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 경찰청은 11월을 ‘112 범죄 신고 강조의 달’로 정하고 휴대전화의 단축번호 1번을 112로 설정하는 캠페인을 벌이고 있다. 범죄 발생 시 효과적으로 신고하고 대처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해서다.
그러나 경찰의 캠페인과 달리 현행 법 제도 아래서는 범죄 피해자가 긴급한 상황에서 휴대전화의 단축번호 1번을 눌러도 경찰의 도움을 받기가 쉽지 않다.
신고 전화를 수신하는 과정에서 신고자의 위치를 파악할 수 있는 소방방재청과 달리 경찰은 ‘위치 정보의 보호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에 따라 휴대전화 신고자의 위치를 곧바로 파악할 수 없도록 되어 있다.
현재 경찰에 전화로 들어오는 신고의 절반 이상이 휴대전화를 이용한 것. 그러나 이 같은 법제도 때문에 긴급한 상황에서 휴대전화로 걸려오는 신고에는 실질적으로 조치를 취할 수 없는 상황이다.
서울경찰청 생활안전과 관계자는 “긴급 상황에서 신고자의 상당수는 정확한 위치조차 설명하지 못한다”며 “긴급한 상황에서 신고자가 아무 설명 없이 1번 단축번호만 눌러도 경찰이 위치를 파악할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범죄 관련 사안임을 입증해야만 휴대전화 위치추적 영장을 발부받을 수 있는 것도 문제로 꼽힌다.
현재 경찰은 실종이나 자살 사건의 경우에도 범죄 관련성을 입증하지 못하면 휴대전화 위치 추적을 할 수 없게 돼 있다.
지난달 25일 경북 경주시에선 인터넷 자살사이트를 통해 만난 진모(29·여) 씨 등 20대 남녀 3명이 동반 자살했다. 정신병 치료 경력이 있는 진 씨는 이틀 전 집을 떠나며 ‘자살하려고 집을 나간다’는 메모까지 남겼다.
진 씨의 가족은 이런 사실을 경찰에 알렸다. 그러나 경찰은 즉각 위치추적을 할 수 없었다. 자살은 범죄 행위가 아니기 때문에 위치추적 영장을 청구할 수도 없었고 결국 진 씨는 주검으로 발견됐다.
이 사건을 담당했던 경찰관은 “자살 등의 위험 상황이 예상되는 실종과 가출 사건에도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할 수 없다”며 “실종자 가족들이 소방방재청에 신고해 위치추적을 할 수 있지만 가족들이 다시 경찰에 관련 정보를 전달하는 데는 시간이 걸리기 때문에 즉각적인 대처가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경찰은 휴대전화 신고자의 위치를 알 수 있도록 제도가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경우 경찰의 개인정보 오·남용 등을 우려하는 시민단체와 일반인들의 반발이 예상된다. 경찰 내부에서도 그동안 경찰의 인권침해 등으로 인해 국민 대다수가 경찰의 위치추적을 받아들일 수 없을 것이란 반성론도 제기되고 있다.
서울시내 경찰서의 한 관계자는 “경찰이 휴대전화 위치추적을 통해 지금보다 효과적으로 범죄에 대응하려면 위치추적의 필요성 못지않게 부작용이 없다는 점을 널리 알려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