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후 일본의 극우와, 독재에 관대한 일부사람들...

카르타고 작성일 14.10.03 22:07: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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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수의 한국인에게 아베정권과 일본의 극우성향에 많은 일본인들이 휘둘린다는 인상을 가지신분들이 많습니다.

이것이 어느순간 수면위로 떠올른것이 아니라 전후처리과정에서 그리고 일본인들의 내면속에 "잘못이없다, 라는 인식이 심어지고 여기에 나름의 착각이 될수있지만 정당성이 더해지면서 표출되었습니다.

과거 메이지유신이전의 일왕은 좋게말하면 상징적존재이자 중재자로서 오랜시간 왕조를 이어왔지만 좀더 직설적으로 이야기하면 굶어죽지않을만큼 정치에 배제된체 시조나 읊조리며 세월을 보내는 존재에 불과했습니다.

우리에게 철천지원수라할수있는 도요토미히데요시가 일으킨 임진왜란의 주범으로 원흉이지 일왕을 임진왜란의 책임자로 거론되지못하는것이 전국시대 일왕의 존재가 생각이상으로 미미했기 때문입니다.

수많은 다이묘를 쿄토에 상경하고자 피비랜나는 전쟁을 일삼은 전국시대조차 권력은 쟁취하는것이고 그렇게 무력으로 쟁취한 권력을 공인받기위한 도장을찍는 전리품수준의 미미한 군주였습니다.

실제로 히데요시가 전국을 통일한후 일본의 통치자가 되었지만 일왕은 관백이라는 작위를 내리는 허수아비적 존재였고 이후 이에야스의 막부성립에서 쇼군의 작위를 내리는 명목적 군주, 그것이 이전의 일왕이었습니다.

그러던것이 메이지유신을 통해서 일본측이 말하는 대정봉환을 통하여 에도막부가 무너지고 권력이 다시금 일왕에게 돌아왔지만 여전히 권력을 행사할만한 위치에 오르지는 못합니다.

하지만 메이지유신이후 이전과 다른것은 상징적존재를 탈피하여 권력의 최고정점으로 군림하는 군주로 올라왔고 이제는 단지 중재자의 역할이 아니라 권력을 위임하는 위치로 격상됩니다.

아무리 수상의 권력이 크고 실질적 권력행사자의 위치라도 그 권력을 이양받기 위해선 이전과 달리 일왕의 권력위임없이는 더이상 일본의 통치자로 나설수없다는점으로 크게달라진 위상을 보여줍니다.

일각에선 2차대전당시 일본의 군국주의를 실질적으로 주도한것이 아닌 일왕에게 책임을 묻는것이 무리이고 고작 의회에서 연설정도만하고 실질적 권력행사주체가 아니기에 전범으로 모는것이 말이 안된다는 주장이 있습니다.

전후 다시금 전범문제로 골머리를 앓는 맥아더와 미군에게 일왕의 사면을 요청하는 수많은 편지와 탄원이 쇄도하면서 군사적 정치적이용을 위해서 일본의 협조를 필요로한 미국에게 받아들여집니다.

문제의 발단은 바로 여기서 시작되는데 비록 실권은 행사하지않아도 권력을 대신에게 이양하고 위임하는 존재라는 위치는 자신이 그만한 책임자로서 인정하는것이고 통수권자로서 합법성을 공인한것입니다.

그렇기에 일왕은 전후 전범중에서 A급전범으로 기소하여 책임을 물을 필요성이 분명했지만 동아시아에서의 공산주의와 소련의 팽창에 위협을 느끼던 미국정부는 원할하게 일본을 활용하기 위해서 암묵적으로 제외시킵니다.

최고책임자의 사면은 어쩌면 전후 패배의 굴욕감과 상실에 사로잡힌 일본인에게 그들의 전쟁은 신적인 일왕에게 바쳐진 숭고한 전쟁으로 뇌에서 전쟁범죄와 책임과 사과에 회피할수있는 망상을 만들어 버립니다.

신적인 존재로 격상된 일왕과 아무런 의심없이 맹목적인 충성과 의무를 다짐받았던 일본인에게 비록 패하였지만 일왕을 위해서 충성과 목숨을 바친전쟁으로 일본과 아시아전체를 위한 희생으로 여기는 무리수가 발생합니다.

2차대전 당시 태평양에서 과달카날인가 전투에서 일본군연대장은 상륙을앞둔 일본해군육전대원들에게 말하기를 "임무는 산처럼 무겁고 목숨은 깃털처럼 가볍다."라는 정확히 기억은 안나지만 이러한 훈시를 합니다.

아무리 도조가 권력을 휘둘려도 대신들이 군국주의를 노래해도 결국 이들의 권위는 일왕에서 위임받은 즉 빌려온것이니 여기서 일왕의 책임없다는것은 살인교사죄에서 살인을 청부한사람은 잘못이 없다는것과 진배없습니다.

이른바 피해자코스프레로 때로는 서구제국주의로부터 아시아들 지키기위한 일본의 결단으로 치부하는 극우성향은 아무리 밑에사람 처벌해봐야 정작 최고책임자를 사면하면 어떤 꼬락서니로 이어지는지를 보여줍니다.

예전보다는 덜하겠지만 일왕의 존재는 여전히 반박할수없는 존재로 똥을 된장이라고해도 정말 된장이라고 여길사람들이 충분히 있을만큼 그 존재자체의 의미가 전후 전범재판에서 묵인되면서 이어지고있습니다.

일본에게 진심어린 사과를 받는것이 처음부터 무리인이유가 설령 책임과 과오를 통감해도 죽었다 깨어나도 일왕이 머리를 숙이는일이 발생할리없고 이러한 사태이전에 일본정치권은 이미 집에서 부엌칼로 배때기에 그림그리고 있을겁니다.

여기서 우리는 일본의 이러한 잘못된 선례와 과오를 보면서 느끼는것이 잘못을 잘못이라 인정하지못하는것, 어쩌면 이승만 박정희에게 매몰된 숭배가 근본원인이라 느낍니다.

4.19이후 이승만은 감옥이 아닌 따뜻한 남쪽나라로 자신의 주특기를 시전하며 먹튀의 제왕으로서 역시 남다른 품격을 보여주시고 역사에 크나큰 오점을 남겨버립니다.

박정희역시 철옹성같았던 권력의 달콤함도 믿었던 부하의 손에 비명횡사하시며 너무도 편안한 죽음을 맞이하고 이 역시 반성과 책임을물을 기회는 김재규의 총성과 함께 훨훨 날아가버립니다.

독재정권의 찬양은 그 과오를 얼마만큼 잘 청산하느냐의 역량에 따라서 극과 극으로 나뉜다고 생각합니다.

일본의 역량은 그들의 신을 살리기위해서 인간으로서의 양심을 버립니다.

우리는 명명백백한 잘못앞에서도 그것이 어쩔수없는 상황, 시대의 불가피한 흐름과 역사의 요구로 온갖 각색과 소설로 미화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일부의 몰지각한 극우라고할지 애매한 사람들이 존재합니다.

우리는 전두환, 노태우같은 이른바 살아있는 반란군수괴조차 어찌하지못하는 현실에서 과거의 독재와 그릇된 잔재를 청산하고 역사를 바로잡겠다는것이 어쩌면 희극속의 비극과 다름없습니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셰스쿠를 총살시켰던 법정의 재판관들을 하루속히 국내도입시키기를 헛된 꿈을 가져봅니다.

일본의 선례와 교훈을 반면교사로 삼아서 좀더 올바른 미래의 청사진을 제시하는날이 오길 바랍니다.

최고책임자의 처벌에 미숙한 우리와 요행으로 일왕의 책임을 어물쩡넘긴 일본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금 이러한 잘못된 과오가 되풀이되는 불행한 역사에서 자유로워지는날이 오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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