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혼은 죽은 사람의 이름을 세 번 부름으로써 그 사람을 소생하게 하려는 전통적인 의식이다. 지난 10월 26일 현충원에서는 박정희 대통령을 소생하게 하려는 애절한 초혼가가 울려펴졌다. 손병두 박정희대통령기념재단 이사장이 먼저 나섰다. 손 이사장은 “아직도 5·16과 유신을 폄훼하는 소리에 각하의 심기가 조금은 불편할 것으로 생각하지만 마음에 두지 마십시오. 태산 같은 각하의 뜻을 어찌 알겠습니까”라고 말했다. 이에 질세라 새누리당 심학봉 의원은 추도사에서 “아버지 대통령 각하”라고 말한 뒤 “아버지가 돌아가신 지 34년이 됐다. 아버지의 딸이 이 나라 대통령이 됐다”고 말했다. 김관용 경북도지사는 “박 전 대통령이 구국의 결단을 할 때 나는 교사여서 잘 몰랐지만 시간이 흐르면서 참 대단한 어른이란 생각이 든다”고 말하며 새삼스런 감격을 전했다.
그러나 이들의 초혼가는 울리지 않는 변방의 북소리에 그치고 있다. 애타게 박정희 전 대통령을 불러보지만, 박 전 대통령이 다시 소생할 기미는 없어 보인다. 떠들썩하게 10·26 추도식을 거행하고, 정부가 나서서 새마을운동을 복원하겠다고 하지만 일부 보수층을 제외하고는 별로 관심이 없다. 오히려 박 전 대통령을 복원하려는 이러한 보수진영의 움직임이 현 정부에는 마이너스로 작용할 것이라는 분석이다.
호출할수록 박근혜 정부 무능 드러내
이택광 경희대 영미문화학과 교수는 보수진영 일각에서 박정희를 자꾸 호출하는 것을 박근혜 정부가 경계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 교수는 “박 전 대통령을 다시 호명하는 것은 이 정부에 도움이 안 된다. 자꾸 이 정부가 우상숭배로 귀결된다는 것은 그만큼 이 정부의 지향점이 없다는 것을 보여준다”며 “뚜렷하게 뭘 하겠다는 의지 없이, 그저 새마을운동을 하겠다는 것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박정희를 애타게 찾는 보수진영 일각의 움직임은 ‘박정희 향수’ 외에 다른 것으로는 지지를 끌어모을 수 없는 박근혜 정부의 무능을 역으로 보여준다는 분석이다.
신드롬 사라지고 신화화 설득력 잃어
이러한 박정희 신화화 작업은 ‘파시스트 이데올로기’라는 비판을 받는다. 이러한 비판작업은 기존에 박정희를 신화화하려는 이들의 대중적 설득력을 약화시키고 발언권을 축소시키는 효과를 낳았다. 당시 ‘박정희 신드롬’에 직격탄을 날린 대표적인 인물은 강준만 전북대 교수다. 그는 <인물과 사상> 2권에서 ‘왜 박정희 유령이 떠도는가’라는 제목의 글을 발표하며 당시 베스트셀러 작가였던 이인화의 ‘인간의 길’을 공개적으로 비판한다. 이 소설은 박정희의 일대기를 영웅화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씨는 당시 “희망을 잃고 총체적 허무주의에 빠져 있는 내 또래 젊은 세대에게 국가 발전의 방향을 제시하기 위해서” 소설을 썼다고 밝혔다. 강 교수는 대구 출신인 이씨의 지역주의적 뿌리를 비판하며 “개발독재로 인해 탄압받은 사람들이 두 눈을 시퍼렇게 뜨고 살아 있는데 독재자를 예찬하는 것은 극단적인 파시스트도 감히 공개적으로 꺼리는 말임을 알아야 한다”고 일갈한다. 이씨가 말하는 ‘인간의 길’은 ‘인간의 길’이 아니라 ‘파시스트의 길’이라는 비판이었다.
문제는 ‘언제든 박정희 불러낼 분위기’
하지만 ‘박정희 신드롬’이 사라지고, ‘박정희 신화’가 설득력을 잃었다고 하더라도 한국 사회의 보수화·우경화 위험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지금 박정희에 대한 일부 보수진영의 호출은 일종의 충성경쟁, ‘생계형 호출’인 경우가 많다. 한윤형 정치평론가는 “박정희 전 대통령에 대한 대중의 평가가 거의 끝난 상황에서 박정희가 호출되고 있는 것은 현재 대통령인 박근혜 대통령에게 아부하기 위한 권력지향적인 속성이 강하다”고 말했다. 그런 지점에서 진보·개혁진영에서 박근혜 정부를 박정희와의 연장선상에서 ‘유신’ ‘권위주의’ ‘민주주의 위기’로만 비판하는 것은 보수의 가장 후진적인 층위와 싸우는 것에 불과할 수 있다. 문제는 일부 보수진영의 ‘박정희 신화화’가 아니라 유사 박정희를 언제든 호출할 수 있는 사회적 분위기가 우리 사회 저변에 깔려 있다는 것이다.
(중간중간 발췌)
전문 :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311021047491&code=9101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