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상교육이 포퓰리즘이 글을 보니 짜증이 나서 한마디 한다.
포퓰리즘이 무어냐. 제대로 알자.
포퓰리즘은 이데올로기혹은 정치철학으로서, "대중"과 "엘리트"를 동등하게 놓고 정치 및 사회 체제의 변화를 주장하는 수사법, 또는 그런 변화로 정의된다. 캠브리지 사전은 포퓰리즘을 "보통사람들의 요구와 바람을 대변하려는 정치 사상, 활동"이라고 정의한다.[6] 포퓰리즘은 라틴어 '포풀루스(populus)'에서 유래된 말로, 이는 '대중', '민중'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포퓰리즘은 '대중주의', '민중주의' 정도로 직역할 수 있는 말이다. 이는 '대중의 뜻을 따르는 정치행태'라는 점에서 결코 부정적인 의미로만 보기 어려우며 민주주의도 실은 포퓰리즘과 맥을 같이한다. 영국의 롱맨 사전은 '포퓰리스트'(Populist)를 부자나 지식인보다는 보통 사람들을 대변하는 자'로 가치중립적 의미로 정의하고 있다.[7] 민주주의가 대중의 순수한 의지를 반영한다는 걸 감안할 때, 포퓰리즘은 좌우 이념을 가리지 않고 모두 나타날 수 있다. (위키백과)
포퓰리즘은 너네가 아는 그런 뜻이 원래 아니다.
이게 어디서 부터 꼬였는가?
포퓰리즘이 본격적으로 특정 정치나 정책의 성격을 규정하는 데 사용된 것은 1997년 대선에서 당선된 김대중 당선자가 출연한 KBS 방송 프로그램에 대해 조선일보 류근일 논설위원이 쓴 칼럼에서다. 당시 류근일은 포퓰리즘을 일종의 대중 인기에 영합하려는 정치인의 이미지 전략이라는 의미로 규정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도 대한민국에서 포퓰리즘은 "정책의 현실성이나 가치판단, 옳고 그름 등 본래 목적을 외면하고 대중적 인기에만 영합해 목적을 달성하려는 정치 행태", "인기영합주의", "대중추수주의" 등과 같은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예를 들면, 부산교대 김정래 교수는 포퓰리즘을 "일반 대중의 인기에 영합하는 정치행태"로, "정책의 현실성이나 가치 판단, 옳고 그름 등의 목적을 외면하고 인기에 영합해 정책의 일관성과 실효를 망각하는 정치 행태"로 정의했다
(위키백과)
포퓰리즘은 대중들이 우선시 되는 그러한 정치이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거꾸로다. 현실성 없는 인기 영합주의로 사용된다. 왜 이럴까? 그건 상대방을 낙인찍기에 아주 적절한 단어이기 때문이다.
아주 넓은 범위로 사용가능하다.
누군가의 정책을 놓고. 이러이러한 점에서 정책은 실현가능하지 않다. 라는 이야기는 없고 그저 "포퓰리즘 정책이다"로 덛씌우는 거다. 조금이라도 국민들에게 도움이 되거나 한다면 포퓰리즘으로 낙인 찍고 비방한다. 근거는 현실성이 없다는 것 뿐이다. 그리고 그건 국민들이 좋아할만한 것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이런 오남용의 수준은 심각한 것으로 과거 빨갱이 때려잡기랑 유사하다.
왜 이들은 포퓰리즘 정책을 부정적 뉘앙스의 단어로 사용하는 것일까. 그건 우리나라. 그러니까. 저 단어를 일부러 저따구로 사용하는 인간들이 대중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대중이란 뭔가. 민중이란 무엇인가. 그들은 아는것 없고 배운것 없으며 그들 앞에 놓인 이익 외에는 생각하는 법을 모른다. 그러하기에 그들은 아침에 도토리 3개 저녁에 도토리 4개가 어차피 같은 7개라는 것도 모른다. 아침에 도토리 4개를 꺼내놓아 그들의 비위를 맞추어 표나 얻으려고 하는 종자들은 포퓰리스트다. 우리는 다르다. 우리는 똑똑하고 앞을 내다보는 종자들이다. 우리는 우월하기에 대중들의 인기에 부합하는 정책을 세우려는 너희들을 이렇게 내려다보고 있는 것이다. 우하하하
요론 꼴이란 거다. 딱 봐도 답 나오지 않냐.
스스로가 포퓰리즘 포퓰리즘 거리면서 제살 깍아먹기 하지 말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