엑소더스 감상

심농 작성일 14.12.08 03: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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엑소더스 : 신들과 왕들 리뷰.

 


리들리 스콧의 영화를 보며 매번 감탄하며 느끼는 거지만, 영화의 배경이 되는 그 시대와 그 장소의 한복판에 서서 보는 듯한 생생한 현장감은 정말 최고라고 생각합니다. 만드는 작품마다 다양한 장르의 영화를 오가느라 흥행과 평단의 평가가 큰 편차를 보이기도 하는데, 개인적으로 워낙 애정을 갖고 좋아하는 감독 이다보니, ‘이번 작품은 휴양지에서 놀면서 찍었군.. 이번 작품에서는 힘이 빡 들어갔네.. 이건 감독 인생에 방점을 찍는 작품이다..’ 이러면서 늘 이 감독의 작품을 즐겨보고 있습니다. 영화가 별로 마음에 안 들어도, 관객들에게 혹평을 받아도, 애써 긍정적으로 보려 노력하는 편입니다. 영화가 개봉한지 얼마 안 되었고, 보실 분들이 많아 스토리나 스포일러는 생략하겠습니다.. 라고 말하지만, 사실 모세와 홍해의 기적 이야기는 종교여부를 떠나 워낙 유명한 이야기라 큰 의미가 없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모세의 기적에 관해 아는 바가 없으시거나, 일절 정보가 없는 채로 영화 관람을 계획 중이시라면 이 감상은 읽지 않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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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선 저는 종교가 없습니다. 성경을 제대로 읽어본 적도 없고요. 과거에 디즈니 만화 이집트 왕자를 봐서 대략 모세의 기적에 대해 알고 있는 정도입니다. 전체 이야기를 대충이나마 알고 있어서인지 극의 전개에 대한 궁금증이 생기지 않고, 다음 상황이 궁금하지 않다보니, 흘러가는 이야기를 그저 바라만 보게 되어서 자칫 지루해질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 시절 이집트를 통째로 만들어낸 듯한 모습과, 저주들과 기적의 스펙타클, 다 아는 이야기를 리들리 스콧은 어떻게 만들었는가, 연출에 대한 궁금증 때문에 저는 내내 몰입해서 보기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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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가지 눈여겨 본 것은 하나님의 여러 저주들이 실현되면서 고통 받고 생명을 잃는 이집트 사람들의 모습들 이었습니다. 실제 성경에 어느 정도나 이집트 사람들의 입장이 기록되어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람세스를 비롯해 당하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하나님이란 나쁜 신, 재앙, 악마와 다를 바 없이 그려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저주의 잔인함에 모세조차도 고통스러워하는 모습을 보여주는데, 그 모습은 신의 종이라기보다는 괴롭고, 혼란스러워 하는 평범한 인간의 모습이었습니다. 어쨌거나 400년 동안 노예로 살아온 히브리 민족의 누적된 고통에 비할 바는 아닙니다. 그리고 영화는 성경이라는 틀 안에서 그려져야 하고요. 하지만 이 와중에도 이집트 사람들이 당했을 고통에 대해서 외면하지 않고, 그들이 가졌을 증오에 대해서 미약하게나마 시선을 두었다는 점이 저는 인상적이었습니다. 양쪽 입장을 평등하게 다룬 것도 아닌데 그게 뭐 별거라고 인상적이기까지 하느냐.. 따질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기존의 유명한 기독교 대작 영화들이 하나같이 일방적인 시선만 가진 영화들이어서 저는 이 부분을 언급하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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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가지는 모든 재앙과 기적들이 신에 의해 벌어진 것은 자명하지만, 얼핏 자연현상처럼 보이기도 했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크리스찬이 아닌 관객들을 위한 배려인지, 리얼한 재앙을 보여주기 위한 의도였는지는 모르겠습니다. 10개의 재앙들이 신의 손짓으로 닥쳐온 것이 아니라, 악어떼가 나타나 강을 피로 물들이고, 핏빛 강에서 물고기들이 떼죽음을 당하니 개구리 들이 물 밖으로 나오고, 개구리들이 죽으니 파리가 들끓고, 파리가 창궐하니 전염병이 돌고, 전영병에 가축과 사람들이 병들고.. 이런 식으로 서로 인과관계로 연결되어 보여줍니다. 메뚜기떼와 쏟아지는 우박들도 연결 고리는 없지만, 이 두 가지 환경재앙은 오늘 날에도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현상이기도 합니다. 마치 리들리 스콧 감독은 ‘10대 재앙에서 신의 개입을 최대한 줄여보려 의도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진짜 신에 의해 벌어진 확실한 재앙은 마지막 장자의 죽음하나 정도뿐입니다. 심지어 홍해의 기적조차 감독은 어쩌면 모세와 신그리고 특별한 자연현상이 두 가지가 우연히 겹친 것일 수도 있다는 뉘앙스를 남깁니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이 신의 의도였다면 충분히 의도라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서로 다른 관객들의 입장에 따라 달리 해석할 수 있는 여지를 남겨둔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유명한 신을 영화로 다루되, 말씀에 따른 찬양 일색으로 만들지 않고, 내가 만든(창조한) 영화의 프레임 안에서 신을 보여주겠다.. 요런 의도가 전달되었습니다.

 

리들리 스콧 감독은 곧 여든을 바라보는 할아버지입니다. 앞으로 몇 편의 영화를 더 만들 수 있을지 알 수 없습니다. 저는 그저 이 할아버지가 은퇴하지 않고, 꾸준히 영화를 하나씩 만들어 내주는 것에 감사하는 마음으로 이번 엑소더스도 기쁜 마음으로 관람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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