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태풍 거들떠 보자

달콤한베지밀 작성일 06.07.01 17:58: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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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내공 : 우수함


한국영화가 아시아권에서 인기를 누리는 요인 중의 하나는 이른바 한류스타에만 있는 것이 아니라 콘텐츠 자체의 경쟁력에도 많은 부분 공이 있다. 그 중 탄탄한 시나리오는 할리우드도 탐낼 정도이다. 대부분의 영화는 시나리오 초고 단계, 아니 그 전 원안단계에서부터 여러 명의 작가가 작업에 동참한다. 그런데 은 거의 모든 것을 곽경택 감독 혼자서 처리했다. 가히 대한민국 최고의 스토리텔러이며, 상상력만을 기준으로 보자면 한국최고의 영화감독이라고 할만하다. 그에겐 의대 다니다 때려치우고 미국에 영화공부 떠났다는 이력말고도 더욱 중요한 가족사가 하나 있다. 이번에 영화사가 제공한 보도자료에 곽경택 감독의 짧은 에세이가 하나 있다. 곽경택 감독의 어린 시절 회고다. 어릴 적 TV를 볼 때 남한과 북한의 권투선수가 서로 코피 터뜨리며 싸우는 모습이 중계된다. 남한의 어린 곽경택은 목이 터져라 응원한다. "아~ 저 북한새끼 저거 직이야 되는데! 한방 메기라!" (곽경택 감독의 고향은 부산이다) 이런 모습을 뒤에서 물끄러미 지켜보던 곽 감독의 아버지가 한 마디 내뱉는다. "싸우는 북한선수래 혹시 너의 사촌형이면 어카간?"(곽경택 아버지는 1·4후퇴 때 남한으로 넘어오신 실향민이다)
곽경택 감독은 커가면서 남들이 잘 보지 않는 이나 같은 북한관련 TV프로그램을 보며 혹시나 사촌 형이라도 나오지 않을까 조마조마했다고 한다. 곽경택 감독의 스탠스는 확실하다. '결코 때려죽일 수 없는 어떤 피붙이의 존재'와 그를 '가로막는'국제정세에 대한 스케일 큰 그림'을 그리고 싶었던 것이다. 곽경택 감독은 사촌형을 찾기 위해서인지 꽤나 공부를 많이 했다. 어느 해인가 어린이날 춘천 논두렁에 불시착한 중공 민항기 사건에서부터, 북한 꽃제비(먹을 것을 찾아 두만강 국경을 넘어 빌어먹는 북한 어린이), 체르노빌 원전사고까지 다양한 사건이 녹아있다. 그리고 요즘도 북경의 각 나라 국제학교나 영사관 등 외교관련 건물의 담을 넘어오는 탈북자들(혹은 북한이탈주민들)이 있고, 그들을 받아들여야할지 말아야할지 갈등을 거듭하는 정부가 있다. 만약 그들이 '당신들은 범죄자이며 탈북자라고 볼 수 없다. 받아들일 수 없다.'고 등 떠밀려 북한으로 되돌아갈 때 그들의 운명은 어떻게 될까? (물론 총살될 수도 있고, 그게 외국의 인권단체에 의해 몰래 촬영되어 CNN에 방송되는 악순환이 거듭될지도 모른다!!!)

911 테러로 미국 쌍둥이 빌딩이 무너진 후 미국 테러당국이 내린 결론은 (민간 대형비행기로 건물을 들이박는 것이 현실화될 것이라는 걸 예상 못한) '상상력의 결핍' 때문이라고 진단했다. 여기 곽경택 감독은 영화적 상상력을 동원하여 그 되돌려진 북한 이탈자의 운명을 남조선 '아새끼'들에게 보여준다.

장동건이 연기하는 '씬'의 본명은 최명신이다. 어릴 때 가족들과 함께 북경의 한 외교건물에 들어와서 남한 행을 원한다. 하지만 그때는 한국과 중공이 국교정상화를 추진하던 아주 민감한 시기였고 이들을 도저히 받아들일 수가 없는 것이다. 이들은 북한에 다시 넘겨지고 절망에 찬 이들은 탈출을 감행한다. 쏟아지는 총탄. 오직 씬과 그의 누나만이 살아남는다. 그들은 눈보라를 헤치고 멀고먼 길을 뚫고 각자 살아남는다. 씬은 태국에서 해적으로, 누나는 러시아에서 창녀로.

씬은 증오한다. "동무 사람 고기 먹어본 적 있어?"라고 말하고, 누나까지 죽게 만든 남한 정부에 대해서는 피맺힌 증오의 발언을 격하게 쏟아놓는다. "내 남한아새끼들이 피를 토하고 살가죽이 벗겨 죽는 것을 꼭 볼 것이오."라고.

곽경택의 상상력에 기인한 북한 이탈 주민의 복수심과 증오심의 근원은 물론 남북분단이며 애매한 국제정세이다. 위정자들의 큰 그림을 해적 두목이 어찌 알리오. 수백만 인구가 핵낙진에 피를 토하고 살갗이 벗겨지는 고통을 당하게 될 최악의 시나리오를 그 누가 지금 상상이나 할 것인가.

곽경택 감독의 엄청난 시나리오는 장동건과 이정재의 파워풀한 연기로 화면을 장대하게 꾸민다. 그리고 탈북자의 이야기에서는 이나 를 보지 않은 남한 사람도 충분히 느낄 수 있는 보편적 '민족적 정서'를 담고 있다.

'쉬리'에서 촉발된 남북문제는 '동막골'을 거쳐 여기까지 온 것이다. 곽경택 감독은 최고의 이야기꾼이며 통일운동가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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