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6월 11일
당시도 여전히 제국주의 외교책을 펴고 있던 미국은 문화 말살적인 태도로 일관하여 스스로 세운 남베트남 고 딘 디엠 정권의 국교를 카톨릭으로 세우고 고 딘 디엠이 국민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불교도와 승려들을 탄압하는 것을 방관했다
미국의 위세를 업고 폭정을 휘두른 고 딘 디엠은 결국 사찰을 파괴하고 의식을 금지시킬 뿐만 아니라 거리로 나선 승려들을 폭력적으로 진압하여 수십여명이 사망, 수백명의 부상자에 이르기까지 계속해서 불교를 탄압
틱쾅둑 스님이 소신공양을 결정하게 된 것도 이때.
사이공 도심에서 온몸을 불살라 이윽고 빈 육체가 쓰러질 때까지 아무런 미동도 신음도 없이 가부좌 자세를 지키고 스스로를 공양한 이 모습은 말콤 브라운이란 기자에 의해 우연히 촬영되어 미국을 비롯한 서구 사회에 공개되었고 큰 혼란을 받은 서구인들이 자성하게 하였을 뿐만 아니라 고 딘 디엠 정권에 대한 미국의 입김과 지원이 중단되고 틱쾅둑 스님의 소신공양을 중의 바베큐라며 비웃은 고 딘 디엠 내외가 쿠데타로 실각하여 처형되게 만들었다.
이후에도 베트남 전쟁에 대한 반전 시위의 큰 기초가 된 것도 틱쾅둑 스님의 공양.
현재 생불이라 불리는 틱낫한 스님이 마틴 루터 킹 목사에게 보낸 소신공양에 대한 서한의 내용은 이렇다.
'1963년 베트남 스님들의 소신공양은 서구의 기독교사회가 가진 도덕적관념과는 아무래도 좀 다릅니다.
언론들은 그때 자살이라고 했지만 그 본질을 살펴보면 그것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은 극단적 저항행위도 아닙니다.
소신공양 전에 남긴 유서에서 스님들이 말하고자 하는 것은 오로지 제자들의 마음에 경종을 울리고
그들의 마음을 감동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고 있으며,
베트남 사람들이 겪고 있는 고통에 대하여 세계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것을 목적으로 하였을 뿐 입니다.'
실제로 불교 경전 중 묘법연화경에 소신공양에 관한 언급이 실려있긴 하지만 이것은 동양 문화의 특성으로 후대에 빚어진 내용일 뿐 석가모니의 가르침에는 이러한 성질의 것이 전혀 없다. 색즉시공 공즉시색으로 우선 물질과 형체, 욕심과 애착 등 모든 형태를 갖춘 것과 그 마음 전부가 비어있다 말하고는 다시 자비를 말하는 부처에 있어 소신공양이야말로 진실하게 원하는 것이 되지 않는다. 부처도 원하지 않는다면 누구를 위한 것인가. 스스로를 위한 것이 될까? 소신공양이란 결국 살아있는 대중들에게 바치는 것이다. 자기 목숨과 그 의미를 그대로 대중들에게 공양하는 것이다. 이것을 단순히 일개 일인의 저항을 위한 자살로 치부하는 것은 상식이 없음이고 그 이전에 눈도 귀도 마음도 닫겨 이 무겁고 진지한 물음의 의미를 껍데기조차 스치지 못한 것이고 의미로서 넘겨받은 목숨을 죽음으로 밀어넣어버리는 행위다. 그런데 대다수의 언론들은 언급하기조차 꺼리고 절대신을 믿는다는 종교인들이 자기 멋대로 소신공양을 평가하고 문수스님을 지옥으로 떠민다. 인간이란 이런거지. 언제가 되고 뭐가 일어나도 아무 것도 배우질 못해. 이런데서 악취나는 독을 품고 교묘한 말장난으로 의미도 마음도 짓밟는 놈들이랑 겨뤄보겠다고 똑같은 가면 쓰고 놀아났던 나도 지독하게 한심한 머저리새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