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스포일러 주의
어제 여자친구와 함께 섹스 앤 더 시티를 봤습니다.
의외로 러닝타임이 길었네요. 하지만 그 긴 시간을 숨돌릴 틈 없는 수많은 장면과 대사들로 채워내 장장 6년을 찍어온 드라마의 모든것을 정리하고자 하는 의지가 보였습니다.
드라마의 장점을 최대한 살린 전개는 괜찮았습니다. 유쾌함을 잃지 않는 분위기 가운데 캐리의 익숙한 목소리가 함께하고, 중간중간 웃음지을 수 있는 장면들. 무엇보다 섹스 앤더 시티의 명물 볼거리인 화려한 명품과 패션의 향연! 패션엔 문외한인 저로써도 아름다운 옷에는 그만큼의 가치가 아깝지 않다는 이들의 마음가짐이 조금이나마 이해가 갈 정도였습니다.
혹자들에겐 머리가 비고 씀씀이가 헤픈 된장녀들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바 있지만 사실 이 시리즈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다사다난하고 시시콜콜하기 까지 한 남녀간의 사랑 그 자체가 아닐까 합니다. 패션과 유행에만 초점을 두었다면 장장 6년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을 순 없었겠죠.
남자인 저도 여자친구가 보내주던 것을 한편 한편 보다보니 선입견을 접고 어느새 드라마에 영화까지 섭렵하게 되었구요.
하지만 단점은 보이네요.
우선 6년이나 굳혀온 캐릭터들의 성격과 개성을 시리즈를 결말짓고자 하는 의지 때문에 너무 죽이려 드는 영화의 내용이었습니다. 그것이 드라마와의 가장 큰 차이이구요.
기나긴 방황을 하던 외로운 싱글 캐리(나이도 많고). 드디어 완벽한 사랑을 만나 결혼이란 완벽한 결말에 도달하다...
그게 시리즈가 말하고자 하는 바였다면, 4명의 그 길고 긴 연애사가 아쉽네요. 물론 그것이 세상 대부분의 남녀가 꿈꾸는 가장 완벽한 사랑의 형태이지만 누구나 알고있는 이 공식에 결말이 좀 더 자유로웠다면 드라마와의 괴리가 덜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가장 자유분방한 사만다는 여전히 자유연애를 고수합니다만, 영화는 그녀에게마저 애인의 기억이 담긴 반지를 끼워 구속해 버리네요.
모든 사랑이 각자의 짝을 만나거나 서로의 사랑을 다시금 확인하여 그 구속이 더욱 돈독해지고 행복해진다. 그건 드라마의 마무리로는 괜찮은 전개입니다만, 나이 50에도 화려한 연애를 할 수 있는 여지(그야말로 여지만을)을 남기는 것만으로는 이 드라마의 팬들에겐 성에 차지 않는 결말이네요.
어쩌면 그것이 사랑의 본질일까요? 그렇다면 저 역시 이 시리즈에 빠져 사랑에 대한 환상만을 키워온 된장남일수도 있겠네요. 여자친구분에게 더욱 잘해야겠습니다.
건방지게 써내려간 졸문 읽어주신 분들께 감사드립니다.
(조연으로 등장한 제니퍼 허드슨은 반가웠습니다. 그럭저럭 괜찮은 까메오 역할과 함께 엔딩 크레딧을 빼어난 가창력으로 장식해줬네요. 아메리칸 아이돌로 시작해 점점 아름다워지는것 같아 보기 좋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