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의 줄거리와 반전, 결말 등이 포함되어 있습니다.
영화를 보실 분은 읽으시면 안 됩니다.
나를 찾아줘 리뷰
두 시간 반 동안 단 한 번도 딴 짓 딴 생각 없이 스크린에 빠져들어 봤습니다. ‘아내가 사라졌다’라는 정보 말고는 아무것도 모른 채 관람했는데, 데이빗 핀처 감독은 점점 더 빈틈이 없어져 간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데이빗 핀처의 초기 영화들은 기술적인 테크닉과 CG, 특수효과에 많은 것들을 의존하며 특별한 오프닝, 특별한 씬과 장면들을 많이 만들었고, 영상에 대한 높은 수준의 기교도 잘 부렸었습니다. 때문에 그의 비주얼은 여러 광고나 방송에서도 많이 이용되곤 했었는데, 여러 작품들을 연출해 나가면서 이제는 기교나 비주얼에 의존하지 않고 오로지 스토리텔링 하나로 밀어붙이는 진정한 거장의 위치에 올라간 것 같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특수효과나 CG등은 여전히 많이 활용했을 것으로 생각합니다. 과거 ‘조디악’의 VFX에서 본적이 있는데 굳이 저 장면까지 CG로 만들어야 되나 싶은 것들까지 아주 세세하고, 일반적이고, 중요치 않은 화면과 배경을 구성하는데 CG를 적극적으로 활용했었습니다. 이 영화도 나중에 확인해 봐야겠지만 전혀 생각지도 않은 곳에 CG가 많이 들어갔을 것 같습니다. 이른바 특수효과를 볼거리와 화려함 때문이 아니라 좀 더 진짜 같고, 좀 더 평범해 보이기 위한 CG 활용인 것입니다.
결혼한 지 5년째가 되는 결혼기념일에 아내 에이미가 사라집니다. 집안 거실의 테이블이 박살나 있고, 부엌에서는 핏자국이 발견됩니다. 벌어진 정황은 마치 아내가 괴한에게 납치된 모양새입니다. 그리고 그 전에 관객은 남편 닉이 이른 아침 심각한 표정으로 집 앞에 서성이며 주변을 둘러보던 불길한 눈빛을 먼저 봅니다. 이후 이란성 쌍둥이 동생과 공동 운영하는 ‘바’에 가서도 닉은 동생에게 뭔가를 숨기는 듯 말을 둘러댑니다. 그리고 아내가 사라지고 경찰이 등장합니다. 영화를 보는 관객들이나 사건을 수사하는 경찰은 영화의 중반부까지 닉이 뭔가 감추는 구석이 있다고 느낍니다. 아무런 물증이 나오지는 않지만, 닉이 한 말들이나 보여준 행동들은 점점 심증을 굳히게 만들어 갑니다. ‘닉이 에이미를 살해했고, 그 증거와 시신을 완벽하게 숨겼다!’ 라고요. 거기에 에이미가 말해주는 회상들은 그들의 부부생활이 점점 절망적으로 바뀌어 가고 있으며, ‘남편 닉이 나 에이미를 죽일지도 모른다는 두려움이 생겼다’ 라는 결정적인말까지 나옵니다. 그 사이 경찰은 불타다 만 에이미의 일기장을 발견하고, 에이미가 남긴 일기를 통해 모든 내막을 알게 됩니다. 이제 관객들은 닉의 치명적인 허점이나, 미처 처리하지 못한 증거를 경찰이 발견할 일만 남았거나, 또는 에이미가 곳곳에 남긴 단서들을 통해 마치 자신이 살해당할 것을 예상하고, 그에 대한 진실이 밝혀지기를 바라며 남겨둔 결정적인 단서가 나타날 일만 남았다고 잠정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그리고 관객들은 다음 장면에서 뒤통수를 얻어 맞습니다. 우리가 알고 있던 닉과 에이미의 결혼 생활은 오로지 에이미의 일기장과 그녀의 내레이션을 통해서만 알게 된 내용들입니다. 때문에 그녀가 말해준 모든 닉과의 결혼 에피소드들은 실제 있었던 사실로 시작하지만, 내용과 결말은 철저하게 에이미의 입장으로 마무리 된 조작된 거짓입니다. 닉은 에이미와 불행했지만 그녀를 죽일 수 있을 만큼 나쁜 놈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에이미는 닉을 죽일 계획을 공들여 준비하고, 모르는 부분은 배워가면서 계획을 세우고 이를 실천합니다. 임신 조작, 과도한 쇼핑, 에이미 생명보험금 상향조정 등등 닉을 단계적으로 점점 나쁜 놈으로, 치밀한 놈으로, 살인범으로 몰고 가기 위해 미리 밝혀질 것과 나중에 드러나게 될 것들의 순서를 조율해가며 준비합니다. 살인도 직접 하지 않습니다. 에이미는 자신의 손에 피를 묻히지 않고 자신들이 거주하는 미주리(Missouri)주 법에 의해 남편 닉이 사형되도록 계획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닉에게 벌어지는 상황은 에이미의 계획대로 착착 진행됩니다.
에이미는 세상에서 가장 불쌍한 비운의 여성으로 전국에 전파를 타게 됩니다. 여성 앵커들은 이미 닉에게 살인자 낙인을 찍습니다. 인터뷰를 진행하는 여성 스탭들도 그에게 눈을 돌립니다. 경찰들도 증거만 없을 뿐, 겉으로 드러난 정황만 가지고 닉이 아내를 살해했다고 잠정적으로 결론을 내립니다. 닉에게 젊고 섹시한 20대 애인이 있었다고 밝혀지자 닉은 나쁜 살인범에서 비열하고 더러운 살인범이 됩니다. 사람들은 이제 닉의 쌍둥이 여동생과의 근친관계까지 의심합니다.
하지만 닉은 결국 이 모든 것이 에이미가 계획한 것임을 깨닫게 됩니다. 에이미가 남긴 단서들이 있던 곳은 닉이 어린 애인과 정사를 벌이던 곳이었고, 여동생 창고에는 에이미가 쇼핑한 닉의 물건들이 가득 쌓여있었습니다. 닉은 결국 변호사를 선임하고 이제 에이미에 대해 반격을 준비합니다. 그리고 에이미에게도 예기치 않은 사건이 생기며 영화는 다시 새로운 국면을 맞습니다.. 더욱 놀라운 얘기들이 남았지만 줄거리 얘기는 여기까지만 하겠습니다.
남자주인공 닉은 주변의 모든 여자들로부터 조종(?)을 당합니다. 정신적으로 유린을 당하기도 하고, 정신적인 위안을 얻기도 합니다. 이란성 쌍둥이인 여동생은 닉을 끝까지 믿어주고, 아내 에이미는 닉을 죽음으로 몰고 갑니다. 이웃의 세쌍둥이 아줌마는 다짜고짜 닉을 살인범으로 단정하고, 여성 앵커 한 명은 닉이 얼마나 나쁜 남편이었는지 뒤떠들고, 여성 앵커 또 한 명은 닉이 그럼에도 솔직하게 진실을 밝혔다면서 그의 진실에 믿음이 간다고 말합니다. 닉의 장모님은 닉을 예나 지금이나 별로 마음에 들어 하지 않고, 스무살 애인은 분위기 파악 못하고 닉을 찾아와 섹스를 하더니, 얼마못가 안 좋은 타이밍에 언론에 고해성사를 합니다. 사건을 수사하는 여형사는 닉에 대해 약간의 의심과 신뢰를 가지지만 결국 닉을 체포해버리기도 합니다. 하다못해 어떤 일면식도 없는 여자는 다짜고짜 닉과 사진을 찍고 그 사진을 방송국에 팔아버립니다. 닉을 변호하는 변호사가 남자이기는 하지만, 사실 그의 역할은 크지 않습니다. 무엇보다 닉에 대한 영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요. 닉은 여자들 속에서 무기력하기도 하고, 거짓말을 하기도 하고, 솔직하기도 하며, 여전히 성적 욕망의 대상으로 탐하기도, 두려워하기도, 분노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주변의 모든 여자들에게 둘러싸여있는 닉이란 한 남자의 상황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여자주인공 에이미는 어쩌면 여태껏 살아온 모든 인생이 거짓말인 인물입니다. 원인은 우선 그녀의 부모 특히 엄마에게 있습니다. 엄마는 유명한 소설가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딸과 이름이 같은 에이미를 소설 속 주인공으로 내세웠습니다. 소설 속의 에이미는 다방면에 재능을 보이는 소녀입니다. 또한 귀여운 강아지도 키우는 정 많은 사랑스러운 소녀입니다. 하지만 실제 에이미는 소설 속 에이미와는 거리가 멀었습니다. 진짜 에이미는 가짜 에이미가 가졌던 것이나 누렸던 것을 누려본 적이 없습니다. 현실의 에이미는 소설의 에이미를 미워했습니다. 엄마가 언론과 인터뷰를 할 때면 언제나 자신이 바로 그 소설 속 에이미인 것처럼 말하고 행동해야 했습니다. 그리고 오랜 시간 그것이 반복되어 온 결과 그녀는 자신의 본성을 감추고, 감정을 숨기는 것에 능숙해 졌습니다. 그녀는 원하는 것이 있으면 모르는 사람과 친해질 수도 있고, 가해자 임에도 피해자로 변할 수 있으며, 상황을 벗어나기 위해 태연하게 거짓말을 할 수도, 필요하면 사람을 죽일 수도 있는 인물입니다. 타인에게 자신을 비운의 여성으로도, 우아하고 품위 있는 여성으로도, 음탕한 창녀 같은 여성으로도 변신할 수 있는 치명적인 여자입니다. 한편, 이 에이미 캐릭터를 보면서 최근에 온라인 SNS에 꾸며진 삶을 살아가고, 그 거짓말을 치장하고 덧붙이는데 진짜 현실 속 삶을 소모하고 있는 사람들이 떠오르기도 했습니다. 영화를 많이 보지는 않았지만, 제가 지금껏 본 영화들 중 가장 끝내주는 팜므파탈이 아닌가 싶습니다. 얼마 전까지 최고의 팜므파탈은 데이빗 핀쳐의 ‘밀레니엄 : 여자를 증오한 남자들’ 의 리스베트였어요..;;
영화는 어쨌든 결코 평범한 선택을 하지 않습니다. 장르의 패턴도 따르지 않고, 무엇보다 결말도 놀랍습니다. 이런 일들이 있었는데, 계속 부부생활을 유지한단 말이야?? 하지만 납득하지 못하는 것도 아닙니다. 이제 둘은 더 이상 서로를 죽일 수 없는 상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아내에게 죽임을 당할 뻔하고, 막판까지 아내를 떠나고야 말겠다고 길길이 날뛰었던 닉이지만, 또 본인도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결국 닉은 다시 아내의 조종을 받는 삶을 선택합니다. 쌍둥이 여동생은 미칠 노릇이지만 닉은 그렇게 선택합니다. 닉은 다시 아내를 사랑할 수 있을지 어떨지는 모릅니다. 자신의 품에 안긴 아내의 정수리를 보면서 ‘대가리를 박살내 뇌를 꺼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봅니다. ‘도대체 아내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을까..’ 궁금해 하기도 합니다. 미국에서 가장 극적으로 재결합한 부부가 된 닉과 에이미는 진실은 묻어둔 채 삶을 이어가기로 합니다.
영화의 마지막에서 개인적으로 잊을 수 없는 재미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TV카메라 앞에서 에이미는 닉을 향해 환하게 웃는 이빨 속으로 ‘내게 빨리 키스해..’ 차갑게 속삭입니다. 닉은 아무도 볼 수 없게 아내의 뺨 옆의 허공에 대고 키스를 쪽! 하고요.
한 부부의 치정극을 두 시간이 반 동안 숨죽이며 볼 수 있게 기교 없이 스토리로 밀어붙이는 데이빗 핀쳐의 연출에 감탄했고, 여성들 속에서 갈팡질팡하는 남자주인공의 기분을 절절하게 느꼈으며, 새로운 팜므파탈을 발견했고, 결국은 스토리다! 라는 결론을 내리게 해준 영화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