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보통 영화를 볼 때, 제목에 대해서 그렇게 깊이 생각을 하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조용한 세상"은 제목부터 내 머릿속에 물음표를 그리게 했다.
일단 스릴러라는 장르와 제목 사이에서 묘한 위화감이 느껴졌다고 할까?
그러나 영화를 보고 나오면서 왜 이 영화의 제목이 "조용한 세상"인지를 알 수 있었다.
가끔 어른들이 이런 말씀을 하신다.
"옛날에는 옆 집에 숟가락이 몇 개 있는지도 알았었는데..."
그에 비해 현대사회는 우리 동네에 누가 사는지, 옆 집에 누가, 어떤 사람들이 사는지조차 모르고 지내는 사람들이 많다.
불우한 가정의 어린 아이는 제대로 먹질 못해 음식 쓰레기를 주워먹고,
아이들이 죽어 나가는데 찾는 가족도 없고,
지하철에서 사람이 자살을 했다는데 그저 퇴근길에 지장이 있다는걸 보도하는 뉴스,
영화 중 "세상 졸라 삭막해지는구만." 이라는 김형사의 말처럼
조용하다 못해 삭막한 세상,
바로 그 중심에 우리가 있고 신비한 남자 정호, 사건조차 일상이 되어버린 남자 김 형사, 어린 소녀 수연이 있다. 그리고 그들은 서로 소통한다.
이 영화는 소녀들의 연쇄 납치살인사건을 중심으로 일단 스릴러라는 장르를 표방하고 있지만,
스릴러라고 하기엔 극적 긴장감도, 스토리의 밀도도 떨어진다.
그래서 난 이 영화가 스릴러라고 말하고 싶지 않다.
"조용한 세상"에 대한 "Bad 100%"의 전문가 평점에 동의할 수 없는 이유도 거기에 있다.
이 영화에서 "범인이 누구인가", "얼마나 뛰어난 반전인가"는 중요하지 않다.
소녀들의 실종과 죽음이 주 스토리를 구성하고 있으나, 그것은 우리 사회의 소통과 단절을 말하고자 하는 수단에 불과하다.
정호가 찾아간 아이의 집에서 아이가 껴안는 것이 엄마의 주검이라는 사실이,
아이가 시무룩하게 그네 위에 앉아있던 모습이,
죽은 아이를 위탁보호하고 있던 집에 찾아갔는데 아이가 죽었다는 사실에 슬퍼하는 모습이 아니라 그저 무심하게 "이런 옷 사준적 없지?" / "언제 뭐 옷 살 돈이나 줘봤어요?" 라는 대화를 나누는 부부의 모습이 안타까웠고 화가 났다.
"조용한 세상"이 개봉하기 전,
제목을 보고 이런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시끄러운 세상보다는 조용한 세상이 낫지 않을까?"
하지만 세상이 너무 조용한것도 문제가 있다.
세상은 좀 시끄러워질 필요도 있지 않을까.
우리들 사이의 소통과 교감으로 인한 시끄러움이라면,
시끄러운 세상이라도 참 살만한 세상일테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