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회와 팟캐스트 같은
일에 정신이 팔려서 최근에 집필에 크게 신경을 쓰지 못했다. 이점에 대해 양해를 구하며, 지난 번에 얘기하던 변화의 장애요소에 대한 논의를
이어가보자.
4. 정신적 허영-> 사람들은 거창한 얘기를 하기 좋아한다.
특히 남자는 더 그렇다. 원대한 비전이 주는 숭고한 느낌은 자기가 뭐라도 된듯한 기분좋은 착각을 주며, 남들도 다 거창한 얘기를 하는데 나만
기본적인 얘기를 하는 것이 뭔가 쪽팔리기 때문이다. 서로가 눈치를 보며 쪽팔리지 않을려고 거창한 얘기를 하고, 거창한 글을 읽고, 거창한 질문을
하다보면 당장이야 기분이 좋겠지만 자기가 있어야 할 위치를 잊게 만들어 솔직한 자기 파악을 방해한다. 이런 "집단적 자기기만" 현상은 강의실이나
회사 등에서도 흔하지만, "더욱더 쿨해지고 싶다"라는 발전욕구로 뭉쳐 있는 이들의 커뮤니티라면 더욱 심해진다. 결과적으로는 이상한 허영심만 키워
자기가 겪고 있는 문제의 본질을 정직하게 볼 수 없게 된다. 한 일년도 더 전이었던가. 어떤 이와
전화통화를 한 적이 있다. 그는 일반여성은 문제 없이 다룰 수 있는데 미모의 여성은 어려움을 겪는다는 식의 얘기를 했고, 난 "난 일반여성도
쉽게 다루지 못하는 수준이지만 나름의 어려움을 이해한다"며 얘기하다가 대화를 마쳤다. 그러다가 지방에 살던 그를 우연히 서울에서 볼 일이
생겼는데, 처음 그를 보곤 난 내 눈을 의심했다. "저사람이 그런 고난도의 문제를 말하던 사람인가?" 옷차림은 그렇다치고, 말과 행동거지에서
느껴지는 부잡스러움은 채 1분도 걸리지 않아서 "이사람은 미모의 여성을 논할 단계의 사람이 전혀 아니다"라는 강한 확신을 주었다. 나름 예의를
차리려고 했으나, 황당함이 커서였는지 형식적인 인사만 주고 받고 자리를 피했다. 그사람은 왜 그런 헛소리를 했을까? 자기는
미모의 여성만을 대한다고 생각하나 그사람이 말하는 '미모'의 개념이 내가 생각하는 '평범'에 가까웠을 수 있다. 혹은 애초에 모든 여성에게
거절당할 것을 알고 기왕이면 미모의 여성에게 접근하며 "미모의 여성에게 거절당한다"라고 합리화를 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허나 아마도 진실은
그가 고민을 빙자해 자신을
과시하고 싶었을 거라는 쪽에 가까웠을 거라고 본다. 남에게 인정받는 것에 신이 나고, 우쭐한 기분이 즐겁고, 멋있는 고민을 하는 자신의 모습이
근사해 보였을 테니까. 근데 그게 자신에게 무슨 득이 되겠나. 턱걸이 10회도 못하는 이들이 헬스까페에 가서 3분할의 중요성을 논하고,
크로스핏과 웨이트의 장단점을 논하고, 보충제의 성분를 분석한 외국 블로그를 언급하면 무슨 득이 있을까. 동네 약수터에서 아침마다 철봉/평행봉을
하며 단련된 아저씨의 말근육에서 우린 정직함을 배울 필요가 있다. 정직하고 솔직하게 자신의 팔뚝이 아저씨의 말근육에 한참 미치지 못함을 인정해야
한다. 법회에서 물어봤다. "낯선 여자 100명 이상에게 말을 걸어본 사람
손들어 보시겠어요?" 기억이 맞다면 2~3명 수준이었을 거다. "남성성이 무엇인지", "카키퍼니를 어떻게 할지"등의 글을 쓰고 그들이 이해할
거라고 생각했던 내가 아주 순진하게 느껴졌다. 그런 와중에 블로그에 있는 내용말고 새로운 얘기들을 해주길 바라는 이들도 있었다. 일차방정식도
제대로 풀지도 못하면서 수학정석을 취미삼아 즐겨보는 기괴한 취향의 중학생에게 느껴지는 수학선생의 기분이랄까. 적지 않은 수가 자기에게 정작
필요한 게 뭔지 모르는 상태로 거창한 얘기를 머리로만 이해하며 "지식이 충만해지는 지적 만족감"을 느끼는 고상한 취미생활을 즐기고 있다. 근데
이거 곤란하다. 거창해지는 기분, 지적인 허영심이 보내는 달콤한 유혹을 외면해야 한다. 쉽진 않겠지만 계속해서 기본으로 돌아가야
한다. 습관적으로 술자리에서 친구들에게 "해외의 이론을 보면 말야..."
라고 말하고 있다면, 그런 지적인 허영심이 자신을 막고 있는 건 아닌지 곰곰히 따져보자. 자신이 여자한테 인기가 없다면, 그럼
과연동성에겐 좋은 평을 받는지 자문해보자. 허세의 경쟁 대신 솔직함의
경쟁을 해보자. 스스로가 얼마나 부족한 지를 인정하고, 남에게 그런 얘기를 가감없이 할 수 있는 것도 큰 용기가 필요하다. 스스로 이런 용기를
갖추었다면, 난 당신의 1년 후를 기대해 봐도 좋다고 말하고 싶다. 5. 자기객관화의 어려움
-> 정신적 허영심은 자기 자신에 대한 객관적 주제 파악을 방해한다. 치질임을 밝히기가 두려워서 정형외과
의사를 만난 뒤 "교통사고 난 뒤에 척추가 안좋아졌는지 화장실에 오래 앉아 있기가 힘들다"라고 뻘소리를 하고 있다면, 이사람의 치질이 나을 일이
있을까. 자기 자신의 현재 위치를 객관적으로 보려고 노력해야 한다. 그래야 그에 걸맞는 발전 방향을 잡아갈 수 있다. 정신적 허영심에 대한 냉철한 객관화 만큼이나 어려운 게 자신의 이미지에 대한 객관화다. 어찌보면 사람은
자기객관화를 할 수 없는 게 정상일지도 모르겠다. 거울이 발명되기 전에는 자신의 모습을 잔잔한 물에 비춰서나 대충 파악할 수 있었을테고, 녹음
기술의 발명 전에는 자신의 목소리가 남에게 어떻게 들리는지 알 수 없었을테니 말이다. 이제는 누구나 녹음기능이 있는 핸드폰을 들고 다니지만,
여전히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서 들어보면 "헐... 이게 내 목소리야?" 라고 깜짝 놀라게 된다. 근데 그게 다른 사람이 평생 들어온 내 목소리
아닌가. 나한테는 익숙하고 정겨운 내 목소리, 내 표정, 내 말버릇, 내 걸음걸이, 내 옷차림새 등 나의 모든 것이 타인에겐 새롭고, 이질적인
거다. 이걸 외부의 시선에서 정확히 파악할 수만 있다면 사실 이성관계는 거의 7~80% 해결이 될 거라고 낙관해도
된다. 이런 문제는 어떻게 해결해야 하나? 사실 돈만 있다면 의외로 쉽다. 개인 스타일리스트를 고용하고,
이미지 컨설턴트를 고용해서 트레이닝을 받으면 된다. 유명 정치인들은 뛰어난 참모를 곁에 두고 그들에게 자신의 정치적 판단에 대해 상시로 조언을
구하며, 선거에 임박해서는 이미지 컨설턴트를 고용해서 입는 옷부터 자신의 제스처, 표정, 목소리 등 대중에게 보여질 이미지를 만드는데에 전문적인
도움을 얻는다. "난 그럴 돈이 없는데요?" 라고 한다면, 어쩌겠는가. 그럼 스스로 발품 팔아야지. 관심을 가지고 신경을 쓰면서, 동시에
친구나 주변 지인에게 조언을 구하고, 특히 나를 처음 본 사람들에게 어떤 느낌을 받았는지 물어보고 객관적 시각을 얻도록 노력해야 한다. 자신의
목소리를 녹음해보고 들어보면서 말투나 말버릇, 목소리톤 등을 분석해 봐야 한다. 세상에 공짜는 없다. 돈이 됐건, 시간과 노력이 됐건 뭐라도 투자를 해야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얻기
마련이다. 보통은 그게 귀찮고 별로 동기부여가 안되니까 다들 거기서 거기인 정체의 상태로 살아간다. 정체의 상태를 유지하는 것 자체도 꽤나 쉽지
않은데, 긍정적인 변화야 오죽하겠는가. whatever it takes. "무슨 수를 써서라도" 의 마음으로 접근해야 한다. 대충 좋아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다면 피씨방에서 롤만 하면서 "설마 인서울은 하겠지" 라고 큰 꿈 꾸고 있는 재수생과 똑같은 거다. 현실은 "아 쉬발 쿰"이
아니겠는가. 자 그럼 오늘은 여기까지. 다음에 더 얘기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