촛불시위 vs 투표
촛불시위에 나가면 전경과 싸우게 됩니다. 물론 궁극적인 목적은 배후에 도사리고 있는 악의 대마왕(?) 이겠지만,
악의 대마왕은 끝도 없이 전경들을 출동시키기 때문에 우리는 전경과 싸워야 합니다.
전경들과의 대치는 온라인 RPG의 공성전을 연상케 할 만큼 스릴있으며
이때 뇌에서 분비되는 아드레날린이 심장을 쿵쾅거리게 합니다.
물리쳐도 물리쳐도 끝없이 밀려오는 전경들의 방패에 얻어맞으며
민주주의를 지키는 정의의 투사가 되어 악의 무리에 의해 순교한다는 약간은 매조키스트적인 희열도 얻을 수 있습니다
용자인증을 받은 듯한 느낌이 들어 폼도 나고 기분도 으쓱합니다.
언젠가는 저 전경들을 모조리 물리치고 악의 대마왕을 제거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으며 살아갑니다
투표소에 가면 앞서 언급했던 스릴도, 아드레날린도, 매조키스트적인 희열도, 용자인증도 없습니다.
줄서서 기다리다가 투표용지를 받고
좀 추레한 천을 걷고 들어가 도장을 꽝 찍고 투표함에 넣고 나면 모든게 끝나있습니다.
민주주의를 향한 무한한 나의 열정을 하얗게 불태우고 내가 용사임을 증명하고 싶지만,
악의 대마왕의 부하같은 건 눈 씻고 찾아봐도 안보입니다
이렇게 간단하고 폼도 안나는 일로 이렇게 복잡하고 거대한 세상이 변할 것 같지는 않다는 생각도 듭니다.
하지만 악의 대마왕을 물리칠 수 있는 것은 투표 뿐입니다. 전경과 백일동안 싸워도 대마왕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투표는 절대 반지와도 같습니다. 누구에게 힘을 줄지를 결정합니다. 투표하는 용사가 줄면 대마왕이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반지는 시시 때때로 쓸 수 있는게 아니라 오직 안드로메다별과 기타 잡다한 여러 별들이 지구와 일정한 각도를 이
루는 특정한 날에만 사용할 수 있는 소중한 힘입니다. 기회를 놓치지 않고 절대반지의 힘을 행사해야만 대마왕을 물리칠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에게 주어진 절대반지를 사용하고 싶어서 좀이 쑤시고 근질근질하지는 않습니까?
전경과 싸우는 것을 식당에서 서비스가 맘에 안들어 종업원이랑 싸우는 데에 비교한다면,
투표는 "주인 나오라고 해!" 라는 주인소환주문과도 같은 겁니다.
그러니 전경과 싸우느라 상처입고 지친 그대 용자여,
다음부터는 투표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