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시만 안녕. 필름 2.0

아자가올 작성일 09.02.05 04:5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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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얼마전 지하철안에서 잠시 읽기 위해 필름 2.0을 구입하러 슈퍼에 들어갔더니 출간되지 않은지 좀 됐단다.

어리둥절해 하다가 별 생각없이 원래 읽던 타영화지를 손에 들고 집으로 와서는 필름 2.0에대한 소식을 찾아봤다.

재정악화로 인해 지난해 말부터 출간을 잠시 중단했단다.

매달 정기구독을 하며 꼼꼼히 챙겨보는 열혈독자는 아니었지만

군생활 시절 내무실에서 소일거리를 찾다가 휴가자의 손에 들려와 처음 만났던 

하드보드 표지의 그 빳빳한  촉감을 아직 기억하는 나로써는 조금 섭섭한 느낌이 들었다.

 

영화 비평이 점점 그 설곳을 잃어가고 있는가보다.

영화 평론가들에 대한 후천적 혐오증이 있는 한 친구의 말을 빌리자면

영화비평은 영화제작자들의 창작의욕을 저하 시키는 쓸데없는 말장난이며

그런 말장난은 없어져야 할뿐더러 아마 멀지않은 미래에 그 설곳을 잃을것이라 예견(?)한적 있다.

그 친구의 말이 언뜻 이해는 간다.

오랜 시간동안 영화평론은 일반 대중들에게서 점차 멀어져 온게 사실이다.

대중들에게 먼저 다가가려는 움직임은 미미했으며

오히려 담론이라는 두꺼운 장막속에서 오랜시간동안 그들만의 이야기를 해온것도 사실이다.

일반 대중들은 그런 그들에게 점점 무관심해져 갔고

결국 이제는 가쉽성 연예론에 밀려 영화비평은 시나브로 그 설자리를 점점 잃어가고 있다.

그래도 필름 2.0의 중간 소식을 들은후 마음 한켠이 무거운건 왜일까.

 

영화평론의 입지가 급격하게 약해진건 인터넷의 보급과 그 궤를 같이 한다. 

한국 영화산업이 폭발적으로 팽창하고

인터넷이라는 의사소통 도구가 지금처럼 자리를 잡기전인 90년대 후반. 

영화잡지는 영화흥행에 있어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했다.

영화에 대한 정보를 얻기가 힘들었던 그 시절,

영화평론가의 비평 한마디 한마디에 일반 관객들은 귀를 쫑긋 기울였으며,

영화잡지에서 매겨지는 별점 반개 한개에 영화 제작자들은 일희일비 했다.

영화잡지를 사서 읽어보는것이 5000원 영화표값에 대한 최소한의 안전장치였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인터넷이 들어선 후 입장은 180도 역전되었다.

블로거의 말랑말랑한 리뷰가  비평가들의 딱딱한 전문평론을 대신하기 시작했으며 

커뮤니티를 통한 입소문이 영화잡지의 별점을 밀어내기 시작했다. 

인터넷의 침공이 시작된 것이다.

영화관련 언론매체사들은 시작되는 변화를 감지하고

발빠르게 웹으로 그 영역을 확장시키기 시작했지만

영화비평이 가진 태생적 약점을 완벽히 보완 할 수는 없었다.

 스크롤 단추를 오르락 내리락 하는것도 귀찮아진 인터넷 세대들이 하얀 화면에 깨알같이 박힌, 

그것도 머리가 지끈 아파오는 빡빡한 내용을 꼼꼼히 읽어볼리가 만무했던 것이다.

자극적이고 찰나적인 정보에 입맛이 길들여진 그들이 원하는 대답은 단순명료한 이분법에 입각한 것이어야 했다.

벗느냐 안벗느냐. 죽느냐 사느냐, 재미있는가 없는가, 절름발이가 범인인가 아닌가.  

 

물론 영화를 팝콘 한 바구니와 함께하는 두시간의 유희쯤으로 여기는 나같은 소시민이 대중들을 탓 할 자격은 없다.

그러나 영화평론은 미우나 고우나 영화산업의 한축을 담당하고 있으며

그 축이 무너지면 영화산업 역시 그 몸집을 지탱하기 힘들다.

영화제작을 단순한 돈벌이로 생각하는 소수의 사람들을 제외한다면

대부분의 영화제작자들은 자신들의 창작품에 대한 애끊는 열정을 지니고 있다.

그런 그들의 창작물에 대한 애착으로 완성된 영화를 

곰곰히 뜯어봐주며 격려해주고 되짚어주는 것이 영화비평이란 매체이며

영화비평가란 자신들의 자식과 같은 창작물을 속깊게 알아 주는 몇 안 되는 사람들이다.

그런 사람들이 이제 조금씩 사라져 가고 있다.

자신을 알아 주는 사람들이 줄어 갈수록 영화 제작판의 성실한 일꾼들이 힘 빠지는것은 당연한 이치이다.

 

스크린, 프리미어, 로드쇼, 씨네버스, 키노...그리고 필름 2.0.

나같은 뜨내기 영화관객에게 작품속 행간을 말해주던

사려깊은 친구같은 잡지들이 시대의 뒤안길로 사라졌으며 사라져갈 위기에 처해있다.

시대의 요구에 부응하지 못하고 변화의 흐름에 몸을 맡기지 못한다면 도태되는것이 당연한 이치이지만

응당 서 있어야 할 위치를 말없이 지키고 있던 그 사람들이

수익성이라는 차가운 경제논리의 등쌀에 밀려 조금씩 떠밀려 가는것을 보는것이 그리 유쾌하지는 않다. 

필름 2.0이 올해 2월달에 재발행을 목표로 열심히 구슬땀을 흘리고 있단다.

그때 다시 반가운 그 빳빳한 표지를 다시 쥐어 볼 수 있게 되길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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