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의 개념.

NEOKIDS 작성일 09.04.28 23:45:29
댓글 5조회 629추천 7

 

 

석상준님의 이야기를 듣고, 저도 한 마디 해보았습니다.

 

나치와 일제에 대입해 보시라고요.

 

간단한 이야기였지만, 좀 더 설명이 필요한 부분이었던 것 같네요.

 

 

왜 그렇게 말했는가,

 

 

결과적으로 석상준님이 이야기하던 충에 대해서 제가 받아들였던 것은 

 

충성이라는 개념 그 자체에 대한 유리라는 개념처럼 들렸기 때문이죠.

 

 

 

어떤 결과를 가져오든, 결과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충성을 다한다는 그 자체에 대한 공격이 되어서는 안되는 것이라고,

 

석상준님은 이야기하셨던 것 같습니다.

 

즉, 가치판단을 배제하고 충 그 자체로서의 가치를 인정하자는 것이죠.

 

 

 

 

과연 충이란 것이 그렇게 가치판단에서 유리되어 그 자체로서 존중받을 수 있는 것인가를 생각해봤습니다.

 

과연 공격당하지 말아야 할 숭고한 충의 개념이란 존재하는 걸까요?

 

 

 

 

 

나찌에 대입해보라, 하는 덧글을 단 이유는 이겁니다.

 

비단 jjunius님의 히틀러 국민선출 예를 차치하고라도,

 

전 롬멜의 부분과, 괴링의 부분을 예로 들고 싶군요.

 

 

충이라는 점에 있어서는 출발점은 모두가 똑같았습니다.

 

하지만 롬멜은 나중에 히틀러의 암살에 가담합니다.

 

괴링은 권력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 하고

 

추한 모습을 보이며 심지어는 군사상황에 치명적인 해를 입히기도 하죠.

 

이들에 대한 역사적 평가들은 롬멜에 대해서는 훨씬 더 유보적입니다.

 

심지어 롬멜은 적군에게까지 존경심을 얻던 자였습니다.

 

 

 

이건 심지어는 삼국지에서도 마찬가지지 않습니까.

 

누구도 관우를 십상시들이나 한의 내시들 따위와 동급으로 놓고 보진 않잖습니까.

 

 

 

 

 

 

 

 

 

 

왜 이런 결과가 발생하는 걸까요.

 

석상준님의 논리대로, 유리해서 보아야 될 충 자체에

 

왜 이런 평가들이 따르게 되는 걸까요.

 

 

 

 

 

 

 

그것은 충이라 하더라도, 그 충에 기본적으로 내포되어 있는 기본들이

 

과연 충의 조건에 만족되는가 아닌가가 중요하다고 보고 있다는 거죠.

 

 

즉, 충이란 것 그 자체로 가치판단에서 유리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충을 하는 과정에서 보인 통찰력과 이성, 도덕성 등에 의해서 가치판단과 평가를 받는다는 거겠죠.

 

이것이 충인가, 아니면 그냥 상명하복인가, 그도 아니면 자신의 이익을 쫒아 주구노릇을 하는 것인가는

 

이런 부분들에서 판가름난다고 봅니다.

 

 

 

그럼 이런 상황들에서 미국쇠고기의 외교과정을 다시 한 번 보고, 따짐이님이 올렸던 상황을 비교해봅시다.

 

그들은 관우의 충성에 가까울까요, 십상시의 충성에 가까울까요.

 

 

우리가 비판을 하건 비난을 하건 중요한 포인트는 바로 이 지점에 있다는 거죠.

 

그들의 충에 대한 가치판단.

NEOKIDS의 최근 게시물

정치·경제·사회 인기 게시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