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스텔라 감상 (스포)

심농 작성일 14.11.13 16:2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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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일러가 들어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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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스텔라 감상.

 

우선 재미있었습니다. 3시간 가까운 긴 시간동안 집중하면서 봤고요, 한 장면 한 장면 공들여 찍었다는 감독의 집념이 전달되었고, 그래서 눈 돌릴 틈도 없이 봤습니다.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의 영화들은 어느 정도 이상의 퀄리티를 뽑아주기 때문에 어지간해서는 실망하지 않는 것 같아요.. 몇 년 동안 물리학이론을 공부해가며 시나리오를 쓴다거나, 저명한 과학자와 협력한다거나, 영화 제작에서 얻게 된 지식을 논문으로 발표한다거나, 최대한 실사 촬영위해 제작비 상승을 감수해가며 물량과 시간을 투자하는 그런 모든 작업 방식이 그저 부럽고, 굉장하다는 말밖에 할 수 없었습니다.

 

표를 구하기가 힘들어 일반 상영관에서 볼 수밖에 없었고, 아이맥스로 한 번 더 본 다음에 감상을 써보자 생각했지만, 아이맥스 영화표는 여전히 좋은 자리 구하기가 힘들어서 그냥 두서없지만 써보기로 했습니다. 영화는 재미있었지만, 다시 곱씹어본 결과 약간은 제 기대와 달랐던 부분도 있는 것 같습니다. 과학적 지식이 전무 해 극중 대사를 완전히 이해하지는 못했고요, 하지만 4년 동안 공부하면서 썼다고 하니 그저 그런가보다 하며 믿고 볼 뿐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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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SF영화들을 보진 못했지만, 저는 광활한 우주여행, 무한하고 고독한 여정, 너무나 아름다우면서도, 전혀 알 수 없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이런 것들이 영상으로 가장 잘 표현된 작품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감독은 이 여정 하나하나에 같이 동참해주기를 바라는 것처럼 진짜 같이 생생한 우주의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더불어 우주인이 되는 것이란 어떤 상황에서도 무너지지 않을 엄청난 정신력을 갖추고 있어야 된다는 생각도 갖게 되었어요. 한 순간에 아들이 장성해 버리고, 손주가 나타나 할아버지가 되어 버리고, 이제는 모두가 자기를 잊는다고 하고, 인류의 마지막 희망이 거짓말이었다는 말을 듣고, 그런 말들을 우주 한복판에서, 차가운 우주선 안에서 듣고 있으면 제정신으로 버틸 수 있을까? 저도 3살 딸이 있는데, 어느 날 갑자기 아줌마가 돼서 나타나 저는 지금 아빠랑 동갑이에요.. 이런 말을 한다면 어떻게 감당할 수 있을까요. 우주에서 벌어지는 일은 모든 게 상상 밖의 것들뿐입니다. 착륙한 별에서 여차 한 번 잘못했다가 시간이 20년 넘게 허비된 결과를 영화에서 봤을 때, 그 기분이 참 뭐라 표현하기가 어려웠습니다. 영화를 보면서도 어이가 없다고 할까.. 우주여행이니, 스타트랙이니 이런 것들이 앞으로도 영원히 상상 속에만 존재할 것 같은 묘한 실망감? 그런 기분이 들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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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촬영도 좋았지만 또 하나, 음악이 아주 효과적이었는데 우주라는 무한한 공간에서 엄청나게 멀리 떨어진 별과 별 사이, 모래알 같이 작은 우주선을 타고 여행하는 여정, 돌아올 기약 없이 떠난 주인공들의 먹먹한 감정들을 잘 표현해 주었다고 느꼈습니다. 뭔가 엄청나게 웅장한 것도 아니고, 귀에 쏙 들어오는 멋진 음악도 아니지만, 음악만 듣고 있어도 우주를 떠다니고 있다는 기분? 어디서 들었는데, 별도 고유의 소리를 낸다고 들었는데, 그런 별들의 소리를 들으며 가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많은 분들이 영화를 관통하는 주제가 사랑, 소통 이라는 말들을 많이 하시는데 저도 동감하는 부분이었습니다. 중간에 브랜드가 했던 대사가 인상적이었는데 정확하게 기억이 안 나네요..; 요컨대 아무리 사람과 사람이 멀리 떨어져 있어도 사랑과 끌림?을 느낄 수 있으며, 우주라는 곳이 과학과, 논리, 계산으로 모든 것을 알 수 없듯, 오히려 증명해낼 수 없는 사랑이라는 개념이 더 옳을 수도 있다.. 뭐 이런 비슷했던 것 같은데 (틀리다면 지적해 주세요;;) .. 중요한 대사라고 생각합니다. 결국 주인공도 블랙홀 안에서 딸과 만나게 되죠.. 수많은 딸아이 방에서 떠나려는 자신을 붙잡으라고 소리치고, 미안해하고, 어떻게든 정보를 전해주려 필사적입니다. 그래서 성공한 것이 책들, 바닥의 먼지, 손목시계입니다.

 

인류를 구할 엄청난 비밀의 열쇠를 손목시계를 통해 전달하다니, 참 재미있는 설정입니다. 지금 아빠와 딸은 시간적으로도, 거리로도 엄청나게 멀리 떨어져 있는 데, 웜홀을 통과 했고, 이 별에서 저 별로 이동을 했고, 블랙홀까지 들어갔는데, 고작 딸아이 방에서 손목시계로 소통하니까요. 여기서도 사람들의 호불호가 갈리는 것 같아요, 외계인도, 엄청난 과학 문명도, 우주선도, 놀라운 통신 방법도 없이 손목시계로 전달하니까요. 지금까지 보여주었던 규모 있는 영상들에 비해 초라해 보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이 방식이 나쁘진 않다고 생각합니다. 아주 먼 우주여행의 끝은, 기억 속 깊은 곳 어딘가의 아주 작고 미시적인 무언가와 서로 맞닿아 있다는 것, 어쩐지 말이 되는 것 같은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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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제 기대와는 약간 달랐던 부분인데, 블랙홀 안에서의 이야기가 괜찮다고 방금 말했음에도 불구하고 제 기대와는 좀 달랐습니다. 저는 좀 다른 것을 기대했었나 봐요. 그게 무엇인지는 모르겠지만..; 인터스텔라를 보며 여타의 다른 SF영화들과 비교를 안 해볼 수가 없었는데, 완전히 같지는 않지만, 비슷한 맥락에서의 전개랄까.. 그런 점들이 닮은 영화들이 있었어요.

 

인터스텔라 경우, 종국에 가서는 아빠와 딸이 만납니다. 그 안이 블랙홀이든, 5차원이든 등등 차치하고 우선 부녀지간이 만나게 되죠. 조디 포스터가 열연했던 컨택트에서도 아빠와 딸이 만납니다. 물론 아빠는 외계인인데 지구인의 형상을 하고 나왔다는 설정이었을 겁니다.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의 솔라리스에서는 주인공이 죽은 아내와 만납니다. 헐리우드 리메이크판도 있는데 그건 못 봤습니다. 어쨌든 남편과 죽은 아내가 만납니다. 오토모 가츠히로의 메모리즈에피소드 중 1그녀의 추억에서는 주인공이 사고로 죽은 딸을 만납니다. 주인공의 트라우마를 끄집어 낸 겁니다. 이 외에도 뭔가 더 있을 수도 있지만 기억나는 것만 정리해보면 이렇습니다. .. 우주공간으로 나갔는데, 오히려 나타나는 것은 기억 속에서 꺼내진 누군가일까요.. 이런 공통된 패턴? 같은 것에 깔려있는 과학적인 근거 같은 것이 있는지는 저는 모르겠습니다. 다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이 이와 같은 방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닌가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어쩌면 감독도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한 건지.. 사람의 머릿속, , 생각, 이런 것들이 우주와 비교되는 기존의 이야기, 이론 같은 게 있는지 모르겠네요......

 

아무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주여행의 여정과, 웜홀, 블랙홀 등등 그동안 막연하게 생각하고 있던 것들을 실감나게 표현해준 것만으로도 멋진 작품이라고 생각하고요, SF영화의 명확한 방점을 찍은 작품이라는 점에 이의가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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