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뽄야입니다.
어젯밤에는 울적한 마음에 이런저런 하소연을 하고 밤잠을 설치다 눈만 조금 붙이고 출근하고
낮에 일하는데 마음은 콩밭에 가있는지라 평소엔 하지도 않던 실수까지 저질렀네요.
각설하고,
오늘도 g20 정상회의를 준비하는, 즉 외국의 높은 분들을 위해 우리 한국인들이 불철주야 노력하는 모습들을
보면서 5 일전, 일요일 오후에 있었던 일이 문득 떠올라 적어봅니다.
저희 동네에 사시는 학부모님들께서는 자녀 교육에 매우 열성적이신지라
학생들을 위한 영어 학원이 매우 많습니다.(심지어 24개월 아기들을 위한 영어학원도 있습니다, ㅇ보리라고...)
그래서 그런지 주변에 외국인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지요.
그 날은 일요일 오후였는데
일하다가 잠깐 쉬러 집에 들어가려는 찰라였습니다.
배가 고파 빵집에 들렀다가 횡단보도 앞에서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어요.
건너편에 외국인이 있었습니다.
20대 중후반에 금발에 턱수염을 멋지게 기른, 늘씬한 청년이었습니다.
청년은 좌우를 살피다 그냥 무단횡단을 하면서 성큼성큼 걸어오더군요.
(미리 말하는데 무단 횡단을 뭐라 하는게 아닙니다. 사실 워낙 작은 도로라 저도 자주 그러니깐요.)
그런데 이 청년이 도중에 방향을 꺽더니 맞은 편에 있던 어느 한국분(30대 초)에게 다가갔습니다.
그러더니 갑자기 얼굴에다 침을 퉤! 하고 뱉더군요.
저도 놀랐지만 당한 그 한국분은 더 놀란 표정이었습니다.
근데 그 외국인 청년은 거기서 그치지 않고 한 번 더 퉤! 하고 뱉으면서 영어로 뭐라고 하더군요.
한국분이 조금 흥분된 표정으로 남자의 옷깃을 잡으며 짧은 영어로 뭐라 하려고 했지만
외국 청년은 거칠게 뿌리치더니 다시 한 번 얼굴에다 침을 뱉었습니다.
그러면서 뒤돌아 그대로 가려고 하더군요.
영문도 모른 채 침 세례만 받고 화가 난 한국 분이 '헤이' 하고 팔을 붙잡자
청년은 다시 한 번 침을 뱉으며 싸울 기세였습니다.
막 주먹이 오가려는 찰나 보다 못한 제가 외국인을 뒤에서 잡았습니다.
그 때서야 외국 청년의 영어가 들리더군요.
청년 : (영어로) 내가 침뱉으니까 기분좋냐?
나 : (영어로) 침? 무슨 말이냐?
다행히 본인이 영어가 어느 정도 되는 관계로 제가 청년에게 왜 그러한 일을 했는지 물어보았습니다.
청년은 무척 흥분했는지 크게 숨을 몰아쉬며 가슴을 들썩거리고 있었습니다.
청년 : 이 사람이 나한테 침을 뱉았어!
나 : 뭐? 진짜로?
그런데 생각해보니 내가 쭉 옆에서 있었는데도 본 거라고는 이 청년이 갑자기 이 한국분한테 다가와
침을 뱉은 걸 본 것 밖에 기억에 없었습니다.
그래서 한국 분(이하 아저씨)한테 물어보았지요.
아저씨 : 이 사람이 지금 뭐라고 하는 거에요?
나 : 아저씨가 이 사람한테 침 뱉았다는 데요?
아저씨 : 네???
황당하다는 표정을 짓는 아저씨였지만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 번 청년에게 물어봤습니다.
나 : 진짜로 이 사람이 침을 뱉었냐?
청년 : 이봐 잘들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내가 길을 건너고 있는데 이 사람이 내 앞에다 침을 뱉었어, 알겠어?
여기서 약간 감이 오더군요.
나 : 잠시만. 이 사람이 너한테 침을 뱉은 게 아니라 땅에다 뱉은 거지?
청년 : (씨근대며) 아니, 내가 길을 건너고 있는데 이 사람이 침을 뱉었어. 나한테 침을 뱉었다고.
즉 이 청년이 길을 건너고 있는데 약 5미터 정도 떨어져 있던 이 한국 분이 바닥에다 침을 뱉었고 청년은 그것을
매우 무례한 행동이라고 생각하는 듯 했습니다.
나 : 이봐, 이 사람은 그저 바닥에다 침을 뱉은 거라고.
청년 : 아니, 잘들어. 나한테 침을 뱉았다고!
나 : 하지만 그는 네 얼굴에다 침을 뱉은게 아니야! 저 사람은 잘못이 없어! 한국에선 누구나 바닥에 침을 뱉는다고!
아무 의미도 없었어! (물론 아닙니다만 정확히 표현하기에는 제 영어가 짧아서...) 네게 침을 뱉은 게 아니야!
이때 듣고 있던 아저씨가 끼어들었습니다.
아저씨 : 뭐라고 그러는데요?
나 : 아저씨가 길에다 침뱉은게 자기한테 그런 줄 아는데요.
아저씨 : 아니, 난 방금 담배 펴서 그런 거 뿐인데.
나 : 이봐, 이 사람은 그저 담배를 핀 것 뿐이야. (담배를 펴서 목이 아팠다는 뜻)
청년 : (아저씨한테) 당신 담배 펴?
아저씨 : (더듬거리며) 응, 나 담배 저기서 폈어. 목이 아팠다고.
나는 인제 오해가 풀리는 줄 알았습니다.
나 : 들었지? 이 사람은 잘못이 없어. 그저 (목이 아파서) 침을 뱉은 거 뿐이야.
청년 : 아니, 한국에선 아무 의미가 없을지도 모르지만 세계적으로 이건 매.우. 무례한 일이야. 저 사람이 잘못 했어.
물론 청년 말이 맞을지도 모르지만 이 아저씨는 그저 외국인에 대한 매너를 몰랐을 뿐인데...
솔직히 길에다 침을 뱉는게 이 정도로 무례한 일인 줄은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 일이 그렇게 잘못한 일인가요? 점점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나 : 이봐, 잘들어. 네 말이 맞을지도 몰라. 하지만 여긴 한국이야. 넌 한국에 왔으니까 한국 법을 따라야해. 여긴 미국이
아니라고. 넌 반드시 이 사람한테 사과해야해.
청년 : 아니, 난 잘못한 점이 없어. 난 사과 못해.
우리 세 사람이 옥신각신하는 중 정신을 차려보니 어느 새 아저씨 두어 명과 아이들 십 여 명이 무슨 일인가 하고 쳐다보고
있더군요.
영어가 짧은 저로서는 계속해서 여긴 미국이 아니니 네 잘못이고 사과해야 한다고 하고
외국 청년은 절대 못한다고 하니 끝이 안 보였습니다.
결국 아저씨께서 이 외국인과 따로 이야기를 하겠다고 골목 안 쪽(뒷골목 아닙니다;;) 으로 들어가더군요.
둘이서 이야기한다고 하니 저도 그냥 거기서 끝내고 빠져버렸습니다.
궁금해 하는 주위 분들한테 대충 이야기 해드리고 집으로 돌아왔죠.
제 머리는 계속 혼란스러웠습니다.
아무리 길가에 침을 뱉는 게 나쁜 일이고 오해의 소지가 있었다지만
그렇게 화를 내며 얼굴에다 침을 여러 번 뱉을 만한 잘못이었을까....?
나중에 다른 사람들한테 이야기 했더니
그 외국인 너무한 거 아니냐, * 거 아니냐는 말들이 나오더군요.
하지만 그게 100% 정답은 아닌 거 같았습니다. 그 외국인이 대체 왜 그랬는지.
그런데 저희 어머니가 지나가는 말로 하신 말씀이 딱 와닿더군요..
"한국 사람을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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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g20을 준비하기 위해 시의 공무원 분들도 바닥의 껌을 떼고 초등학생들은 환율에 대해 토론하고
음식물 쓰레기 배출까지 제한할 정도로 열성적으로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께서도 그것을 권장하고 있고요.
이는 단지 외국 사람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g20 개최국으로서 부끄럽지 않은 모습을 보여
우리 한국이 얼마나 대단한(?) 나라인지 보여주겠다는 자부심에서 비롯된 거라 생각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외국의 블룸버그 신문에서 우리의 이러한 행동을 다소 냉소적으로 보았듯이
어쩌면 우리의 이러한 행동들이 외국인들 눈에는 주인한테 꼬리치는 강아지처럼 보일 수도 있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들더군요.
그나 저나 그 외국인 잘못한 거 맞죠?
그리고........
...아저씨, 영어 못하시는 것 같던데 대체 둘이서 무슨 이야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