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마이뉴스 김동환 기자]
지난 16일 국방부와 육군은 치약과 칫솔, 비누, 구두약, 면도날의 지급을 중단하는 대신 '보급품 구입비'로 월 1386원을 지급하겠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올 7월부터 병사들은 해당 물품을 스스로 구입해서 쓰게 됐다.
광우병 파동으로 인한 여론 악화로 지난 2006년 8월부터 군내 보급이 잠시 중단되었던 수입쇠고기도 올해부터 다시 보급 가능성이 커졌다. 국방부는 지난해 7월까지는 장병 1인당 하루 평균 국내산 쇠고기 15g과 수입산(호주 뉴질랜드 산) 20g 등 모두 35g의 쇠고기를 제공했었으나, 미국산 쇠고기 파동 이후로는 수입 쇠고기 대신 월 135g의 오리고기를 공급해왔다
한편 일반 사병들에게 저렴한 가격에 제공되던 연초(담배) 또한 2009년부터는 지급되지 않는다. 국방부의 정책 덕택에 이래저래 2009년은 현역 기간병들에게 '잔인한' 한 해가 될 듯하다.
국방부의 새 정책들에 대해 언론은 질타하고, 군인 아들을 둔 엄마들은 분개하고 있다. 그러나 정작 대한민국 어디에서고 국방부의 정책에 반대하는 일반 사병들의 목소리는 찾기가 어렵다. 일반 사병들은 과연 국방부 정책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지난 18일 오후, 서울 동서울 터미널에서 해당 정책에 대한 병사 28명의 생각을 들어보았다.
[재앙1. 미국산 쇠고기 군납 재개] 조류독감 땐 매일 닭고기만 주더니...
가장 첨예한 주제는 '미국산 쇠고기의 군납 재개'였다. 국방부가 당장 미국산 쇠고기를 급식하겠다고 밝힌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재 국내에 공급되는 미국산 쇠고기가 그 수요보다 많고, 유통기한도 최대 1년 반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에 결국 이 물량은 대량 소비가 가능하면서 소비자가 거부할 수 없는 군대로 갈 수밖에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견해다. 터미널 인근의 한 커피 전문점에서 만난 이경봉(가명) 일병은 미국산 쇠고기 얘기를 꺼내자 즉각 불편한 기색을 내비쳤다.
"아니 무슨 군인이 마루타도 아니고. 지금은 군인이지만 제대하면 다 시민들인데 검증되지도 않은 걸… 근데 어떻게 해요. 그렇게 주면 먹어야죠. 군댄데."
앞에 있던 고정식(가명) 상병이 "당연히 반대죠. 찜찜하지만 군대니까 어쩔 수 없이 먹는 것"이라고 말한다. 미국산 쇠고기가 찜찜한 특별한 이유라도 있냐고 물으니 갑자기 웃으며 조류독감 얘기를 꺼낸다.
"작년에 6월인가 7월에 뉴스에서 조류독감 터진 적 있죠. 이후에 일주일간 식당에서 닭만 나왔어요. 그런 걸 보고, 먹고 있으면 무슨 생각이 들겠어요. 군대 안 다녀 오셨어요?"
자리를 옮겨 터미널 안에서 사복을 입은 친구들과 함께 있는 유호철(가명) 일병을 만났다. 유 일병은 미국산 쇠고기 군납에 대해 모르고 있는 상태. "아. 진짜요? 그러면 안 되는데"하고 혼잣말을 하는 그에게 자세한 의견을 물으니 주위에 있던 친구들이 "얘 이런 거 말하면 안 된다"며 기자를 제지했다.
이날 미국산 쇠고기의 군납 재개에 대한 의견을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응해준 7명 중 "괜찮다, 상관없다"고 응답한 사람은 전역이 2주일 남았다는 김동희(가명) 병장뿐이었다.
[재앙2. 생필품 보급 중단] "100원 주고 새우깡 한 봉지 사오라는 얘기"
쇠고기 얘기가 사병들의 표정을 심각하게 했다면, 올 7월부터 군 보급 없이 현금으로 1인당 매달 1386원이 지급된다는 얘기는 사병들을 웃게 했다. 어이없는 웃음이었다. 이번 조치로 지급이 중단되는 보급품은 세숫비누, 세탁비누, 면도날, 치약, 칫솔, 구두약 등 6개 품목. 국방부 자체 조사로도 이들 6개 생필품을 사기 위해 적어도 월평균 4010원이 드는 것으로 알려졌다.
턱없이 부족한 현금 보상액에 병사들이 실소를 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이날 6가지 보급품 대신 매달 1인당 1386원을 지급하는 육군 정책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묻는 기자의 질문에 응해준 사람은 28명 중 12명. 12명 모두 "말도 안 된다. 지급액이 너무 적다"는 반응이었다.
유호철 일병의 보직은 보급병. 그는 "내 일은 줄어들겠지만 솔직히 저렇게 쓰라는 건 말도 안 된다"고 말했다. 유 일병의 추측대로 실제로 일이 줄어들고 비용이 절감되는 효과는 있다. 군은 이번 보급품 제도 개선으로 연간 15억 원의 예산 절감을 기대하고 있다. 그러나 추가 지출이 불가피해진 병사들은 황당할 수밖에 없다.
이기석(가명) 상병은 이번 육군의 조치에 대해 "그렇게 한다고 해서 예산 절감이 얼마나 될지는 모르겠지만 그 돈, 일반 병사들이 채우라는 거나 다름없는 거 아니냐"며 "100원 주고 새우깡 한 봉지 사오라는 거랑 뭐가 다르냐"고 말했다.
신호등 앞에서 만난 김경진(가명) 상병과 터미널 내 패스트 푸드점에서 만난 정성규(가명) 병장도 "생필품을 PX에서 산다면 한 달에 5000원 정도는 있어야 할 것 같다"며 "보급품 중에서도 치약, 칫솔, 구두약은 사용 비율이 높은데 왜 지급을 중단하는지 이해가 안 간다"며 반대 의견을 냈다.
특히 김환석(가명) 병장은 "우리 부대는 공동 목욕탕을 쓰는데 샤워를 하거나 옷을 갈아입을 도중에 잠깐 자리를 비우기만 하면 샴푸, 린스나 폼 클렌저 같은 고가의 세면 물품들을 도난당하는 경우가 있다"면서 "이런 품목을 보급해줄 생각을 안 하고 주던 것을 안 줄 생각을 하고 있으니 답답하다"며 현실과 동떨어진 육군의 행정을 꼬집었다.
[재앙3. 연초 지급 중단] "담뱃값 예전에 비해 2배 들어"
올해부터 지급이 중단된 연초(담배)도 병사들이 크게 아쉬워하는 부분이다. 김동희 병장의 담배 소비량은 한 달에 8~9갑. "연초 지급이 될 때는 한 달에 1만원이면 담배를 피웠는데, 지금은 그 두 배가 든다"는 것이 김 병장의 말이다.
김병철(가명) 병장도 "솔직히 정신적으로 스트레스가 많아 군대에서 담배를 피우게 됐다"며 "사회와 비교해 돈을 적게 받는 군대에서도 담배가 필요한 사람이 분명히 있다"고 말했다. 군대 내 흡연자가 많이 줄었다지만 이날 만난 병사들의 말에 따르면 아직도 "전체의 40% 정도는 흡연자"라고 말했다.
하소연할 수도 없는 그들, 역시 '전역만이 살 길'인가?
이날 답해준 병사들은 의견을 말하면서도 자신의 실명이 공개되는 것은 극도로 꺼렸다. 대부분 병사가 익명 처리를 요구했고, 기자가 철저한 익명처리와 신분 보장을 약속한 후에야 인터뷰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나중에는 기자가 먼저 익명 처리를 약속하며 인터뷰를 하기도 했다. 이런 분위기는 현역 병사들만이 아니었다. "방금 전역했다"는 세 명의 병사들도 "다 끝났는데 긁어부스럼 만들 일 있느냐"며 인터뷰 요청을 단호히 거절했다.
인터뷰를 마치며 새로운 병사 12명에게 "지난 2008년 병사 봉급 10% 인상이 잘한 일이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실제로 지난 2008년 1월 병사 봉급은 일제히 10% 인상되어 이병은 7만3500원, 일병은 7만9500원, 상병은 8만8000원, 병장은 9만7500원으로 초봉이 오른 상태. 같은 군대 정책에 대한 개인 의견을 얘기하는 것인데도 결과는 앞서의 인터뷰들과 크게 달랐다. 질문을 받은 12명 모두 일말의 망설임 없이 "잘한 것"이라고 응답했다.
왜 병사들은 병사 임금 인상에 대해서는 그렇게 쉽게 말하면서도 미국산 쇠고기 군납 재개에 대해서는 입을 잘 열지 못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전자에 대한 자신의 의견을 말하는 것이 군에 불리하며, 이 때문에 자신의 징계로도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었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싫어도 말할 수 없고, 주는대로 그저 살아야만 하는 우리 병사들. '전역만이 살 길이다'는 군대 내 우스갯소리가 더욱 절실하게 다가오는 2009년이다
=============================================================================================================
밥 안먹는 병사들 있다고 식대를 따로 줄 정부로군요.
전 정권에서 병사들 월급 올려준건 이렇게 하라고 한 의도가 아니었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