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키는 곧 실베스터 스탤론의 분신이다. 록키가 흥할 때 실베스터도 흥하였으며, 록키가 몰락하자 실베스터도 왕년의 스타로 잊혀져갔다. 사람들이 록키를 그저 추억 속에서만 찾듯, 실베스터도 현실 속의 스타는 더 이상 아니다. 실베스터가 9/11 테러에 격분하여 알 카에다를 토벌하는 [람보 4]를 만들겠다고 외쳤을 때 아무도 그의 말에 관심을 두지 않았을 정도였다. 그는 이제 후배들에게 왕년의 경험을 무용담 삼아 이야기해주며 슬슬 인생의 막장을 준비할 위치에 오르고 만 것이다.
실베스터를 대표하는 필모그래피가 [록키]와 [람보] 시리즈라고 했을 때, 이 중에서도 자전적인 이야기가 투영된 [록키] 시리즈야말로 실베스터의 모든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러나 우람한 근육질 스타도 나이가 들어 더 이상 링 위의 주인공이 될 수 없어지면서 [록키] 시리즈도 에너지가 방전될 수밖에 없었다. 물론 [록키] 시리즈의 몰락은 실베스터의 과오도 무시하기 어렵다. 록키가 소련에 건너가 성조기 문양의 팬츠를 입고 거구의 인간병기를 쓰러뜨리며 러시아인들에게 박수갈채를 받는 [록키 4]는 아메리칸 드림의 표상이었던 록키가 이데올로기의 선전도구로 전락한 것으로, 이 시점을 기준으로 사실상 [록키] 시리즈는 막을 내렸다고 보아야 한다. [록키 5]는 어떻게든 시리즈의 끈을 붙들고자 하는 실베스터의 마지막 몸부림이었으나, 그마저도 시리즈 전체의 쓸쓸한 내리막을 재확인시켜준 것에 불과했다.
그런데 실베스터가 [록키]의 여섯 번째 이야기를 만든다고 했다. 당연히 모두가 비웃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실베스터와 함께 나이를 먹어 온 록키는 이제 환갑잔치를 치를 나이가 되었다. 게다가 [록키 5]에서 록키는 뇌 손상을 당해 더 이상 링 위에 설 수 없다는 판정을 받은 터다. 손자들 재롱을 보고 있을 나이에 두뇌도 멀쩡하지 않은 캐릭터가 다시 복싱을 한다고 하니, 이것은 누가 보아도 말이 되지 않는 무모한 도전이었다. 오사마 빈 라덴을 잡겠다는 [람보 4]만큼이나 무모하고 엉뚱한 발상이었던 것이다.
물론 록키가 직접 링 위에 서지 않고 후배를 양성하는 위치에 있다면 논리적으로 말은 될 수 있다. 하지만 이런 이야기는 이미 [록키 5]에서 퇴짜를 맞은 뒤다. 실베스터는 자신의 역할을 비슷한 위치에 포지셔닝하여 [드리븐]을 만들었으나 이 또한 관객들은 호응을 보내지 않았다. 나이 든 근육질 스타가 청춘들의 멘토 역할마저 할 수도 없다면 대체 무엇을 보여줄 수 있단 말인가? 사실상 아무 것도 없다. 그 동안 근근이 실베스터의 신작이 발표되었으나 줄곧 외면 받은 것도 같은 맥락이다. 적어도 실베스터는, 그리고 그의 분신 록키는 이미 배터리가 방전되었고, 시리즈는 철저히 망가진 채 오랜 세월이 흘렀다.
그래서 [록키]의 여섯 번째 이야기인 [록키 발보아]를 모두가 조소했다. 이 비웃음은 영화 속에도 나타난다. 록키(실베스터 스탤론)는 필라델피아의 누구나 다 알아보는 전설적인 존재이며, 그의 무용담을 듣기 위해 많은 사람들이 록키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에 들르지만, 그가 다시 링 위에 올라 현역 헤비급 챔피언 딕슨(안토니오 타버, 그는 실제 헤비급 챔피언 출신이다)과 대결을 한다고 했을 때 2라운드나 버티면 다행이라며 비웃음을 던진다. 그래도 록키는 도전한다. 그에게는 아직도 자신이 살아있음을 증명해 보일 무언가가 필요한 것이다. 록키가 실베스터의 분신이라 했을 때, 이것은 실베스터의 토로이기도 하다. 자신이 그저 한 물 간 왕년의 스타가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고 싶었을는지 모른다.
따라서 [록키 발보아]는 링 위에서 치열하게 싸우는 사내들의 액션영화가 아니다. 아메리칸 드림을 위해 피가 터지도록 노력하는 이방인 루저의 이야기도 아니다. 과거 속으로 떠밀려 가는 사내가 현실 속에서 자신을 재발견하는 드라마에 가깝다. 따라서 [록키]에 주를 이루었던 록키의 남루한 일상이나 로맨스, 그리고 링 위에서의 처절한 사투는 [록키 발보아]의 관심 대상이 아니다. 시리즈 전편의 각본을 쓰고 2~4편을 직접 연출까지 했던 실베스터는, [록키 발보아]에서 인생막장의 록키가 자신을 재발견하는 드라마로 승부를 건다. 물론 여전한 근육질을 뽐내는 록키의 복싱 장면이 길게 담겨 있으나, 그보다 주가 되는 것은 록키의 드라마이며, 예순의 록키가 후배들에게 훈계하는 일장연설들이다.
냉정하게 말해서 [록키 발보아]가 영화적으로 대단히 참신하거나 빼어나다고 보기는 어렵다. [록키]가 2편까지는 당시로서 꽤 신선한 시도가 탄탄한 각본과 맞물렸던 것에 비해, (물론 3~5편보다는 낫지만) [록키 발보아]에서 신선한 시도는 찾기 어렵다. 대신 보여주는 것보다는 들려주는 것에 대한 비중이 높아 곱씹어 볼만한 록키의 일장연설이 꽤 묵직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영화의 최소한의 기대치를 충족시켜주기 위한 트레이닝 장면과 시합 장면은 [록키]를 직접적으로 연상케 하는 순간이 많다(가령, 그 유명한 필라델피아 미술관 계단 장면처럼 말이다). 이러한 오버랩 속에서, 새로운 것을 보여주기 보다는 지나간 향수를 현재진행형으로 되돌려 과거 속으로 떠밀려가는 록키를 현재의 인물로 만들고자 하는 실베스터의 의도가 엿보인다.
어떤 면에서 보면 음악과 포스터까지 총동원하여 굳이 이렇게까지 해서 전설을 현재진행형으로 바꿀 필요가 있을까 싶기도 하지만, 자신의 분신인 록키를 빌어 의미 있는 메시지를 전달하는 실베스터의 심중은 충분히 공감이 된다. 그리고 [록키] 시리즈의 팬이라면, 시리즈를 거듭할수록 점점 형편없이 망가져갔던 시리즈의 생명력을 실베스터가 손수 A/S 해주는 것으로 만족을 얻을 수도 있겠다. 3편 이후부터 점점 망가졌던 영화의 완성도가, [록키 발보아]에서는 최소한의 기본은 지키면서 향수를 적절히 자극하는 영리한 모양새로 부활했기 때문이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록키 발보아]에서 전성기 시절의 록키를 만날 수는 없다. 만약 록키의 고된 하드 트레이닝을 만나고 싶다면 [록키]를 다시 돌려보는 것이 나을 것이다. [록키 발보아]의 클라이맥스 시합 장면도 허술하지는 않지만 특별히 대단하다고 생각되지도 않는다. 약간의 기교와 세련된 편집은 돋보이지만 진부하고 감상적인 연출은 지나치게 감정의 과잉을 유발한다. 경기의 결과는? 스포일러이기 때문이 아니라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굳이 언급할 필요가 없겠다. 현재 속의 자신을 증명하기 위한 록키의 시합은, 현재 속의 배우 실베스터를 만나게 되는 장이 되었고, 그것 하나로 [록키 발보아]는 존재가치를 충분히 다 했다고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이다.
아마도 [록키 발보아]는 [록키] 시리즈의 진정한 마지막일 것이다. 모두가 비웃었지만, 결과는 비웃음을 받을 정도는 절대 아니다. 어쩌면 [록키]를 모르는 이들에게는 [록키 발보아]가 그저 어떤 할아버지의 잔소리로 들릴 수도 있다. 하지만 [록키]를 아는 이들이라면, [록키 발보아]는 만들어지지 말았어야 할 속편들로 인해 하나도 남김없이 사그라졌던 시리즈의 성실한 A/S인 동시에, 과거 속으로 떠밀리던 추억의 한 부분이 타임머신을 타고 현재로 귀환한 진귀한 경험이다. 시리즈의 출발보다 대단한 마무리라고 할 수는 없지만, 그에 못지않은 값진 마무리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 ps -- 실베스터 스탤론은 [람보] 시리즈의 속편도 준비 중이다. [록키 발보아]처럼 시리즈의 멋진 막을 내릴 것인지는 두고 봐야겠으나 최소한 알 카에다를 때려잡는 황당한 내용이 아닌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리고 또 한 가지 분명한 것은, [록키 발보아]에서 여전한 체력을 과시한 실베스터가, [터미네이터 3 : 라이즈 오브 더 머신]의 아놀드 슈왈제네거처럼 중화기를 들고 다니는 것조차 버거워 보이는 정도는 아닐 것이라는 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