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 되지 못한 감독, 끝나지 않는 조직 폭력"

황소뿔 작성일 09.09.25 17:45: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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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년 전 폭력추방 굳게 다짐했던 배구협회

2005년 4월 lg화재 프로배구단의 신영철 감독이 경기 후 선수들에게 '원산폭격'을 시키고 두 선수의 목에 발길질을 했다. 문제가 되자 신 감독은 "양심에 손을 얹고 결코 구타는 없었다"고 했다. 계속 문제가 되자 그는 기자회견까지 열어 소속 선수들에게 "15초 동안 얼차려만 받고 구타는 없었다고 말하라"고 거짓말을 강요하는 등 사실 은폐까지 시도했다. 결국 사실로 판명되자 그때서야 그는 사과했고 구단은 그에게 6개월 징계를 내렸다. 그래놓고 구단이 뒤에서 뭘 했는지 아시는가. 제보자를 색출하기 위해 선수들 휴대폰 검색에 나섰단다.

신 감독 폭행문제가 사회문제화 되던 바로 그 와중에 이번엔 대한항공의 문용관 감독이 담대하게 선수들을 팼다. 소속 프로선수 네 명을 구타했단다. 결국 배구협회는 감독의 폭행사건 1, 2탄이 연달아 터지자 사과 및 재발방지를 다짐하는 기자회견을 다음 달 한꺼번에 치렀다. 그때 기자회견장에서 두 감독은 영 뭔가 못 마땅한 모습이었다. 그 중 한 감독은 자리에서 일어서 사죄의 인사를 하는데 구단 관계자의 재촉에 못 이겨 하는 듯 했다. 억울하고 분한 듯한 얼굴 표정이 역력했다.

체육계, '헛짓' 하다

▲ 이번엔 국가대표 박철우 폭행사건이 터졌다. 예상했던 대로 배구계의 폭력은 없어지지 않았다. ⓒ연합뉴스이번엔 국가대표 박철우 폭행사건이 터졌다. 예상했던 대로 배구계의 폭력은 없어지지 않았다. 아니, 체육계의 폭력은 변함이 없다. 태릉선수촌에서 성인이자 프로선수들인 국가대표까지 '그 정도'로 팰 정도면 이제까지 체육계가 떠들어온 '폭력추방'은 '헛짓'이었다는 거다. 이번 사건 후에도 일각에서는 피해 선수가 '맞을 짓 했다'는 말이 나오고 대표팀 '기강이 무너졌다'며 가해 코치를 두둔하는 소리가 들린다. 바로 몇 년 전 체육계 사상 초유의 '사과 기자회견'을 하며 공개적으로 폭력추방을 다짐했던 배구협회가 이 정도다.

운동선수들 간의 구타는 일반인들은 상상하기 힘들다. 우리가 흔히 tv에서 보듯 '찰싹찰싹' 때리는 따귀를 생각하면 곤란하다. '삼손'이라 불리던 이상렬 코치가 온 힘을 다해 사람 얼굴을 '스파이크'했다. 그 흔적은 피해선수 박철우의 몸에 고스란히 남아있다. 박철우 스스로 한 인터뷰에서 고백했듯 그는 이제까지도 많이 맞으며 운동을 해왔다. 그런데 그 거구의 젊은 선수가 뇌진탕 판정을 받고 얼굴이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팬 것이다. ×도 이렇게 안 팬다

그럼 왜 팼을까. 사건을 목격한 동료선수들과의 인터뷰를 담은 23일자 기사는 이번 사건이 이제까지의 충격 이상으로 심각함을 일깨운다. 박철우에 따르면 이 코치는 "네 눈빛이 맘에 들지 않는다"며 팼단다. 건방지다고 팼다는 거다. 그 장소에 있었던 다른 선수들에 따르면 도저히 납득이 안 가는 폭행이었지만 동료가 폭행 당하는 걸 보면서도 말렸다간 박철우가 더 맞을 것 같아 그저 맞는 걸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고 한다. 한 선수는 "내가 더 눈물이 났다."고 당시 심정을 토로했다. 동료들에 따르면 박철우는 평소 건방진 태도를 보이거나 훈련에 불성실하지 않았을 뿐 아니라 기흉으로 세 차례나 수술을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훈련 때는 더 열심히 뛰었다고 한다.

나는 여기서 이번 사건으로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난 김호철에 주목한다. 박철우는 "만약 감독님께서 무슨 조치를 취하셨다면 기자회견까지 열지는 않았을 것"이라고 했다. 그렇다. 폭행을 당하고 만신창이가 된 박철우가 그 몰골을 하고 김 감독을 찾아 갔는데도 그는 아무런 조치를 취하지 않았다. 이는 감독으로서의 직무유기일 뿐 아니라 폭행에 대한 방조, 묵인이다. 재미있는 사실은 이상렬 코치가 폭행 뒤 보고 했더니 김 감독이 "그래, 걔는 좀 문제가 있어" 했다는 것이다.

김호철 감독 나와라

▲ 나는 여기서 이번 사건으로 대표팀 감독에서 물러난 김호철에 주목한다. ⓒ뉴시스박철우는 현 대표팀의 주공격수일 뿐 아니라 김호철 감독 소속팀인 현대캐피탈간판 선수다. 게다가 지난 시즌 mvp다, mvp! 그런 선수를 대표팀 코치가 만신창이가 될 정도로 팬다? 이것이 과연 대표팀 감독이면서도 피해자의 소속팀 감독인 김호철의 동의 없이 가능할까? 그건 꿈에서도 불가능한 일이다.

이상렬도 그렇지만 김호철이야말로 문제다. 폭행이 발생한 날 저녁은 마침 회식이 예정돼 있었고 박철우는 그 꼴이 되고서도 참석했다고 한다. 그런데 김호철은 박철우의 얼굴을 보고서도 별다른 말도 없이 코치와 함께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식사를 해 이를 본 선수들이 오히려 황당해 했다고 한다.

박철우가 결국 새벽에 선수촌을 이탈했는데도 대수로워 하지도 않았고 다음날 lig와의 연습경기 때는 표정마저 좋았다고 한다. 선수들을 모아 놓고는 박철우를 지목하며 "몇 대 맞았다고 도망치는 선수는 필요 없다. 너희들도 조심해라"며 오히려 선수들을 위협했다고 한다. 한 선수는 "정말 화가 났다. 만약 감독님이나 코치님 아들이 운동하다가 그 정도로 맞았다면 어땠을까" 궁금해 하기도 했다. 우리나라 배구 국가대표팀 감독은 선수들에게 공갈하고 협박한다.

김호철 감독에게 묻고 싶다. "인간인가?" 하나 더. "인간 맞나?"

사실 김호철 본인도 폭행 전력이 있었다. 같은 인터뷰에서 선수들은 박철우와 함께 한국배구의 주축 공격수인 문성민도 맞았는데 다름 아닌 김호철 감독에게 맞았다고 한다. 파리에서 프랑스에게 패한 후 라커룸에서 얼굴을 몇 대나 때렸고 그때부터 문성민은 슬럼프에 들어갔다고 증언한다. 현재 터키에서 뛰고 있는 문성민은 이번 대표팀 소집에 부상을 이유로 참가하지 않았다지만 어쨌든 대표팀 생활을 부담스러워 했다고 한다.

조직의 폭력

이상렬 코치와 함께 김호철 감독도 배구는 좀 할 줄 알겠지만 '인간'이 되질 못했다. 운동하는 사람들 세계에서 감독에게 소속팀 선수는 자식이다. 어떤 경우는 진짜 자식보다 더 끈끈한 정으로 맺어져 있다. 그런데 그런 자식이 폭행을 당했는데도 못 본 척 하다니. 이거 딱 조폭 보스 같지 않나? 중간 보스가 알아서 하고 자기는 모른 척 묵인하는.

폭행을 당한 후 박철우는 김호철 감독 앞에서 분명 울며 하소연 했을 테지만 냉담함만 돌아왔고 자신을 뭐 패듯 팬 이상렬 코치는 사과도 하지 않았다. 한 인간으로서의 존재를, 가치를 완전히 무시당한 것이다. 협회도 마찬가지. 사건을 무마하고 박철우를 입막음 시키기에 바빴지 아무런 대책도 세워주지 않았다. 4년전 기자회견까지 열어 폭력추방을 다짐하던 바로 그 협회가 말이다. 이게 바로 우리나라 체육이 돌아가는 꼴이다. 저잣거리 건달도 이 정도는 아닐 것이다.

협회는 이상렬 코치는 무기한 자격정지시켰다. 아주 귀여운 짓을 잽싸게 했다. 그러다 잠잠해지면 회복시키겠다는 속셈 아닌가. 김호철 감독은 사의를 받아들여 물러나게 했다. 웃기지 말라고 해라. 김호철 감독이야말로 중징계 대상이다. 나는 영구제명시켜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한다. 이상렬 코치와 김호철 감독 모두 배구계에 설 자격이 안 되는 사람들이다.

'처벌 부재'의 체육계, '가해자 보호'하는 배구협회

체육계에서 폭력이 근절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많은 사람들이 많은 이유를 제시하는데 내가 경험을 빌어 하나만 딱 집어 말하라면 바로 '처벌 부재'라 해야 할 것이다. 그런데 이 '처벌 부재'는 다른 말로 '가해자 보호'다. 잘못한 사람이 있으면 거기에 합당하게 징계하면 되는데 도대체 징계를 하지 않는다. 횡령하고도 무사하고, 폭행하고도 무사하고, *하고도 무사하고, 승부조작 하고도 무사하고, 판정 거꾸로 해도 무사하다. 재수 없게 기자들에게 들켜 기사화 되면? 몇 달 월급 덜 받거나 좀 쉬면 된다. 그리고 다시 복귀해 제보자 색출에 나서서 보복한다.

우리나라 체육은 협회 행정이 징계만 제대로 해도 지금 이보다는 훨씬 제대로 돌아간다. 다른 사회분야는 이른바 '솜방망이 징계'가 이따금 문제가 되는데 체육계는 모든 방망이가 솜이다. 그래서 그 방망이 맞기를 전혀 두려워하지 않는다. 징계를 받으면 한다는 소리가 "좀 쉬지, 뭐" 이런 식이다. 이 모양이기에 배구협회 임원이 "나도 맞으면서 운동했다"는 저 무식한 소리를 당당하게 할 수 있는 것이다. 도대체 스포츠랑 맞는 거랑 무슨 상관이 있나. 가해자들이 활개치고 피해자들이 고개 숙이고 벌벌 떠는 지금까지의 전통이 이어지는 한 폭력스포츠의 대는 절대로 끊기지 않는다.

그래서 우리는 앞으로 두 가지에 주목해야 한다. 우선 배구협회가 과연 김호철 감독과 이상렬 코치를 그들이 지은 죄에 합당하게 처벌 할 것인가. 다른 하나는 이번 사건의 피해자인 박철우에 대한 보복이 어떤 형태로 진행될 것인가. 이에 따라 배구협회가 폭력비호집단인지 아닌지를 판별할 수 있을 것이다. 한 번은 속았다. 두 번은 안 속는다.

/정희준 동아대 스포츠과학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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