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우아한세계

화술의달인 작성일 07.04.16 12:3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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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아한 세계의 영화평을 한마디로 줄인다면 '만성피로에 시달리는 조폭 기러기 아빠의 삶'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다. 부인과 두 아이를 둔 강인구(송광호 役)는 늘 피곤하다. 조직의 중간 보스로 밑으로 부하들을 챙겨야하고, 위로는 회장님을 모서야하고, 그리고 회장의 동생이라는 이유로 조직에 기생하고 있는 무능한 상무는 언제나 자신의 공을 가로채려고 하고, 그것으로부터 자기의 몫을 챙겨야한다. 늦게까지 밖에서 시달리고, 집에 들어와 잠이라도 잘라치면 아내의 잔소리, 그리고 인구의 직업을 어렴풋이 알고부터 아빠를 경멸하는 사춘기 딸, 그리고 유학 가있는 아들까지 인구가 감당해야할 짐은 너무나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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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렇기 때문에 인구는 '인썸니아'에 나오는 알 파치노처럼 늘 피곤하다. 간만에 큰 아파트 재개발 공사를 따냈지만, 여기저기서 그를 가만히 놔두지 않는다. 조직에서 인정받는 인구를 탐탁지 않게 생각하는 상무는 호시탐탐 인구를 노리고 있고, 설상가상으로 공사 인부는 조폭을 상대로 파업을 하지 않나, 정말 영화 속 인구의 표현을 빌리자면 정말 '퍼펙트' 하다. 인구는 이제까지 직업의 귀천을 떠나 자신이 깡패 일을 하는 것은 가족을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살아왔다. 하지만 아빠가 칼에 맞아 죽었으면 좋겠다는 말을 일기장에 서슴없이 쓰는 딸과 점점 생활에 지쳐가는 부인은 심지어 이혼까지 요구한다. '내가 뭣 때문에 이 짓을 하고 있는데...'라고 되뇌며 인구는 매일 저녁 술에 취하고 회의를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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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록 직업이 깡패라는 특수한 설정이 있기는 했지만, 인구의 삶은 여느 가장과 다르지 않다. 인구의 직업이 회사원, 혹은 공무원, 상인이라고 해도 이러한 뫼비우스의 띠와 같은 삶과 현실은 달라지지 않을 것이다. 그저 인구가 깡패라는 것은 항상 폭력과 죽음에 맞닿아 있어 조금 더 긴장감을 유발시키는 장치일 뿐이다. 아마 이 영화와 비슷한 설정이 있는 영화라고 한다면 형사가 주인공이 되겠지. 늘 범인을 잡으러 뛰어다니지만, 가정에 소홀할 수밖에 없는 가장의 모습이 닮았다. 영화가 마지막 막바지로 가면 인구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다. 그토록 자신을 희생하며 일했던 조직도 끝내 자신을 몰라주고, 가족마저도 인구를 떠난다. 끝내 깡패의 허울을 포기하겠다고 했지만, 그 결심을 한 날이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처럼 처절하고 슬플 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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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재림 감독은 '연애의 목적'으로 일찌감치 주목받고 있었고, 나 역시 기대가 컸다. 이번 작품 역시 전작과 같이 사실적이고 현실적인 스토리텔링과 연기는 아주 좋았다. 전작의 박해일, 이번 작품의 송강호라는 연기 잘하는 연기자의 뒷받침이 있었지만, 전반적으로 영화에서 풍겨 나오는 여과 없는 쨍한 느낌과 자연스럽게 흘러가는 이야기는 흐름이 툭! 끊김 없이 잘 흘러가고 있다. 이 역시 '말아톤'의 정윤철 감독이 '좋지 아니한가'에서 전작과 비슷한 호흡을 가지고 간 것과 유사하다. 하지만 조금 아쉬운 것은 캐릭터와 현실의 묘사에 충실한 나머지 스토리의 아기자기함은 조금 떨어지는 것 같았다. 다음 작품은 최동훈 감독의 '범죄의 재구성'과 같은 치밀한 스토리의 영화로 내공을 더 쌓았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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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리고 '우아한 세계'에서 가장 우아하게 돋보이는 것은 송강호의 연기다. 이제 국내에서 그의 연기와 존재를 폄하하거나 부인하는 사람을 없을 것이라고 본다. 피곤에 지치고, 더 이상 갈 길이 없는 깡패 가장의 모습을 가장 자연스럽게 연기한 것은 송강호가 아니면 힘들지 않을까한다. 영화를 보면서 '정말 깡패 맞아?'라는 생각이 들기도 하지만, 자신을 죽이려고 달려드는 다른 조직원들과 싸우고 도망치는 장면은 정말 실제상황 같았다.(이 씬은 CCTV화면을 교차편집하면서 실제장면 같은 효과를 줬다.) 칼 맞고 쫓기면 저렇지 않을까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에 유학 간 아이들과 아이들을 따라간 부인이 보내준 비디오를 보면서 끝내 울음을 터뜨리며 '내가 뭘... 그리 잘못했길래...'라고 말하는 장면은 가족이지만 함께 할 수 없는 기러기 아빠의 심정을 가장 잘 표현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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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제는 국민 조연으로 불릴만한 오달수의 연기도 일품이었고, 노상무 역할로 나오는 윤제문의 연기 또한 좋았다. 특히 유하 감독의 '비열한 거리'에서의 비슷한 역할이었는데, 아쉽다면 너무 비슷해서 그 보스가 이 노상무가 아닌가 하는 착각이 들었다. 그리고 노상무의 형으로 나오는 노회장의 캐릭터 또한 부실한 중견배우의 틈을 두텁게 해줄 만한 연기였다. 마지막으로 영화를 보다보면 문득 얼큰하게 취한 가장의 축 처진 뒷모습을 배경으로 '아빠의 청춘'이 흘러나오지 않을까 생각되지만 이 노래는 나오지 않는다. 영화의 초반에 흘러나오는 엔카 풍의 경쾌하지만 구슬픈 음악은 일본의 음악가 '칸노 요코'가 담당해서 놀랐다. 칸노 요코라면 당연히 카우보이 비밥의 재즈풍의 음악만 떠올렸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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