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희 노무현이 너무 지겨워서...

mugan 작성일 14.01.27 13:13: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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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한국형 다수제 민주주의의 문제점 

우리나라는 이 문제 많은 영국식 다수제 민주주의를 미국을 통해 수입했다. 그 과정에서 미국인들이 수정을 가한 부분, 즉 행정부 형태를 의원내각제에서 대통령제로 바꾼 방식은 그대로 들여왔으나 대통령으로의 권력집중을 방지하기 위한 삼권분립, 상하 양원, 연방 제도 등은 제대로 수용하질 못했다. 결과는 다수제 민주주의의 특징인 승자독식-패자전몰 현상이 정당만이 아니라 지도자 개인 차원에서도 지나칠 정도로 뚜렷하게 나타나는 '위임 대통령제'의 고착이었다. (극단적 사례지만,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는 이 패자전몰 민주주의의 비극으로 볼 수 있다.) 대통령은 마치 국민으로부터 전권을 위임받은 것처럼 정당정치와 의회정치를 무시할 정도의 절대 권력을 휘두를 수 있게 되었다. 이는 다종다양한 시민사회의 선호와 이익을 정치 과정에서 복수의 정당들이 분담하여 대변한다는 정당 및 의회 중심의 대의제 민주주의의 본질에서도 크게 벗어난 것이라 할 수 있다. 

위임 대통령제의 문제는 정당정치의 후진성과도 연결돼있다. 정당정치가 자리 잡지 못한 탓에 대통령이 야당은 물론 소속 정당의 이념이나 정책기조에 의해서도 구속되지 않는 것이다. 무릇 대의제 민주주의가 제대로 작동하기 위한 가장 기초적인 조건은 정당정치의 활성화이다. 이는 정당체계가 상당한 정체성과 영속성을 유지하고 있는 이념이나 정책 중심 정당들로 형성돼있어야 가능한 일이다. 그래야 사회경제적 약자 집단들을 포함한 시민사회의 다종다양한 구성원들의 선호와 이익이 이들 정당들을 통해 제대로 표출되고 집약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의 정당정치는 아직도 지역이나 인물 중심 정당들에 의해 전근대적으로 불안정하게 진행되고 있다. 그 로 인해 우리 사회의 대다수를 차지하는 비정규직을 포함한 노동자, 자영업자, 중소기업, 도시 빈민 등의 대규모 사회경제 집단들이 안정적인 정당 대리인 없이 정치적으로 방치돼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반면, 대기업과 부유층 등의 소수 집단들은 과도 대표되고 있다. 

한국식 대의제의 이 지나친 불균형성은 다수제 민주주의의 구조적 문제인 (승자독식에 따른) 사회 혼란과 정치 불안에 대한 취약성을 더욱 증대시키고 있다. 예컨대, 우리는 정치적 대리인을 확보하지 못한 사회경제적 약자 집단들이 모종의 위기에 봉착할 때 정당 등을 통하는 소위 '합헌적 채널'보다는 길거리에서 자신들의 요구 사항을 몸으로 호소하는 소위 '강압적 채널'을 통해 스스로의 이익을 표출하는 광경을 자주 목격한다. 합헌적인 방법보다 강압적인 방법을 선호해서가 결코 아니다. 그들에겐 합헌적 채널이 제공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회경제적 약자집단들을 위한 유력한 정치적 대리인이 턱 없이 부족한 상황에서 한국의 경제민주화 혹은 실질적 민주주의는 전혀 유의미한 발전을 못하고 있다. 양극화는 계속 진행되고 있으며 비정규직은 급증하고 있다. 말하자면 사회경제적 열등 시민들이 양산되고 있는 것이다. 오히려 실질적 민주주의는 지금 퇴보 중인지도 모른다. 

이 상황을 틈타 한국 사회의 신자유주의화는 날이 갈수록 확대 심화되고 있다. 실질적 민주주의의 퇴보와 궤를 같이 하는 것이다. 신자유주의의 대안 마련을 부르짖는 이들이 늘어가고 있음에 그나마 위안을 삼기도 하지만, 그것이 아무리 훌륭한 것일지라도 사회경제적 대안 작성 그 자체만으로는 아무런 도움이 될 수 없다. 문제는 실현 가능성이다. 사실 신자유주의화는 정치적 기획의 산물이지 자연스러운 사회경제적 현상이 아니다. 그렇다면 이제 한국 시민사회는 정치적 대안 마련에 오히려 더 많은 힘을 쏟아야한다. 후술하겠지만, 작금의 한국식 다수제 민주주의 하에서 실질적 민주주의의 발전을 도모하거나 신자유주의의 사회경제적 대안 체제 형성을 꾀하는 일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한국형 합의제 민주주의의 건설을 제창하는 까닭이다. 


출처:http://k.daum.net/qna/openknowledge/view.html?qid=3xhX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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