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랍스터

클슈마슈 작성일 16.06.10 16:22: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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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반드시 자신의 짝을 찾아야하는 사회가 도래했다.

싱글로 남는다는 것이 죄악시 되는 세상에서, 데이비드(콜린 파렐)는 아내에게 버림 받고 짝을 찾기 위해 도시를 벗어나 호텔에 도착한다.

 이곳에서 45일이라는 짧은 시간 내에 짝을 찾지 못한다면 데이비드는 동물이 되어서 평생을 살아야한다.

이미 개가 되어버린 자신의 형처럼. 자위행위 마저도 금지된 호텔에는 엄격한 규칙들이 존재한다.

일종의 애정촌의 역할을 하는 호텔은 그러나, 로맨틱한 분위기를 풍기기보다는 어쩐지 음울하고 오싹하기까지 하다.

데이비드는 짝을 만나는데 성공하지만, 이내 호텔을 탈출하고 아이러니하게도 외톨이들이 사는 사랑이 금지된 숲에서 자신의 진정한 사랑을 찾게 된다. 

 

영화 속 짝이 없는 이들이 모인 커플 메이킹 호텔에서 중간이라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처

음 이성애자냐 동성애자냐를 묻는 항목에서 데이비드는 바이섹슈얼이라고 대답하고 싶어하지만 선택지는 없다.

호텔에서 제공하는 구두 사이즈 역시, 중간은 없고 작은 사이즈와 큰 사이즈 둘 중 하나를 선택할 것을 강요한다.

마치 커플로 살 것이냐 싱글로 살 것이냐를 강요하는 사회처럼. 경직되고 딱딱한 사회 분위기 속에서, 개인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극히 드물다. 집단의 가치(짝을 찾는 것)와 짝을 찾는 시스템 속에 매몰된 개인들만 있을 뿐이다. 

 

커플 메이킹 호텔은 감정을 드러내야 짝을 찾을 수 있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그곳에서 만난 여자와의 관계에서 데이비드는 자신의 감정을 숨기려고 노력한다. 결국 데이비드는 호텔을 뛰쳐나와 외톨이들의 숲 속으로 편입되지만, 감독은 호텔을 벗어난 숲 속(철저히 독신주의로 사는 것)이 대안이라고 이야기 하고 있지도 않다. 죽을 때에도, 춤을 출 때에도 혼자여야만 하는 철저한 개인주의 사회는, 사랑하는 사람이 생긴 데이비드에게는 또 다른 억압이다. 
개인적으로는 영화를 보면서 떠올렸던 것은 최인훈의 소설 '광장'이었다. 자유주의도 싫고 공산주의도 싫다고 했던 것처럼, 플이 될 것이냐, 혹은 외톨이로 남을 것이냐를 강요하는 사회에서 데이비드는 방황할 뿐, 각성하지는 않는다. 그저 규칙에 순응하며 끌려다닐 뿐이다. 그러나 어디 그런 사람이 데이비드 뿐이랴. 경쟁과 세뇌가 일상화 된 호텔에서, 탈락한 자는 인간 이하의 동물이 되거나, 짝이 없다는 외로움을 견디지 못하고 죽음을 택하는 것이다. 영화 속 창가에서 몸을 날린 여자의 신음은 애처롭고 서럽다. 마치 몸보다는 마음으로 우는 것처럼. 조금 섬뜩하고 과장됐다고 할 지도 모르나, 호텔의 모습에서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본다. 

 

괴랄(?)한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영화 <더 랍스터>는 사랑이야기다. 

 

제한된 기간 내에 짝을 찾지 못해 다음날이면 동물로 변할 여자에게, 호텔 매니저는 내일 하루를 뭘 하며 보낼지를 생각해두라고 조언한다. 가령, '산책을 하는 것'은 권장되지만 '섹스를 하는 것'은 바보같은 짓이라고 이야기한다. 이유는 간단하다. 

'섹스는 동물이 되어서도 할 수 있으니까요' 

또한 개중 솔로부대(?)의 대장(레아 세이두)은 그들을 사냥하는 커플 메이킹 호텔에 반격을 날리는데, 특수부대를 연상시키는 비장한 모습과는 다르게 솔로부대의 복수는 그들을 죽이는게 아니라, 애정의 기반인 신뢰를 깨뜨린다는 점이 인상적이었다.  

 

호텔에서 데이비드와 친하게 지냈던 남자(벤 휘쇼)는 코피를 자주 흘리는 여자의 짝이 되기 위해 일부러 코피를 낸다.

반면 사랑이 금지 된 숲에서 데이비드와 여자를 비롯해 몇몇 사람들은 가혹한 형벌을 받으면서도 사랑을 멈추지 못한다. 

결국 요르고스 란티모스 감독이 생각하는 사랑이란 그런게 아닐까.

 사랑이라는 감정은 강제한다고 해서 생기는 것도 아니고, 억압한다고 해서 생기지 않는 것도 아니다. 토끼를 잡아주면서,

서로 눈빛을 나누면서 사랑에 빠지는 데이비드와 근시여자(레이첼 와이즈)처럼 그렇게 서로에게 서서히 물드는 것임을,

또한 사랑의 생명은, 육체가 아니라, 서로간의 믿음이 끝날 때 다하는 것임을, 

감독은 어찌보면 참으로 뻔한 이야기를 뻔하지 않은 방식으로 이야기하고 있다. 

 

영화 속 커플들은 강박증 같을 만큼 닮은 점에 집착한다.

데이비드가 그녀와 사랑에 빠진 이유 역시, 그녀가 데이비드처럼 근시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국 눈이 먼 여자와 포기하지 않고 함께 커플들의 도시로 온 데이비드는, 그녀와 같아 지기 위해 자신도 장님이 되기로 결심한다.

영화는 화장실에서 제 눈을 찌를까 말까 고민하는 데이비드와, 그를 기다리는 여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끝이 난다. 

찔렀을까? 찌르지 않았을까?

감독은 영화의 결말을 열어놓음으로써 또 하나의 사랑에 대한 질문을 던진다.

'서로 다른 처지에서도 사랑은 계속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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