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0만 관객을 동원한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한국 최고의 흥행작이기도 하지만 한국영화에서 오랫동안 잊힌 장르인 괴수영화의 부활을 알린 작품이기도 하다. 1960년대부터 시작한 한국 괴수영화의 모든 것을 알아본다. 7.29~8.3│시네마테크 KOFA
괴물, 한강에 출몰하다
사이좋게 음악을 듣는 연인, 한가로이 산책을 하거나 책을 읽는 사람들, 여유로운 한때를 보내는 가족들로 북적거리는 2006년 어느 휴일. 그 전형적인 휴일의 풍경을 뚫고 한강 둔치 한가운데 불현듯 괴물 한 마리가 흉측한 자태를 드러내며 출몰한다. 다섯 갈래로 갈라진 입을 벌리고 절뚝대는 다리와 꼬리를 휘두르며 대낮에 한강에 나타나 사람들을 공격하는 괴물, 그 무시무시한 꼬리 끝에 강두 가족의 희망인 막내딸 현서가 휘감겨 한강 깊은 물속으로 사라진다. 그리고 마침내 공기총과 화염병, 활로 무장한 가족은 현서를 구하기 위해 넘실대는 한강 아래 두꺼운 콘크리트로 둘러싸인 어두운 하수구 속으로 들어간다.
1,300만 관객을 동원하며 한국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갱신한 봉준호 감독의 <괴물>은 다양한 해석과 의미를 낳으며 2006년 한국영화계를 강타한 괴물이었지만 동시에 한국영화에서 오랫동안 잊힌 장르인 괴수영화의 부활을 알린 작품이기도 했다. 여기에 (영화 안팎을 둘러싼 뜨거운 논쟁에 휩싸였지만 그 찬반 여부를 떠나) 오랫동안 SF와 괴수영화에 정성을 쏟아왔던 ‘괴수 전문가’ 심형래 감독의 <디 워>가 가세하면서 한국영화에서 괴물의 존재가 새로이 부각되는 계기가 되었다.
판타지 공포영화나 SF의 한 장르로 다양한 거대 괴물이 등장하는 괴수영화들이 현재까지도 활발히 만들어지는 할리우드나 일본과 달리 그동안의 한국영화는 괴수와는 거리가 멀었던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의 괴수영화는 60년대부터 시작해, 80년대와 90년대로 이어지며 미약하나마 명맥을 유지해왔다. 7월 29일부터 한국영상자료원에서 열리는 기획전, ‘괴수대백과, 한국 괴수들이 온다’에서는 그동안 알고 싶었던, 하지만 알기를 두려워했던 한국 괴수에 관한 모든 것을 만날 수 있다.
한국 괴수영화의 시조
한국에서 본격적인 괴수영화가 등장하기 시작한 것은 1960년대 부터였다. 특수효과와 촬영에 능했던 이용민 감독의 1961년 작 <악의 꽃>에 흡혈식물이 등장했고, 1962년에는 한국 괴수영화의 효시로 꼽히는 김명제 감독의 <불가사리>가 최무룡, 엄앵란을 주연으로 제작되기도 했다. 하지만 우리에게 보다 익숙한 괴수영화는 1967년 나란히 개봉된 두 편의 영화, 그러니까 이혁민 감독의 <우주괴인 왕마귀>와 김기덕 감독의 <대괴수 용가리>였다. 특히 <대괴수 용가리>는 한국전쟁 이후 열악했던 상황을 극복하고 산업으로의 틀을 만들어갔으며 그 과정에서 특수효과와 다양한 장르에 대한 실험을 해나가던 1960년대 한국영화계의 상황과 새로운 시도를 읽을 수 있다는 점에서 의미를 찾을 수 있는 작품이다.
청춘영화의 대명사라 할 수 있는 <맨발의 청춘>으로 유명한 김기덕 감독의 <대괴수 용가리>는 당시로는 놀라운 30만 관객을 모은 최고 흥행작이었다. 한국 최초로 우주비행선을 쏘아 올리던 날, 원인 모를 지진과 함께 괴물이 출몰해 서울을 쑥밭으로 만들어버린다는 설정으로 시작하는 영화는 거대 괴물의 자태와 우주선이 발사되는 장면 등을 통해 한국영화의 특수효과 수준을 일거에 끌어올렸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
당시로는 획기적이었던 이러한 특수효과는 일본에서 초청한 야기 프로덕션 기술진의 미니어처 세팅 기술을 전수받아 선보인 것이었다. 괴수의 자태를 비롯해 <고지라>를 비롯한 일본 특촬영화들의 기술과 이야기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음을 부인할 수는 없지만 전설 속의 동물인 ‘용’과 한국 민담 속에 자주 등장하는 괴물이자 쇠를 먹고 자란다는 ‘불가사리’를 합성해 지은 ‘용가리’라는 제목에서도 보듯 한국식 괴물을 시도했던 작품이기도 하다.
괴수에서 시대를 읽다
전통적으로 영화에서 괴물이나 괴수는 당대 사회의 공통된 공포나 억압된 욕망 등을 투사하는 대리인, 타자를 상징하는 것이었다. 즉, 동시대 사람들이 공통적으로 두려워하는 것이 괴물, 괴수, 살인마 같은 다양한 타자의 이미지로 형상화되어 표현되어왔다는 것이다. <대괴수 용가리>가 발표된 1960년대 후반의 한국 사회는 식민과 해방, 전쟁으로 이어지는 숨 가쁜 시기를 거쳐 전쟁의 폐허에서 막 벗어나 재건의 의지, 잘살아보자는 의지를 다지던 시기였다. 하지만 동시에 전쟁과 분단, 이념의 상흔이 여전히 깊은 그늘과 앙금처럼 남아 있던 시기이기도 했다.
이러한 당시 시대상을 반영하듯 <대괴수 용가리>에서는 미래에의 희망과 함께 여전히 한국전의 후유증과 공포를 안고 있던 당시 한국 사회의 무의식을 발견할 수 있다. 영화의 첫 장면은 한국 최초로 우주선을 쏘아 올리는 것으로 시작된다. 이제 한국도 우주선을 쏘아 올릴 정도로 과학 강국이자 잘사는 나라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반영한 듯한 이 장면은 하지만 우주선이 발사되자마자 서울 외곽에서 나타난 괴수에 의해 부서져버리는 것으로 무너져버린다. 더구나 한국의 휴전선 부근에서 깨어나 서울로 내려오면서 닥치는 대로 파괴를 일삼는 고대 괴수 용가리의 모습과 우왕좌왕 달려가는 사람들, 무너져 내리는 건물, 그리고 괴수의 파괴 앞에 무력한 군인들의 모습은 한국전쟁 이후 불과 10여 년이 지난 당시 한국인에게는 영화 속 장면 그 이상으로 다가왔을 것이다.
특히 용가리가 서울을 공격할 때 이리저리 내달리는 사람들의 모습과 카메라를 기울여 이를 불안하게 잡은 장면은 대개의 한국영화에서 한국전쟁 당시의 피난민들의 모습을 그리는 방식과 닮아 있다. 인왕산 근처에서 본격적으로 파괴를 시작해 광화문, 세종로, 시청, 남대문, 남산으로 이동하는 용가리의 경로나 한강철교가 무너지는 장면 역시 구체적으로 한국전쟁을 상기시킨다.
이는 <대괴수 용가리>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는 <고지라>가 특수한 일본적 상황에서 읽히는 맥락과도 비슷하다. 흔히 ‘특촬영화’로 불리며 독특한 하나의 장르를 형성하고 있는 일본 괴수영화는 사실 ‘원폭’과 그로 인한 패전이라는 일본의 집단 무의식, 정신적 외상과 많은 관련이 있다. 할리우드 특수효과의 아버지라 불리는 레이 해리하우젠의 <심해에서 온 괴물>에서 깊은 영향을 받은 <고지라>가 첫 선을 보인 것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폭을 투하한 지 불과 9년 정도의 시간이 흐른 1954년이었다.
고릴라의 ‘고’와 일본어로 고래를 뜻하는 ‘구지라’(くじら)의 ‘지라’를 합쳐 만들어진 ‘고지라’는 수소폭탄 실험 결과 탄생한 거대 괴물이었다. 개봉 당시 별다른 기대 없이 극장을 찾았던 관객들은 그러나 거대 괴수가 스크린 가득 들어차는 순간 침묵을 지켰으며 일본 본토에 상륙해 거침없이 도심을 파괴하는 모습에서는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여전히 전쟁의 기억을 지니고 있던 당시 일본인들에게는 그것이 단순히 영화 속 상황으로만은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시 961만 명을 동원한 영화의 성공 요인으로는 물론 각종 전쟁영화에서 특수촬영을 담당하며 실력을 쌓았던 특수촬영감독 츠부라야 에이지의 경이로운 특수효과와 볼거리를 들 수 있다. 하지만 보다 근본적인 이유는 수소폭탄 실험의 부작용으로 생겨났고 그에 대한 복수라도 하듯 인간사회를 파괴하는 고지라라는 존재가 일본인들의 깊은 상처인 원폭의 기억을 환기시켰기 때문이다.
그들에게 고지라는 원폭 자체가 육화된 존재였으며 따라서 당시 일본인들에게 영화 속 장면은 가공의 이야기가 아닌 ‘현실’로 다가왔던 것이다. 나아가 당시 일본 관객들은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자신이 속하지 않은 세계에 내던져진 고지라에게 공포와 동시에 연민과 슬픔을 느꼈다. 가해자이자 파괴자인 동시에 원폭의 피해자인 고지라에게 일본인들은 자신들을 투영시켰던 것이다. 이렇게 본다면 <대괴수 용가리>는 한국전쟁을 겪으며 남북으로 나뉜 한국의 특수한 상황과 당시 전 세계를 휘감았던 냉전의 기운, 또 그러한 냉전 체제 하에서 당시 최고조에 달했던 미국과 소련의 우주전쟁 등의 당시 시대 분위기 속에서 탄생한 작품으로 볼 수 있다.
괴수대백과, 한국 괴수의 모든 것
1962년 제작됐던 <불가사리>의 리메이크작으로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서 제작했던 괴수영화 <불가사리>(1985)는 한국적 괴수의 또 다른 전형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특별한 작품이다. 쇠를 먹고 자라는 괴물에 관한 구전설화를 바탕으로 한 영화에서 불가사리는 어린아이의 동심과 어른의 양심을 가진 인간적인 괴물로 묘사된다. 불가사리는 주인공 아미를 구하고 자살하는데, 여기서 불가사리와 주인공의 관계는 개인적이라기보다는 집단적인 것이다. 불가사리는 농민들의 봉기에 주도적인 무기로 참가하며 많은 사람들과 함께 행동한다. 국내에 첫 공개될 때 ‘이불을 덮고 잠을 자는 괴수’라고 소개되었을 정도로 한국적인 괴수의 모습을 보여주는 작품이기도 하다.
하지만 영화 속 괴물의 모습을 통해 사회의 다양한 무의식과 사회상을 읽고자 하는 이러한 시도와는 별개로 사실 대부분의 괴수영화 팬들을 환호케 하는 것은 괴수물 특유의 스펙터클과 그로 인한 시각적 쾌감일 것이다. 한눈에도 미니어처임을 알 수 있는 조악한 세트, 투박한 팔과 꼬리 등을 흔들어대는 거대 괴물의 활약(?)에 와르르 부서져 내리는 건물, 비명을 지르며 달려가는 사람들, <우주괴인 왕마귀>나 <킹콩의 대역습>, 그리고 일본 괴수영화 속에 등장하는 온갖 괴수들을 시침 뚝 떼고 총출동시킨 <비천괴수> 등은 이러한 아날로그 시대, 조금은 어설픈 괴수들의 모습을 만끽할 수 있는 영화들이다.
무엇보다 이번 기획전을 통해 처음 프린트가 공개되는 <신서유기(손오공대전비인)>는 괴수영화 팬이라면 놓칠 수 없는 작품. 오랫동안 고군분투하며 한국 괴수영화의 명맥을 이어왔던 심형래 감독의 역작 <티라노의 발톱> 역시 비디오가 아닌 필름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절호의 기회다. 여기에 봉준호 감독의 다층적인 괴수영화 <괴물>과 <디 워>에 이르기까지, 10편의 괴수영화들이 총출동하는 이번 기획전에서는 각 시대에 따라 괴물에 투영된 사회의 모습, 한국적인 정서, 그 속에서 살아온 사람들의 다양한 모습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여기에 사람이 직접 괴물 옷을 입고 괴물을 연기하는 아날로그 방식에서 최첨단 디지털로 창조된 괴수까지, 자체로 한국 특수효과의 변천사라 할 만한 영화 속 괴수들을 통해 한국영화 기술의 변화 과정을 직접 만나보는 것도 ‘한국괴수영화전’이기에 가능한 특별한 경험이 아닐까.
괴수영화 팬들을 위한 필견의 목록
한국 괴수영화의 큰형님, 불완전판으로 돌아오다 <대괴수 용가리>
1967 | 48분 | 김기덕 | 오영일, 남정임, 이순재
한국 괴수영화의 대표작인 <대괴수 용가리>는 아쉽게도 필름의 상당 부분이 유실되어 완전한 영화를 만날 수는 없다. 그동안의 유일한 대안은 북미에서 출시된 영어 더빙 DVD를 만나는 것. 하지만 2007년 자료원에서는 남아 있는 일부라도 보기 원하는 관객을 위해 보관되어 있던 일부를 복원해 공개했다. 전체 80분 중 48분만 남은 불완전판이지만 영어 더빙이 아닌 한국어 <대괴수 용가리>를 만날 수 있는 유일한 기회다. 이번 기획전에서는 불완전판과 미국에서 출시된 영어 더빙 DVD 버전을 함께 상영한다. 불완전판이지만 그러기에 더욱 의미가 크다 할 수 있는 복원 버전 상영 후에는 김기덕 감독과의 대화 시간도 마련된다.
80년대 극장가를 강타한 한홍 합작 대작 <신서유기(손오공대전비인)>
1982 | 95분 | 김종성 | 김용만, 이재영
<대괴수 용가리> 불완전판과 더불어 이번 한국 괴수 기획전에서 가장 주목해야 할 작품. 중국의 유명한 고전인 <서유기>를 바탕으로 한홍 합작으로 제작된 <신서유기>(1982)와 <손오공 홍해아대전>(1985) 시리즈는 80년대 유년기를 보낸 이들에게는 지금도 두고두고 회자되는 무협괴수영화다. 특히 <신서유기>는 이번 기획전에 맞춰 새롭게 프린트를 제작, 처음으로 공개하는 것으로 괴수영화 팬이라면 필견의 목록이다. 거대한 왕거미, 박쥐 요괴 등과 싸우는 손오공의 활약상이 애니메이션과 이중노출, 합성 등 다양한 특수효과, 나름의 정교한 세트 속에서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한국식 괴수의 전형, 쇠를 먹고 자라는 <불가사리>
1985 | 95분 | 정건조, 신상옥 | 장선희, 사쓰마 겐하치로
한국 괴수영화의 효시인 김명제 감독의 1962년 작 <불가사리>를 신상옥 감독이 북한에서 리메이크한 작품. 쇠를 먹고 자라는 괴수, 불가사리에 관한 구전설화를 바탕으로 주인공 아미와 불가사리가 농민 봉기에 참가하여 정부의 군대와 싸움을 벌이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흥미롭게도 괴수 불가사리는 고지라의 슈트 연기자 사쯔마 겐하치로가 불가사리를 연기하고, <고지라> 1984년도 판에서 괴수 조형을 담당했던 야스마 노부유키가 괴수 디자인을 맡는 등 일본 제작진에 의해 탄생했다. 하지만 괴수가 주인공과 함께 농민 봉기에 참여하고 그래픽이 아닌 실제 엑스트라를 동원한 대규모 군중 신 등은 북한영화의 제작 환경 덕에 가능했던 장면들이다. 일본 괴수영화의 직접적인 영향 아래 있으면서도 북한의 역사 해석이나 사회적 맥락이 그대로 투영된 작품. 아쉽게도 프린트가 남아 있지 않아 VHS로 상영된다.
한국 괴수영화의 계보를 잇는다 <티라노의 발톱>
1994 | 92분 | 심형래 | 심형래, 신세길
아주 먼 원시의 과거, 흉포한 부족장은 공룡의 제왕 티라노사우러스를 숭배하여 사람들을 제물로 바친다. 부족장에게 반항하다 제물로 바쳐지게 된 여자 원시인 오마, 아로는 티라노에게 바쳐진 오마를 극적으로 구해 탈출한다. 실감나면서도 일견 귀여운 공룡, 디지털로 세련되게 만들어진 괴수가 아닌 아날로그식 괴수가 정감을 전해준다. 원시인의 실감나는 분장을 비롯해 특수효과에 대한 감독의 애정 어린 집념으로 가득한 작품. 특히 ‘아주 먼 원시’에 사는 원시인답게 그들만의 언어로 나누는 대화 방식은 신선한 충격이다.
애니메이션 괴수영화도 있다 <괴수대전쟁>
1972 | 69분 | 용유수
한국 초기 장편 애니메이션계를 대표했던 용유수 감독의 괴수 애니메이션, <괴수대전쟁>이라는 제목에 어울리게 <고지라>의 괴수를 비롯해 일본 괴수영화의 괴수가 총동원됐다. 거대한 ‘슈퍼 자이언트’로 변해 괴수들과 싸우는 주인공의 모습 역시 ‘미러맨’의 외양을 가져왔다. 베를린 대학을 뜻하는 ‘백림대학’ 하인리히 박 교수를 비롯해 노란 머리의 미국 미녀 첩보원 등 서양인들을 주인공으로 한 점도 특이하다. 1970년대 우주와 과학, 서양에 대한 당시 한국 사회의 무의식과 정서를 엿볼 수 있는 작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