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약칭 전국연합)은 1991년 12월에 결성된 대한민국의 정치단체다. 재야민족민주운동의 전국조직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의 후신격으로 출범했다.
전국연합은 출범 당시 참여하던 인사가 1997년 떠나면서 사실상 해소됐다. 2001년 이후 전국연합은 진보정당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2006년 한국진보연대 출범으로 전국연합은 2008년 2월 공식적으로 해산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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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년 전국연합은 사업계획서를 통해 "6 . 15선언이후 사변적인 급물살을 타고 있는 통일정세, 반미자주화 운동의 일대 고양 속에서 광범위한 민중의 정치적 성장과 진출은 놀라운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6 . 15공동선언은 우리 민족끼리 힘을 합쳐 통일의 문을 열어 감으로써 가까운 몇 해 안에 연방통일조국을 건설할 수 있는 민족사적 전망을 활짝 열어 젖혔다."고 전망했다. 이어 전국연합은 "연방통일조국 건설과 자주적 민주정부수립이라는 시대적 과업의 완수를 위해 노동자, 농민, 청년학생 등 주력군이 중심이 된 명실상부한 민족민주전선체 건설이라는 총적 방향을 확고히 틀어쥐고 나가야 한다"며 전면적 조직혁신, 기층민중 조직사업 강화, 광범위한 통일운동 세력의 단결, 진보정당 건설이라는 4가지 조직과제를 천명했다.
구체적으로 전국연합은 2002년 지방선거 대응방침에서 "민주노동당을 비롯한 진보적 정치세력과 연대, 협력함으로써 지방선거에서 진보진영의 정치적 진출을 최대한 높일 수 있는 방도를 모색한다"고 밝혔다. 이후 전국연합의 조직원들은 민주노동당에 대거 입당해 주류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2008년 전국연합은 공식적으로 해산했지만, 조직원들은 민주노동당과 통합진보당에서 주류세력으로 꾸준히 활동하고 있다. 일부 진보성향의 언론에서는 전국연합의 지역조직인 경기동부연합, 인천연합, 울산연합 출신들이 패권적, 반민주적으로 당을 이끌어온다고 비판하기도 한다.[1] 진중권 교수는 중앙위 진행 상황을 시시각각 트위터로 전달하며 “여러분은 경기동부연합이라는 한줌의 무리가 통합진보당에 표를 던진 200만이 넘는 유권자의 뜻을 사정없이 짓밟는 민주주의 파괴의 현장을 보고 계십니다”라고 통합진보당 폭력 난투극 사건의 배후를 지목했다
'경기동부연합'이라는 표현은 실제 전국연합에 참가한 사람들 뿐만 아니라, 이런저런 경로로 경기동부연합 출신 인사들과 인적 네트워크를 이룬 NL계열 인사들을 지칭하는 표현이다. 2006년부터 민주노동당의 당권을 쥐고 있었으며, 2012년 7월 강기갑을 대표로 하는 통합진보당 2기 지도부가 구성되기 전까지는 언론을 통해 '통합진보당 당권파'로 소개됐다. 경기동부연합의 주축세력은 하영옥, 이석기 등이 중심이 된 민혁당 출신 인사들, 한국외국어대학교 용인캠퍼스 출신 인사들, 성남지역의 재야세력, 한총련, 한대련 출신 운동권 학생들이다. 광주전남연합 역시 경기동부연합과 행동을 같이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통합진보당 비례대표 후보 경선 논란을 통해 경기동부연합의 존재가 알려지면서 민혁당의 중심 인사였던 하영옥이 경기동부연합의 중심 인물로 제기되기도 했다.[3] 하영옥은 언론 인터뷰를 통해 자신을 경기동부연합의 중심 인물로 표현한 신동아의 기사가 사실과 다르며, 통합진보당에 입당하여 평당원이지만 현재는 어떤 정치적 활동도 하지않고 있다고 밝혔다.[4] 경기동부연합-광주전남연합 출신 주요 인물로는 이정희, 이석기, 김재연, 오병윤, 김선동 등이 지목되고 있다
여기서부터 본론.
신동아의 글을 인용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100&oid=262&aid=0000005383
2004년 17대 총선에서 민노당이 배출한 의원 10명 중 NL은 현애자 전 의원이 유일했다. 민노당은 PD의 정당이었다. 그런데 2004년 민노당 당권을 NL이 차지하는 일대 사건이 발생했다. 최고위원 선거에선 ‘세팅 논란’ ‘조직적 담합 투표에 따른 몰표 현상’이 벌어졌다. 경기동부라고 불리는 세력을 비롯한 NL그룹은 심상정·노회찬·조승수 등 범PD계를 누르고 당권을 잡았다. 2004년 9월 이전의 민노당과 이후의 민노당은 헤게모니 집단과 정책에서 성격이 크게 다르다. 민노당에서 PD는 평등파 혹은 좌파, NL은 자주파로 불렸다.
사회발전 5단계론에서 한국이 어느 지점에 위치했느냐를 두고 NL, PD가 분기했다. PD는 소련식 사회주의에 경도됐고, NL의 주사파는 북한을 모델로 삼았다. 민족해방(NL)을 이룬 뒤 민중민주주의(PD)를 거쳐 혁명(Revolution)을 해야 하는데, NLPDR에서의 위치를 두고 논쟁을 벌인 것이다. PD는 NL 시기를 지났다고 봤고, NL은 남조선은 미제 식민지라는 북한의 주장을 따랐다. PD는 사회주의를 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이고, NL은 “때가 아니다. 해방부터 이뤄야 한다”고 본 것이다.
진중권의 프레시안 기고 글..
그때 만난 주사파는 내게 자신이 주위 사람들에게 어떤 민주노동당 가입을 권유하는지 자랑을 했다. ‘동지, 김 주석이라면 이 상황에서 무엇을 했을 것 같소. 내 생각에 김 주석이라면 남조선 상황에서는 민주노동당을 했을 것이요.’ 도대체 이런 사람들하고 진보정당을 같이해야 한단 말인가? 그때 내가 얼마나 참담했겠는가. 종북주의자들이 온갖 편법으로 민주노동당의 조직을 장악해 들어와도 징계 하나 제대로 못하는 것을 보고, 나는 이미 당시에 민주노동당에 대한 기대를 접었다. 그때 내가 탈당으로써 경고했던 일이 지금 현실로 나타난 것이다
김어준의 정치부장 中에서..
이정희라는 젊은 정치인이 민노당에 이어 통합진보당의 대표 자리에 있는 것조차 그들이 결정한 거다. 정진후, 윤원석 모두 마찬가지다. 그런 그들에게 백날 책임을 지고 사퇴하라고 우겨봐야 그 셋은 혼자 앉아 피눈물만 흘리게 될 것이다. 내가 결정할 수 없는 일을 하라고 강요당하는 심정을 생각해보라. 도대체 누가 그 결정권을 가지고 있는가? 도대체 어떤 집단이 그들을 내세워 무리한 행동을 하게 만들고 결과적으로 물의를 일으키고 총선 전체 판국을 흐트러뜨리면서도 물러설 줄을 모르고 있는 걸까? 도대체 왜 이런 속성을 가진 집단이 통합진보당의 핵심 의사결정권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그들의 이름은 과거에 NL이었고, 주사파였다가, 최근에는 자주파로 불리기도 하고, 민노당 시절에는 진보신당 그룹을 축출해낸 당권파였다가, 요즘 유행으로는 경기동부라고도 불린다. 정식 당직도 없는 몇몇이 이너서클을 형성하고 거기에서 수많은 자기 계열 소속 구성원들의 정치적 행동을 결정하고 명령을 내린다
결과적으로 이야기 하자면 진보(PD)가 추구했던 길을 종북좌파(NL)이 다 망침으로서 대한민국의 진보 = 종북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게한 대표적인 단체임. 그리고 이 인식으로 인해 한동안 진보는 날개를 펼치기도 어려웠음.
그리고 그곳의 수장이 이석기, 이정희인 것이고..
실제로 통진당 때 이정희는 경기동부연합 편을 두둔하며 유시민(자유), 심상정(PD)등을 내침.
그렇기 때문에 내가 이정희를 조낸 싫어하는 것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