주 모순되는 말처럼 들리겠지? 나는 이 일 때문에 며칠 밤을 설칠 거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게 과연 무엇일까? 선을 원하시는 걸까, 아니면 선을 선택하기를 원하시는 걸까? 악을 선택하는 사람이 오히려 선을 강요당하는 사람보다 어떤 면에서는 더 나은 것이 아닐까? 심오하고 어려운 문제들이야, 6655321.” ( 앤서니 버제스 저·문혜원 역, 나우북즈, 1997)


고전영화라고 망설이지 마세요~35년전 작품이란게 믿겨지지않을만큼 요즘영화와 비교해서도 훌륭한 영상,편집,스토리등 어느하나 빠지는게 없답니다. 오히려 능가하죠~












※이하 모영화사이트의 유니마르님의 글입니다.

큐브릭을 알고나서 참 놀랐었다. 여러 장르를 두루 거치면서도
각 작품이 그 장르의 분야에서 뛰어난 완성도의 작품으로
영화사에 남는 흔치않은 여러 스타일의 필모그라피의 소유자로써
전 작품이 완성도가 뛰어난 완벽한
감독과의 만남은 놀라움과 환희였다.
큐브릭 자신의 지독할정도의 완벽성만큼
나에게 충격과 무한한 흠모를 가지게 만들었다.
닥터 스트레인지 러브로 시작되어 2001스페이스 오딧세이, 샤이닝,풀메탈쟈켓을 거쳐
초기의 베리린든이나 로리타와 함께 접하게 된 시계 태엽 오렌지는
나의 영화 베스트 100에 죽을때까지 포함될 영화이다.
(참고로 나는 베스트 영화100이 매년 바뀌지만 그중 50작품 정도는
절대 불변인데 그중에 한 작품이 바로 시계태엽 오렌지이다.)

친구들과 어울려 강간과 살인 등의 비행을 일삼던 알렉스(맬컴 맥도웰)는
친구들의 배신으로 감화원에 들어가게 된다.
정부는 새롭게 개발한 루드비코 요법의 실험대상으로 그를
선택하고 실험을 통하여 알렉스는 폭력이나 성적충동을 느끼면
심한 구토를 느끼도록 개조된다.
석방된 알렉스는 예전에 자신이 괴롭혔던 사람들에 의해
잔인한 보복을 당하게 되는데......

초반부 클래식 음악과 영상의 조화가 정말 압권인 감독으로써
스탠리 큐브릭은 알렉스 무리와 빌리보이 무리간의 집단 패싸움이라는 액션씬에 클래식
음악을 배경으로 깔아 폭력적인 싸움이 마치 무용이나
뮤지컬의 리듬감과 선율 같은 영상으로 표현되어 춤추는듯한
안무적인 발레 같은 액션들의 느낌을 가지게 만든다.
한밤의 광기어린 광란의 질주는 자동차가 가진 스피드라는
인간을 구속하는 동시에 충동감의 자극제로써 역시 클래식 선율과 함께
극도의 스피드감과 분열감,충동감의 상승으로 이끈다.
그리고 이어지는 이런 분열된 폭력성의 끝은 당연하게도
선정적인 섹슈얼리티에 다다른다. 주인공을 포함한 그 악동 무리가
단란하고도 가정적인 집에 침입하여 폭력을 가한다. 가족의 구성원들이 가장
안심하고 평안을 느끼는 장소에서의 낮선 침입자의 폭력은
외부에서의 폭력보다 더욱 심한 파괴감을 느끼게 해준다.
모든이가 안정을 구하는 장소가 한순간 지옥같은
파괴와 폭력의 장소가 될때 인간은 정신과 신체의
동시적인 혼란과 분열의 극치를 느끼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큐브릭은 타인의 행복한 가정을 침입해
남편이 보는 장소에서 아내를 겁탈하는 장면을 보여줘 혼란의 극대치를 보인다.
더욱 아이러니한 감정에 휩싸이는건 주인공이
그런 폭력을 행하면서 진켈리의 Singing in the Rain을
부른다는 것이다. 사랑의 아름다움과 낭만을 노래한 명곡을
악몽스런 저주의 곡으로 탈바꿈 시키는건
헐리우드의 동경의 꿈에 대한 차가운 조소인가? 아님
헐리우드 키드들에 대한 냉정한 메스질인가?
폭력성과 음란성의 관계는 묘한 상호보완적,혹은 상호 상승적인
관계로써 폭력과 섹스가 같이 표현되었을때 보는 이들은
가장 심한 극도의 흥분감과 정신적,도덕적 충격에
정신이 마비됨을 느낀다.
코로바라는 그들 악동무리들이 폭력의 마약을 접하는 장소는 현대의 인간들이 의식 못한채
점점 폭력성에 중독되어 가게 되는 거대 사회조직 시스템의 축소판이자 상징이다.
그들이 그곳에서 마시는 밀크(우유)가 그들을 폭력으로 이끄는 점은
밀크가 가진 성장에 대한 이미지의 명백한 비꼬기이자 그들의 폭력성이 점점
밀크를 마시는 어린아이처럼 성장해 나가는 것을 말한다.
무정부적인 디스토피아적 미래를 말하는 큐브릭의 무대적,의상적 배경은
시대를 넘어서 고전적 영화를 현대적 감각의 영화로 변모시킨다.
베토벤의 합창이 흘러나오며 그 천상의 소리를 음미하며 악몽적인 파괴적
상상을 꿈꾸는 알렉스의 모습은 아름다운 영혼의 소리를 무시무시한
지옥의 레퀴엠으로 변모시킨다.
영상적인 충격 또한 큐브릭은 잊지 않는다.
그 당시로는 충격적일수 있는 알렉스의 2대1 섹스씬을
긴 롱테이크로 찍어서 빠르게 패스트 모션으로 처리한 점은
그 표현적 재치에 감탄하게 만든다. 또한 그의 과감성은
카메라를 높은 곳에서 던져 버리기 까지 한다.
샤이닝에서의 스테디 캠처럼 70년대 영화에서는 상상할수 없는
시대를 앞서간 그의 영상 표현력은 가히 대단하다.
영화 곳곳에서 발견되는 남성의 성기에 대한 이미지의 표현은
극도로 과잉되어 성기는 = 마쵸이즘,남성의 극단적 힘으로 나타낸다.
이런 마쵸이즘의 표현은 극에 달해 조직에서 알렉스에게 반기를
드는 무리들에게 알렉스가 취한 행동은 회유나 화해의 포옹이 아닌
힘으로 제압하는 마쵸적 폭력인 것이다. 폭력과 공포만이 조직과 시스템을
이끌고 그 피지배계층의 복종을 이끄는 점은 박정희나 전두환 체제의
공포정치 속에서의 삶을 살아온 우리나라의 폭력성에 대한 자화상처럼
강한 느낌을 전달시켜 준다.
특히 폭력성과 달리 선정성의 표현에서 큐브릭은 그 강렬한 풍자성과 익살로
부자집 미망인의 집에 들어간 알렉스가 그녀의 보물이자 애장품인 남성 성기
모양의 조각품으로 그녀와 결투를 벌이는 모습은 장난스러움의 극치를 보여준다.
가게의 소녀들이 가지고 있는 아이스바까지 영화 속 남근숭배의 풍자는 어이없을 정도로 웃긴다.
결국 온갖 범죄 끝에 감옥에 가게된 알렉스가 조직의 거대한 힘에 의해
교화되고 정신이 순화되어 가는 과정은 뻐꾸기 둥지위로 날아간 새의
잭 니콜슨 처럼 과연 극도의 폭력성을 지닌 악한 인간의
개인적 존엄성과 자유의 의미의 중요성! 조직의 강제적
시스템에 의한 또다른 폭력이라 일컬어질 인간의 자유의지의 말살을 목표로 하는
물리적 압박등의 폐해등 어떤것이 인간에게 소중한 정답일까? 보는 이에게 혼돈을 준다.
또한 알렉스가 성경을 읽으면서 발칙한 상상을 하는 장면은
기독교에 대한 독설 같이 보여 기분이 나쁘면서도(나는 호러 영화나 엽기적 영화를 즐겨도 그래도 기독교인이다 ㅡㅡ;)
감독의 무제한적인 독설과 풍자 정신에 감탄했다.
결국 교화 프로그램에 의해 백치 상태가 된 알렉스는 인간에게
중요한건 자유의지이지만 그 자유의지가 일으키는 잔혹한 폭력의지는
어떻게 해야만 하나? 그렇다고 폭력의지의 거세를 위해 자유의지를 소멸한 인간이 과연
인간다운 인간인가?라는 이분법적이면서도 서로 반대적인 논제를
영화 후반부 보여준다. 불량소년이 루드비코라는 교화기계에 의해 기계처럼 교화되어가는
과정을 통하여 인간의 본성이 정부에 의해 통제되는 미래사회의 풍자적인 시선이
마치 자유와 방종의 사다리를 타는 인간들에게 던지는 메세지로 영상화 된듯한
느낌이다.
무질서를 바로잡는 폭력으로서의 문명은 그렇기 때문에 큐브릭에게 있어서 중요한 사유의 대상이다.
개인적인 폭력과 제도적인 폭력은 나란히 가는 것이다.
무질서와 폭력에 대한 시선의 모든 문제의 화두를 시계 태엽 오렌지는 던진다.
파시즘적 미학의 아슬아슬한 경계선에 가장 근접해 있는 영화이자
파시즘의 매혹과 공포, 폭력은 언제나 현실의 폭력의 반영임을 보여주는 영화로써
이 영화는 모든 폭력이 질서의 힘을 내포하는 것처럼 질서가 내포한 폭력의 관계를 미묘하게 성찰한다.
하나의 존재는 다른 하나의 존재를 파괴시키기 위해서만 있는가?라는 현대의 폭력성을
지나친 폭력으로 묘사해 논란이 되어 영국에서는 수십 년 간 상영이
금지되었고 미국에서는 X등급을 받았으나 뛰어난 작품성으로
역사에 남을 작품이 되었다.

PS:1.수석교도관 반즈는 명백한 히틀러의 파시즘에 대한 패러디이다.

2.아카데미에서 작품상에 노미네이트된 영화 중에 최초 개봉시 X등급을
받은 유일한 두 영화 중에 하나이다. 다른 하나는 바로 이다.

3.레코드 가게 장면에서 의 OST 앨범이 보인다.

4.주인공 알렉스가 자살을 시도하는 장면에서 카메라 렌즈를 땅 쪽으로 향하게 한 채 건물의 꼭대기에서 6번이나 던진 후에 얻어진 것이다.
이 장면에 사용된 카메라는 뉴만 싱클레어(Newman Sinclair)사의
제품으로 플라스틱 박스에 넣어 빌딩에서 떨어뜨렸다고 한다.

5.루도비코(Ludovico) 씬을 촬영하는 와중에 말콤 맥도웰은 각막에
손실을 입어 한시적으로 눈이 멀었었다고 한다.
그는 또 갈비뼈가 부러져 고생하기도 했으며 물 속에 갇혀 있는
장면에서는 호흡을 도와주던 장치의 고장으로 거의 익사할 뻔 하기도 했다고.
재미있는 사실은 말콤 맥도웰이 강간 씬에서 Singin' In The Rain을
택하는데 이유가 유일하게 가사를 모두 기억하는 곡이었기 때문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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