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포가 좀 있습니다. 주의하세요)
그래요, 솔직하게 이야기해 봅시다. 롯데 홍보기술 볼 때마다 무진장 짜증납니다.
(어차피 그것도 하청이겠지만, 왜 하필 그딴 시안에 오케이를 줬는가도 문제는 문제)
극중에서 교통사고 났을 때도 뻔히 도봉동 사거리 어쩌고 하는데도 광화문 사거리에서 송강호가 사고를 냈대느니, 영화의 성
격을 전혀 모르는 듯이 (아니면 씹듯이) 홍보하는 꼬라지들하며, 또 그 전체적인 홍보의 촌스러움이란. 사람들이 스토리 보고
영화를 보는데도 불구하고 송강호니까! 이딴 식의 문구나 써붙이고, 송강호 얼굴까지 퍽 박아주는 그 포스터의 무지한 기운
은 또 어떻습니까. 송강호니까 봐라. 송강호니까 보는거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런 감정이 영화를 대상으로까지 전이되어서 영화도 형편없는데 홍보 때문에 속았네 라는 지경까지 가면 이건 또 좀 억울한
상황이 되어버리는. 그 정도로 영화가 아무 것도 없진 않기 때문이죠. 만약 롯데의 어떤 홍보나 입소문에 속아 이 영화가 쫌
웃겨줄까 라고 생각하거나 시놉시스를 보고 아 뭔가 깨면서도 특이한 세계겠구나 라고 생각하고 이 영화를 관람하려 하시는
지금 당신. 잠깐 스톱.
이거 나름대로 진지한 겁니다. 롯데가 홍보를 뭐같이 해서 그렇지만요. ㅋㅋㅋㅋ
뭐에 관해서 진지한 거냐. 아버지상에 관해서 진지한 거거든요. 그런데 그 아버지상이란 게 실은 온갖 아이러니로 점철되어
있다, 라고 이 영화가 항변하고 있는 느낌이 드는 부분 말입니다. 그 점 하나만은 칭찬할 만합니다.
강인구 역만 주 라인을 형성하면서, 절정에 이르기까지 모든 건 다 강인구에게 크게든 작게든 안티가 되어가는 상황이라, 이
거 어디서 많이 봤던 장면 아닌가요. 크게는 마이클 더글러스가 주연했던 [폴링 다운] 작게는 그 전에 개봉했던 [쏜다]까지.
이런 추락해가는 아버지상을 그리는데 도대체 조폭이란 무슨 특이점을 던져줬을까요.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그의 그 직업은 하등 민간인들과의 특이점이 없습니다. 그 영화에서 만약 그가 대기업 과장 정도 되고
어떤 프로젝트를 따내기 위해서 노력해야 하는 밑의 사람들까지 데리고 있는 어떤 회사원으로 치환을 해봐도, 대사라든가, 수
많은 상황들이 그닥 크게 달라지지는 않습니다. 뭐, 거기서 빠져나오고 싶다든가 하는 점들이 조금 틀리겠지만, 그럼 앗싸리
프로젝트가 거지같은 것이라든가 뭐 그런 식으로 흘러가도 되죠.
그런 강점이 없으면 스토리 되겠어? 하는데, 아슬아슬하지만 스토리는 됩니다. ‘아슬아슬하다’라는 말은 너무 강인구 중심으
로 짜여져 있고 아버지가 이렇게 힘든거야! 라고 무지무지 압박을 주면서 그 쪽으로 몰고 가버린다는 점이 아슬아슬한 반
면, ‘스토리가 된다’는 말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전체적인 흐름에 걸맞는 결말이 나와 줬다는 점과 전체적인 기승전결 구조는
가지고 있다는 데서 생기는 말입니다.
그 아슬아슬한 부분이 상당히 힘든데, 큰 갈등이 없이 압박만 주려는 의도가 때로는 눈에 띄는 것 같기도 합니다만, 그런 점들
을 눈치 못채게 넘어가는 기술도 기술이라면 기술이겠죠.....
감독의 전작인 연애의 목적에서는 시나리오가 어떻게 뽑혀져 나왔는지 모르겠지만,
이번 건 강인구도 주변 인물도 그다지 큰 갈등이 없다는 데서 오는 것 같습니다. 큰 갈등이란 걸 어떻게 말해야 하는가는 개인마
다 차이가 있겠지만, 제 관점으로는 등장인물이 둘 다 이게 아니면 안 돼 하고 극단적으로 밀고 나가는 어떤 주장들과 생각들
의 충돌이라는 이야기입니다. 마누라는 이혼해, 딸내미는 아빠 죽어, 하는 과정들. 뭐 표면상으로는 그럴듯 합니다. 하지만 갈
등의 당사자인 강인구도 마누라도 딸내미도 그 갈등 자체를 비벼대는 과정이 그리 신랄하다거나 강한 것 같지 않습니다. 물
론 실생활은 그런 갈등의 자체가 생각보다 적을 것 같지만, 따져보면 아예 없는 것도 아닌 만큼 그 극단을 보여주는 게 차라
리 나중을 생각하면 더 나을 듯 싶기도 하고 말이죠.
하지만 강인구라는 캐릭터 자체는 공을 많이 들였습니다. 사실 그런 ‘어른’이라는 딱지가 붙어 있으면서도 ‘어른다움’이 없는
캐릭터들을 얼마나 많이 봅니까. 버스 안에서 운전사랑 말싸움 시비가 붙어 버스뚜껑이 열리도록 소리 지르는 술취한 아저
씨, 아무 것도 아닌 대화나 흐름, 상황에 자신의 기준이 맞지 않는다고 해서 덮어놓고 걸고 넘어지고 욕하고 싸우려는 아저씨
등등. (왜 이렇게 아저씨만 생각 나냐. 킁) 그런 캐릭터들의 디테일함은 강인구가 풍부하게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의 핵심은
무지 혹은 타인에 대한 배려 없는 무조건 자기기준의 들이댐이겠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강인구라는 캐릭터의 디테일함에 시간을 쏟는 동안 주변인물들은 이게 힘든건지 아니면 뭔지 아무
것도 알 수 없는 상태가 되어가는 거죠. 몇몇 장면들은 심혈을 기울여 배치했을 거라는 생각을 갖게 하지만, 그것도 강인구의
스토리가 진행되다 보면 느껴져 오지를 않습니다. 이것이 그 ‘아슬아슬함’의 핵심이라고 보면 되죠.
반면에, 이 영화가 [어바웃 슈미트]와 같은 형식이라고 생각되는 부분이 바로 결말입니다. 물론 어바웃 슈미트는 딱히 절정이
라 할만한 구조를 지니고 있는 건 아닙니다. 하지만 그 수없이 차곡차곡 쌓여져 오는 혼자 사는 노인네의 이런저런 에피소드
들이 쌓여지고 나면, 그 결말에 자신이 후원한 어린 아이의 편지를 받고는 우는 노인의 모습에서 묵직한 의미들을 전해주죠.
이 결말도 비슷합니다. 마지막에는 좋은 집과 대형 TV를 갖추고 그 속에서 라면을 먹다가 내팽개치는 강인구, 하지만 화면 가
득 잡아놓은 대형 TV에서 쏟아져 나오는 가족들의 ‘우아한 세계’ 옆에서 자신이 팽개친 라면 건덕지들을 치울 수밖에 없는 강
인구의 현실. 그 난리부르스를 겪어가며 자신과 가족들을 행복하고 더 잘 살게 하고자 했건만 남는 건 결국 대형TV만큼이나
더 큰 부담들과 기러기 아빠라는 딱지와 그렇게 라면을 치우듯 발버둥질을 하는 것에서 별로 벗어나지 못한 자신의 위치.
이것이 바로 아이러니를 표현하는 방법으로는 모범적이라는 사실에서, 이 영화를 끝내 재미없음의 위치로 추락시키는 건 좀
그렇다는 느낌이 나오는 겁니다. 그 때까지의 작은 그림들을 맞추어 얻어낸 결론은 결국 누가 죽는 것도 아닌 그냥 생활에서
오는 아이러니와 또 더 큰 아이러니로 걸어가는 아버지의 상, 정도인 것이죠.
그래서 느와르란 단어까지는 솔직히 과장이지만, ‘안 봐줄 만한 세계’도 아니라는 말이 훨씬 더 맞는. 그런 점들을 감안하고 영
화를 보시면 좋을 듯 합니다. 이것도 저것도 아니라는 말보다는 이건 좀 그렇고 저건 좀 낫다라는 것이죠....후훗.....
사족으로.
1. 필름2.0의 한 기사에서는 이 영화의 이런저런 사색을 늘어놓으며 끝에 300이 30대 남자들이 많이 봤으니 그것이 남성들의
잃어버린 권리에 대한 노스텔지어를 쫒아가는 거라고 말하는 부분이 있으나.....솔직히 그런 딸딸이를 친다는 의미보다는 한
국영화가 보여주지 못했던 스펙타클에 대한 목마름이 더 컸다는 생각을 해보고 싶군요......영진공에서 따져주는 자료를 보면
20대는 사회성, 30대는 감성, 40대는 이성이라는 관객성향이 이미 결론 난 것도 있는데.....
2. 뭐 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으나......진정한 아버지의 상이 겹쳐지는 건 아직 김훈씨의 소설 칼의 노래를 따라오는 것이 없다
는 생각입니다. 김훈 씨가 쓴 화장이라는 이상문학상 소설도 있는데 그게 훨씬 더 이 영화보다는 낫다는 생각도 들구요.....뭐
랄까.....진중함과 담담함의 차이랄까요.....정말 절절히 뭔가가 느껴져 오면서도 그걸 묘사하는 담담함이 사람을 정말 미치도
록 빠져들게 만드는 무언가가 있죠.....흐흐흐......이 영화를 보고 그래도 몇% 부족한데 하시는 분 있으시면 두 소설을 추
천......
3. 왜 이렇게 이 영화의 무게감이 흐려질까.....라는 생각을 해본 결과......
칸노요코의 음악이 너무 튀는 것이 아닐까.....라는 생각도 들었답니다.....
4. 이 영화를 보신다면 쵸코파이 박스도 흉기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전율하실 겁니다. ㅋㅋㅋ 농담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