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사태, 파장은①] 현대차노조, 금속노조, 나아가 전체 노동계
"최악의 선례가 될 것이다."
6일 쌍용차 노사의 협상 타결 소식을 들은 노사관계 전문가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전체 노사관계 및 노정관계에 미칠 영향에 대한 평가였다.
77일의 옥쇄 파업의 결론은 마지막 농성자 640명 가운데 48%, 300여 명의 고용 보장이었다.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전체 조합원의 '총고용 보장'이라는 처음의 목소리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다. '희망퇴직'으로 공장을 떠난 1700여 명은 커녕 구제 기준 인원이 애초 정리해고자 976명이 되지도 못했다.
▲ 노동시간 단축과 일자리 나누기를 통한 전체 조합원의 '총고용 보장'이라는 처음의 목소리는 사라진 지 이미 오래였다. '희망퇴직'으로 공장을 떠난 1700여 명은커녕 끝까지 파업에 참여한 600여 명 전체의 고용보장도 얻지 못했다.ⓒ프레시안
사실상의 '패배'였다. 현재 상황에서의 최선의 선택이었지만, 길고 참혹했던 전쟁 같은 시간에 비교하면 얻은 것은 보잘 것 없다. 노조는 77일 동안 공장 안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파업을 벌였고, 지난달 20일부터는 사실상 감금 상태에 놓여 물과 음식물, 의약품마저 차단된 '생지옥'을 살았다. 그 결과가 처음 발표된 정리해고 인원 2646명 가운데 10%를 구해낸 것이었다.
반면 회사와 정부는 이겼다. 그나마 회사는 노조의 장기 파업과 그 과정에서 발생한 각종 생산시설의 파손 등으로 경영 정상화까지 많은 과제가 남았지만 정부는 모든 것을 얻었다.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뒷짐 진 채 당초의 목표를 모두 이뤘다. "어떤 일이 있어도 노조에 지지 않는다"는 원칙을 전체 노동계에 확실히 각인시켰다.
"15만 금속노조는 사라지고 600여 쌍용차 홀로 싸웠다"
▲ 쌍용차노조는 홀로 싸웠다. 완성차 4사 가운데 가장 작은 쌍용차노조의 '처절한' 싸움에 같은 업종의 완성차노조들은 사실상 모르쇠로 일관했다. ⓒ프레시안엄밀히 말하면 쌍용차지부의 '패배'가 아니라 정부의 '승리'였다. 600여 명 가운데 48%의 고용보장이라는 최종 합의는 사실 지금 쌍용차지부가 선택할 수 있는 최선이다. 77일은 그냥 77일이 아니었다. 노조는 그 시간 동안 대답 없는 회사와 목을 죄어오는 경찰, 단전과 단수로 인한 신체적 고통에 시달려야 했다. 5일 있었던 격렬한 경찰의 진압 작전 이후 이탈하지 않은 노조원도 극도의 불안감을 호소했다. 더 버틸 힘이 없었다.
게다가 쌍용차노조는 홀로 싸웠다. 완성차 4사 가운데 가장 작은 쌍용차노조의 '처절한' 싸움에 같은 업종의 완성차노조들은 사실상 모르쇠로 일관했다. 상급단체인 금속노조가 몇 차례 부분 파업을 벌이긴 했지만, 형식적인 '연대'였다. 기아차지부를 제외하고는 전면 파업도 아닌 부분 파업조차 완성차노조는 참여하지 않았다. "남의 문제"였기 때문이다.
금속노조의 핵심 동력인 현대차는 내부 갈등 및 상급단체와 갈등으로 정신이 없기도 했지만, 쌍용차 노동자를 지원할 의지도 없었다. 현대차지부 대의원들은 쌍용차지부의 파업에 연대하기 위한 '동조 파업안'을 부결시켰다. 심지어 파업도 아닌 '잔업·특근 거부안'조차 49.5%의 찬성만 얻어 부결됐다.
"현대차, 기아차의 '연대'는 참혹한 수준이었다"
GM대우차지부는 쌍용차지부의 파업이 한창이던 지난달 22일 자동차 업계에서 최초로 '임금 동결'에 합의하고 올해 임단협을 마무리지어버렸다. 쌍용차 노사의 협상이 결렬되고 공권력이 진압 작전의 시기를 저울질하며 쌍용차 사태가 최고의 고비를 맞았던 8월 첫 주, 완성차 3사는 모두 휴가를 즐겼다.
15만 금속노조 가운데 쌍용차지부 600여 명의 조합원만이 물과 전기, 가스가 모두 끊긴 도장2공장에 갇혀 있었다. 이상호 금속노조 정책연구원 연구위원은 "쌍용차 파업에 대한 현대, 기아, GM대우의 연대는 사실 참혹한 수준이었다"고 평가했다. '산별노조'라는 단어가 무색했다.
▲ 쌍용차 파업에 대한 현대, 기아, GM대우의 연대는 사실 참혹한 수준이었다. '산별노조'라는 단어가 무색했다.ⓒ프레시안
민주노총은 말할 것도 없었다. 쌍용차지부의 파업 초입부에 있던 지난 6월 14일 일찌감치 "정권 퇴진 투쟁"을 선언한 민주노총은 이후 두달 가까운 시간 동안 같은 말만 반복했다. 국면 전환을 위한 실력은 물론이고, 물이 끊긴 평택공장 안에 식수를 실은 트럭을 넣을 힘조차 민주노총에겐 없었다.
시간이 길어지면서 여론도 노조에 불리하게 흘러갔다. 지난 6월 18일 설문조사에서 '공권력 투입에 반대'하는 목소리는 79.0%(한길리서치연구소)였지만, 지난 3일에는 54.4%(모노리서치)로 줄어들었다.
"처음부터 쌍용차는 노정갈등이었다"…'작은 놈' 활용한 정부의 큰 그림은?
이번 사태의 결론이 단순한 '쌍용차지부의 패배'가 아닌 더 근본적인 이유는 따로 있다. 애초부터 이 문제는 개별 기업의 노사갈등의 성격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상호 연구위원은 "처음부터 노사갈등이 아니라 노정갈등이었다"고 말했다. 법정관리에 들어간 쌍용차에서 노사관계로 풀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었다. 당연히 노사협상에서 노조만큼이나 사측도 운신의 폭이 좁았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 1월 상하이차가 법정관리를 신청하면서부터 예고됐던 이 격렬한 노사갈등에서 초지일관 '무대응과 방관'의 원칙을 고수했다. "반드시 쌍용차에서 정리해고를 이뤄내야 한다"는 작은 목표가 아니었다. 정부는 더 큰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이상호 연구위원은 "정부는 제일 덩치 작은 놈을 가지고 본보기로 사용하고 싶었던 것"이라며 "작은 놈을 확실히 제압해 덩치 큰 놈에게 '위협효과'로 사용하려 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정부의 목표가 '쌍용차노조 죽이기'가 아니었다는 얘기다. 그렇다면 그 '큰 놈'은 누구일까? 전문가들은 "현대차와 기아차노조, 더 나아가 금속노조 전체"라고 말했다.
"멀지 않은 곳곳의 곡소리…노조 발목 잡을 쌍용차 위협효과"
사실 자동차업계가 하반기 구조조정을 앞두고 있다는 것은 업계의 오래된 중론이다. 법정관리 중인 쌍용차처럼 대규모는 아닐지라도 다양한 방식과 직군에서 인원 조정이 이뤄질 것이라는 얘기다. 이명박 대통령도 틈날 때마다 "구조조정"을 강조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옥쇄 파업만 77일, 지난 4월 정리해고 규모가 처음 발표된 이후 무려 4개월 가까이 싸운 쌍용차지부의 결론은 각 제조업 노조에 확실한 교훈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다행히 회사 파산에까지 이르진 않았지만, 공공연한 파산 협박이 막판 노조에게 큰 심적 부담이 됐던 것도 다른 기업의 노조가 '정리해고 반대 투쟁'에 선뜻 나설 수 없는 큰 걸림돌이다.
▲ 다행히 회사 파산에까지 이르진 않았지만, 공공연한 파산 협박이 막판 노조에게 큰 심적 부담이 됐던 것도 다른 기업의 노조가 '정리해고 반대 투쟁'에 선뜻 나설 수 없는 큰 걸림돌이다.ⓒ프레시안
이상호 연구위원은 "쌍용차 효과가 당장 다른 노조들을 상당히 위축시킬 것"이라고 내다봤다. "저렇게 처절하게 싸워도 정리해고를 모두 막을 수는 없구나"라는 인식이 빠르게 전체 노동계에 퍼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이 연구위원은 "각 노조들이 아주 '소프트한 구조조정', 즉 전환배치나 비정규직 해고, 사무직 인원조정, 희망퇴직 등을 큰 저항 없이 수용할 가능성이 높다"고 덧붙였다.
정부가 공권력을 투입해 강제해산시키지도 않고, 그렇다고 공적자금을 투입해 쌍용차 사태 중재에 나서지도 않은 것은 그런 효과를 노린 장기적 플랜이었다는 얘기다. 오민규 전국비정규직노도연대회의 정책위원도 "정부의 쌍용차에 대한 정책의 목표는 자동차업계의 구조조정에 있다"며 "전국에서 곡소리가 날 날이 멀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런 측면에서 청와대와 더불어 이번 사태 추이를 가장 주목했을 또 다른 주체는 현대차다. 이상호 연구위원은 "단지 현대차가 몇 대 더 팔리느냐 마느냐 때문이 아니라 노사관계에 미칠 영향을 본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노사관계의 가늠자로 꼽히는 현대차 노사관계를 협조적으로 묶어놓기 위한 청와대와 현대차의 일종의 담합이었던 것이다.
"장기적 플랜의 정부에 대응하는 노동계 시각은 좁았다"
정부는 이처럼 강 건너 먼 산을 바라보고 있는데 이에 대응하는 노동계의 시각은 좁았고 전략은 허술했다. 노동계는 개별 기업에서의 '정리해고 반대'라는 하나의 프레임에만 갇혀 있었다.
물론 이번 사태를 통해 우리 사회는 다시 한 번 '해고에 대한 격렬한 노동자의 저항'을 경험했다. '정리해고가 생각보다 막대한 사회적 비용이 들어간다'는 교훈을 얻었다. 더불어 해고에 대한 개별 노동자의 강한 거부감은 취약한 사회안전망 때문이라는 새삼스러울 것도 없는 지적도 쏟아졌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이미 8년 전인 2001년 대우차 정리해고를 둘러싼 갈등 때 깨달았던 것들이었다. 그리고 8년 후 똑같은 사태가, 더 잔인하게 반복됐다. 이런 악순환의 1차적 책임은 물론 스스로 제 역할을 포기해버린 정부에게 있지만, 새로운 프레임을 만들어내지 못한 노동계의 책임 역시 크다.
한 국책연구기관 연구위원은 "진작 노조가 해고 이후의 대책을 놓고 회사나 정부와 협상을 했어야 했다"고 말했다. 일부 해고를 인정하더라도 해고자에 대한 재취업 알선이나 창업 지원 등 실질적인 생계의 길을 위한 재원 및 통로를 정부와 회사로부터 따내는 것이 현실적인 노조의 최대치였다는 것이다.
"정리해고 숫자 협상에 갇혀버린 한계에 대한 성찰은 이제 시작이다"
이상호 연구위원도 "단지 해고만 막는 것이 아니라 최악의 경우 해고를 한다면 어떤 절차와 기준에 따라 하고 어떤 보상을 해야 한다는 노동계 내부의 가이드라인을 진작 만들었어야 했다"고 말했다. '총고용 보장'이라는 프레임에 갇혀 '단 한 명의 해고도 안 된다'고 버티는 것이 최선이 아니라는 얘기다.
이 연구위원은 "노동계가 스스로 해고에 대한 일정한 룰과 경로를 마련하면서 동시에 회사와 정부 수준의 대책 마련을 요구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그런 면에서 '정리해고'라는 정부의 프레임에 말려 해고자 비율이라는 숫자에 갇힌 협상을 해야 했던 쌍용차지부의 상황은 전체 노동계의 한계였다.
쌍용차 사태의 강력한 '위협효과'의 약효는 이제 시작이다. 동시에 우리 사회가, 노동계가 이로부터 어떤 교훈을 얻을 것인지에 대한 고민도 함께 시작됐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77일 동안의 힘겨운 파업을 통해 던진 '값비싼' 교훈에 대한 성찰은 남은 이들의 몫이다.
▲쌍용차 노동자들이 77일 동안의 힘겨운 파업을 통해 던진 '값비싼' 교훈에 대한 성찰은 남은 이들의 몫이다. ⓒ프레시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