니체가 말하는 공부

욤시키 작성일 12.03.12 08:59: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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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인들이 부족한 것

1. 

[전략] 

한때 사람들은 독일을 생각하는 사람들의 나라라고 불렀다. 하지만 과연 오늘날에도 생각하는 독일인이 남아있는가? 지금의 독일은 지식을 지루해한다. 정치에 대한 열정이 진정한 생각을 위한 열정을 모두 삼켜버렸다. 모든 사람들이 "도이치란드여, 도이치란드여, 가장 중요한 나의 조국이여" 를 외치기 시작한 순간, 독일에서 "배움" 은 끝나버렸다고 봐야한다. 내가 다른 나라로 여행할때 사람들이 물어본다. "지금 독일에서 정말 뛰어난 철학자는 누구냐?", "지금 독일에서 정말 뛰어난 작가는 누구냐?", "요즘 독일에서 나온 책 중 정말 좋은 책은 어떤 책이냐?" 내 얼굴을 새빨개진다. 그리고 아주 급한 상황에서만 생길 수 있는 불안한 용기를 모아서 소리친다 "비스마르크!" - 그들에게 요즘독일인들이 어떤 책을 읽는지 고백할만한 용기까지는 없다... 진부함이란 얼마나혼돈된 본성인가... 

[후략] 






지금 독일의 정신은 점점 무뎌지고, 거칠어지고, 얄팍해져가고 있다. 이 정도면 충분한 비판인가? 아~ 하지만나를 역겹게 하는것은 이것과 근본적으로또 다른 것이다. 독일인의 심각함, 심오함의 불이 꺼지고 있다. 독일인들이 가지고 있던 정신적인 것에 대한 열정이 점차 식어가고 있다. 독일인들의 변화는단순한 지적인 변화가 아니라 영혼 그 자체의 변화라는 점이다. 가끔씩 나는 독일의 대학 문화를 접촉한다. 이 학자들 사이에 맴도는 공기는 얼마나 숨막힌가? 그들은 정신은 얼마나 메말랐는가? 그들과 같은 공기를 마시는 것은 마치 미적지근한 자기만족의 물속에서 수영하는 것과 같다. 만약에누군가가 나에게독일 과학과 기술의 발전을 반론으로 제기한다면, 그 사람은 내가 지금까지 한 말의단 한마디도 이해하지 못한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현대기술 과학세계가 얼마나현대 정신세계에 부정적 영향을 끼치는지를 비평해왔다. 다른 모든학자와 학생들도 기술 과학의 첩노릇을 해야하기 때문에, 우리의 교육제도도, 우리의 교육자들도 좀더 깊고, 풍부하고, 꽉 찬 내용을 전달하는 수단으로서 활동할 수 없어진 것이다.  [중략] 우리의 대학들은 이제 영혼의 퇴화를 강요하는 기관이 되어 버린 것이다. [후략] 






이제 독일의 고등교육에서 "근본"이라는 개념은 사라져버렸다. 교육의 목적, 그리고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한 수단, 모든것이 사라져버렸다. 교육에서는 "조국" 이 아닌 "문화" 그 자체가 목표이다 - 이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 우리는 대학 교수들이나 문법선생들이 아닌, 진정한 교육자들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겐 진정한 교육을 받은 교육자들이 필요하다. 말하는것과 말하지 않는 것을 통해 순간순간 자기 자신을 증명하는 고귀하고 뛰어난 정신의 소유자들이 필요하다. 그들 자신의 문화도달콤하게 완숙된진정한 인간들 말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지 않는 것은 독일의 학교들이 "고등 유모격" 으로 데려다 놓은, 학교만 잘 나온 멧돼지들이다. 진정한교육을 위해서 첫번째로 필요한 것은 교육자들이다. 우리에겐 일단 교육자들이 부족하다. 그래서 독일 문화는 점점 죽어가고 있는것이다. 그렇지않은 사람 중가장빛나는 한 명이 바젤 대학의 교수이자 나의 절친한 친구인제이콥 부르크하르트이다.  

독일에서소위 "교육" 이란 이름아래교육기관들이 만들어내는 것은 가장 적은 시간에 가장 많은 "쓸모있는" 인간 쪼가리로 가차없이 부숴버리는 일이다.- 이용하고 고갈시켜 내다 버려질 준비가 된 수많은 젊은이들이 그 결과다. 일단 "고등 교육" 이란 단어와 "수많은" 이란 단어는 서로 공존할 수 없다. 모든 고등교육은 예외들만의 소유여야 한다. 고등 교육이란 엄청난 특혜를 받을수 있을 만한 사람이어야 한다. 위대하고 아름다운 것들은 대중의 소유일 수 없다. Pulchrum est paucorum hominem. (아름다움은 몇명의 사람들만을 위한 것이다.) 지금 독일 문화의 추락의 또 다른 이유는 무엇일까? "고등 교육" 이 더이상 "고등"하지 않다는것, 문화의 "민주화" 라는 이름 아래 문화를 평범하게 만들어버렸다는 것이다. 그리고 군대 문제때문에너무 많은 학생들이 대학에 가려고 줄을 선다는 것, 이 자체가독일 문화의 죽음을 말한다. 이제 어느 독일인도 더이상 자기의아이에게 진정한, 정신적으로 고귀한 교육을 시켜줄 수 없다. 우리의 "고등 교육"- 또 이것을 서비스하는 교육자, 교육과정, 제도적 목표는 이제 다 똑같은 형식으로 조율되어 버렸다- 가장 괴이한 평범함이 그 목표이자 성격이되어버렸다. 이제 눈뜨고 보지 못할 조급함이 우리들의 교육기관을 지배한다, 마치 23세의 학생이 "완성" 되어있지 않으면 무엇인가가 잘못되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누구의 부름을 받기 위해서 완성된 것인가?’ 라는질문에는 아무도 대답하지못한다. 하지만좀 더양질의 인간은 누가 불러주기를 바라지 않는다. 그는 자기가누구의 부름을 받았는지 벌써 잘 알고 있다. 그는여유를 부리며 천천히 전진하고, "완성되야한다" 라는 생각은 돌아보지도 않는다. 고등 문화에서 31 세의 나이는 아직도 초보자, 아직도 어린아이일 뿐이다. 

인원 초과로 골머리를 앓고있는 우리의학교들, 너무 많은 일로 골머리를 썩히느라멍청해져 버린 우리의 선생님들은말조차 꺼내기 부끄러운 "스캔들" 이다. 하이델베르크 대학의 교수들은 이런 교육제도를 방어하려고 했다. 이런 교육제도를 방어하려는 개인적동기는 있을 수 있지만, 진정 그럴만한 이유는 없다. 






나는 원래 긍정적인 사람으로, 내가 부정적인 의견을 표시할 때 이 것은 긍정의 간접적 표현이거나 누군가가 압박을 주었기 때문이다. 이런 내 본성에 충실하기 위해 나는 교육이 필요한 이유 세가지를 말해보겠다. 첫번째는 “보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이고 두번째는 “생각하는 법”을 배우기 위해서이며 세번째는 “표현하는 법” 을 배우기 위해서이다. 그리고 이 세가지가 모이면 고등 문화라는 한가지 목표가 달성된다. 

보는 법을 배운다는 것은 눈을 쉬는 법을 배우는 것으로, 생각이 자기 자신을 완성시키는 때를 기다리는 법을 배우는 것이다. 그러기 위해선 선택을 뒤로 미룰줄 알아야 하고, 그 후에는 하나하나의 사건을 모든 각도에서 다 파헤쳐보고 이해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이다. 이것이 모든 정신의 교육에 있어 가장 첫번째단계이다 - 자극에 반응하며 펄쩍 뛰지 않고 연구와 자제의 본능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어야 한다. 내가 말하는 “보는 법” 을 배운다는 것은 비철학적인 단어로 “강한 의지력” 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하지만 “보는 법” 의 근본은 의지를 비우는 것, 의지를 지연시키는 능력이다.모든 정신적 부족함, 모든 천박함은 자극에 저항할 수 있는 능력의 부족이다 ? 이런 훈련이 없는 사람들은 모든 본능적 반응을 다 따라가고, 자기도 모르게 어쩔수 없이 반응한다. 이런 본능은 벌써 정신이 죽어감을 알리며, 사람의 정신적 퇴화와 궁핍함의 결과인 경우가 대부분이다. 철학으로 훈련되지 않은 무딘 생각이 “사악함” 이라고 부르는 그 모든 것은 현상에 반응하는 것을 참지 못한 결과이다. 보는 법을 익힌 것의 실용적 응용은? 보는 법을 깨우친 사람은 학생으로써 느리고, 의심스럽고 저항하는 모습을 보인다. 그는 적대적 평화속에서 새롭고 특이한 것이 자기에게로 오는 것을 기다리며 뒷짐지고 있을 줄 안다. 모든 문을 열고 서 있는것, 모든 조그마한 ‘사실’ 앞에서 노예처럼 고개를 숙이는 것, 모든 사람과 모든 생각과 같이 섞여보고 그 속으로 뛰어들어 보려 근질근질해 하는것, 한마디로 우리가 그렇게 좋아하는 소위 “현대적 객관성” 은 천박함, 그 자체이다. 






“생각하는 법”을 배운다는 것: 우리의 학교들은 이제 이 말조차도 알아듣지 못한다. 심지어 대학교에서도, 심지어 철학을 전공으로 하는 학생들 사이에서도, 논리의 이론과 실기, 즉 인생을 바칠만한 가치있는 공부로서의 “논리” 는 사라지고 있다. 요즘 나오는 독일 책을 읽어보라. 더이상 생각에는 장인정신과 테크닉, 그리고 단계적인 교육이 필요하다는 믿음의 흔적조차 찾을 수 없다. 생각이라는 것은 춤을 추는것 처럼 배워야 한다는 것, 생각도 일종의 춤이라는 것을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것같다. 독일인 중에 지적인 의미에서의 “가벼운 발” 을 가지는 것이 얼마나 대단한 스릴감을 몸 하나하나의 근육에 전달해주는지를 스스로 경험해 본 사람이 단 한명이라도 남아있을까? “공부” 라면 얼마나 어색하고 딱딱한 자세를 연상하게 되는가? 얼마나 지식을 잡기 위해서 공중에 뭉툭한 손가락을 휘젓고 있는가? 이제 독일 사람들은 어찌나 이렇게 변했는지 외국 사람들은 이 딱딱함이 독일의 민족성이라 착각할 정도이다. [중략] 

춤을 춘다는 것은 어떤 고귀한 교육에서도 빠지면 안되는 중요한 요소이다. 발을 사용해 춤추는 만큼이나 개념과 생각과 단어를 가지고 춤출 수 있다는 것. 이말을 다 하고난 다음에도 “펜을 가지고 춤추는 것” 또한 배워야 한다는 말을 할 필요가 있을까? 표현하는 것 역시 배워야 한다는 것?

 하지만 지금까지 한 말만 해도 나는 독일인들에게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존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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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래 제가 써놓은 교육에 관한 내용이 제대로 전달 되지 않는거 같습니다만

여기 국내에 소개된 제목으로는 '우상의 황혼'입니다

이 글이 제가 하고 싶은 말을 정확히 전달하는군요 (특히 6, 7번 문단)

책이 지어진 시점을 참고하더라도 아직 진행되는 현실임을 고려한다면 굉장한 통찰력을 보여줌을 알수있습니다

진짜 교육자는 학생들을 더욱 혼란에 빠뜨리는고 정답 보다는 의문을 더 갖게 하는 사람이 참된 교육자 일겁니다

유익하게 읽어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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