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심해서 썰 하나 풀어본다.

노동쟁의 작성일 13.02.13 16:21: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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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어릴적 군국주의자였다. 소련 붉은 군대의 각 잡힌 행렬을 아릅답다 평가했다. 그들의 국방력은 또 어떠한가. 미국과 대결하는 세계 최강국이었다. 하나의 우두머리가 지휘하는 대로 좌 우를 맞추어 행군하는 모습은 빛이 날 정도다. 붉은색의 깃발에 황금색의 망치와 낫은 완벽한 균형이 잡힌 조형물을 형상화 한듯 했다. 


나치는 어떤가. 붉은 색에 각 잡힌 그들의 깃발 또한 소련의 그것과 같이 아릅다웠다. 군대의 규모는 작지만 엄청난 기술력과 아이디어. 영국의 런던을 초토화에 가깝게 공습했던 V2로켓과 미군의 탱크를 씹어먹던 거대한 티이거 탱크는 어릴적 나를 프라모델의 세계로 인도했다. 적을 공포에 떨게하는 국가의 위대함이란. 남자에겐 야릇한 사디즘을 안겨준다.


그래서 박정희도 좋았다. 강력한 국가의 힘으로 국가 기간사업을 초고속으로 완성하고 진행해나간 결단력. 새마을 운동으로 궁핍한 대한민국을 부유하게 만든 힘. 베트남에서 베트꽁을 공포에 벌벌 떨게한 백마부대의 전설. 우리도 언젠가는 일본을 격파하고 북한을 흡수 통일하며 나아가 동 아시아의 제국으로 성장 할 가능성은 박정희로 인하여 배태되었다 믿었다.


이렇게 어릴적 꿈들은 꾿꾿히 유지되었고 그것이 20살 까지 이어졌다. 21살. 이제 군대를 갈 나이다. 훈련소를 들어가 71번 훈련병이라는 번호를 부여 받았다. 훈련병인 순간. 내 이름은 지워졌다. 내 출신. 내 학교. 모든것은 71번으로 수렴되었다. 나란 무엇인가? 거대한 군대의 규율속에서 존재하는 나의 의미는 71번째 훈련병이란 것 이외에는 사라진 것이다. 그제서야 난 군국주의의 환상에 의문을 제기하게 되었다. 국가에서 나는 과연 무엇인가?


이런 의문은 자연스레 국가에 대한 비윤리적 행위에 관심이 쏠리게 되었다. 전체의 환상에서 지워진 개인들을 보게 된것이다. 우리는 로마의 카이사르. 진나라의 진시황. 일본의 이에야스. 한국의 광대토대왕을 기억한다. 그들의 휘하에 있던 수많은 개인들의 삶을 후대에 우리는 생각하지도 않았지 않는가. 스탈린의 독재에 반발해 시베리아 벌판에서 추위와 고독속에서 죽어간 수많은 이름없는 이들. 유대인이란 이유만으로 나치에 의해 유태인 수용소에서 참혹하게 죽어간 수많은 이들. 나는 왜 그들은 생각하지 못했는가.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 나라는 사람을 어떻게 내가 평가하는가 하는 생각에 미쳤다. 난 대한민국 상위 계급이라 날 평가하지 않았는가. 수많은 이들의 이름은 지워질 지언정 내 이름은 지워지지 않는다 믿고 있지는 않았는가. 난 진정 대한민국의 상위 계급인가. 난 수많은 이들 중 하나인가. 상위의 인간인가.


그래서 난 군국주의의 환상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평등한 사회를 외치고, 공정한 분배를 말하며, 다함께 잘사는 대한민국이 되어야 한다 믿게 되었다. 사회적 안정망으로 더 많은 사람들이 조그마한 행복을 누리고 사는 대한민국이 아름다운 나라라 믿는다. 광활한 만주벌판을 호령하던 고구려가 더이상 멋지지 않다. 유럽을 통일할 뻔 했던 나치를 대단하다 생각하지 않는다. 일본 제국을 부러워하지 않는다. 군국주의는 적어도 나와는 상관없는 허황된 꿈이다.


아직도 많은 인간들이 제국주의, 전체주의, 군국주의에 환상을 가지고 있다. 박정희가 우상이고, 고구려가 자랑스런 우리의 역사라 믿는 사람들. 난 그들에게 스스로를 돌아보라 이야기하고 싶다. 


당신은 연봉 7천만원이 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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