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렉시트의 향방
이채언(전남대 경제학부)
우선 사실관계부터 분명히 하자.
1. 브렉시트는 영국정치인들의 정치적 책략의 일환이었다. 영국은 의회주의국가라서 주민투표를 원칙적으로는 인정하지 않는다. 그런데 여야 모든 정치인들이 겉으로는 한 목소리로 잔류를 외쳤다면(이전의 런던시장만 탈퇴를 주장했다하나 그는 비주류이다.) 구태여 주민투표까지 할 필요도 없었다. 누가 주민투표를 하자고 그렇게 요구도 하지 않았는데 강행했다. 법에도 없고 누가 요구하지도 않았고 정치인들의 의견이 갈리지도 않았는데 주민투표를 했다. 의회 정치인들끼리의 의견이 극과 극으로 갈라져 그들 의견만으로는 국가대사를 함부로 결정지을 수 없는 어떤 시급한 결정을 기다리는 사태에서만 주민투표가 인정될 정도인 그런 나라에서 왜 주민투표를 했겠는가? 그것은 영국인들의 전통적인 양다리 걸치기 전략 때문이다. “주민들의 다수의견이 탈퇴 쪽이니까 일단 우리는 탈퇴를 한다. 만약 우리의 EU잔류가 아쉬우면 EU 너희가 먼저 양보해라. 그러면 우리가 다시 주민들을 설득해서 EU에 잔류토록 하겠다.”
영국의 요구조건은 명백하다. EU 내에서의 발언권의 강화이다. 영국은 세계금융의 중심지로 남아 있기를 원한다. 그래서 EU경제정책에 대해서도 영국은 시티 금융세력의 의견을 반영하려고 노력해왔다. 그런데 영국은 유로가입 국가가 아니기 때문에 EU의 경제정책에 대해 특별한 발언권이 없다. EU의 경제정책은 주로 유럽중앙은행과 유로가입 국가들이 주된 역할을 한다. 유로에 가입도 하지 않은 영국의 목소리를 귀담아들을 이유가 없다. “우리 의견이 그렇게 하찮으면 우린 나가겠다.” 그래서 영국정치인들이 탈퇴를 결의하면 그들이 직접 정치적 책임을 져야 하지만 주민투표를 빌려 탈퇴를 하면 정치적 책임을 질 필요가 없다. 번복할 여지도 있다.
벌써부터 2년간의 재협상 기회가 있다는 얘기가 나오는 것부터 수상하다. 주민투표로 탈퇴결정이 났으면 즉시 그대로 따라야만 직접민주주의를 존중하는 나라가 아니겠는가? 그러나 사실은 영국은 민주주의국가가 아니다. 주민투표에도 불구하고 주민의 의사를 지렛대삼아 협상으로 유리한 조건을 얻으면 의사를 번복하겠다는 전략 아니겠는가? 그러나 이 책략은 너무 속이 번연히 들여다보여 실패할 수밖에 없다.
2. EU는 브렉시트를 과연 어떻게 받아들일까? 내심 “후련하다. 차라리 잘 됐다. 아듀! 브리튼!”이라고 소리높이 외치고 싶을 것이다. 영국은 EC결성에도 사사건건 방해했고 EC를 EU로 발전시키려는 것도 가로막아 왔다. 유로통화를 창설할 때에도 사사건건 개별국가의 주권침해라는 구실로 반대했다. 그러나 EU위원회의 공개석상에서 유럽정치인들은 영국정치인들의 반론에 대해 일언반구 대꾸도 하지 않았다. 여러 차례나 조용히 그냥 듣기만 하고 해산했다. “싫으면 남의 나라까지 유로가입을 못하게 가로막지 말고 너 혼자 손 떼라. 우리끼리 유로통화를 사용하겠다.”고 해서 창설한 것이 오늘날의 유로통화다.
영국이 반대할 줄은 이미 알고 있었다는 투다. 영국이 유로에 가입 않은 이유는 뻔하다. 유로통화에 가입하면 통화발행권을 영국이 독점할 수가 없다. 통화발행권을 독점하지 못하면 영국의 런던은 더 이상 국제금융의 중심지가 될 수 없다. 따라서 유로가입은 영국이 결단코 않는다. 이 사실을 EU국가들이 눈치 채지 않았다면 바보들일 것이다. 영국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EU가 자기들끼리 유로통화를 창설한 것은 언젠가는 영국을 EU에서 떼어내겠다는 복심이 작용한 때문이다. 영국은 결코 유럽대륙과 같이 갈 수 없다. 역사적으로 영국은 유럽이 아니었다. 이 사실을 유럽은 잘 알고 있다.
그러면 왜 여태까지 EU는 영국을 붙들고 있었는가? 그것은 유럽의 군사력이 나토에 의존해 있었기 때문이다. 러시아의 핵공격을 방어하려면 영국과 미국의 도움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지난 2002년부터는 유럽통합방위군까지 창설했지만 사령부만 만들었지 실제 군사력은 나토군사력과 혼재되어 있었다. 왜 사령부를 별도로 만들었는가? 언젠가는 나토를 해체해야 하는데 그 전시작전권을 인수받아야 않겠는가? 그래서 미국은 그럼, 차라리 나토사령관을 미국인이 아닌 유럽인으로 하자고 교체해주었지만, 유럽에서는 나토의 가입국가와 EU가입국가가 다르다는 점을 내세웠다. 나토에는 가입해 있으면서 EU에 가입하지 않은 나라가 바로 터키이다. 유럽에서는 터키의 EU가입을 온갖 핑계로 미루어왔는데 그 이유가 유럽의 독자적인 통합방위군을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이제 2020년이면 나토를 완전 해체할 수 있다고 보고 그때 가서는 터키를 EU에 가입시켜주겠다는 약속을 하고 있다. 영국이 EU를 탈퇴하면 유럽은 이 기회에 나토해체를 들고 나올 명분이 생긴다. 유럽은 2002년 이후 15년간이나 나토와는 별개의 독자적인 군사력을 준비해온 만큼 앞으로는 미국과 러시아에 대해 군사적으로는 등거리외교를 취해나갈 것이다. 지난 25년간 유럽과 중동에서 미국이 벌려놓은 전쟁에 유럽정부가 질질 끌려 다니는 것에 유럽인 모두 이젠 진저리를 내고 있다.
3. 유럽은 왜 러시아에 접근할까? 러시아는 그동안 유럽과 가깝게 지내려고 노력해왔지만 일방적인 짝사랑에 그쳤다. 2014년의 크림반도병합 이후 유럽이 미국의지시를 따라 러시아제재에 동참하고부터는 러시아는 더 이상 유럽에 대한 미련을 버렸다. 유럽이 막대한 손해를 보아가면서까지 러시아에 대한 투자프로젝트들을 미국 때문에 파기할 수밖에 없었는데 러시아는 그러한 건설프로젝트나 연구개발프로젝트를 중국에 대신 수주하였다. 유럽의 농산물수입도 이제는 중앙아시아의 농산물수입으로 대체했다. 푸틴이 작년 신년에 일갈하기를 ‘아시아는 러시아에 대해 역사적으로 도움을 준 나라들이다. 그러나 유럽은 오랫동안 전통적으로 러시아를 침공만 했지 도움을 준 적이 없다. 러시아는 유럽의 나라가 아니라 아시아의 나라가 되어야 한다.’ 서로 싸우다가도 완전 이별을 하면 그제야 그 빈 자리가 느껴진다던가? 러시아가 없는 유럽이 유럽인들에게는 이제 허전한 것이다. 왜냐하면 러시아는 유럽의 거대한 상품시장이고 자본시장이기 때문이다. 러시아인들의 마음 속 밑바닥에는 유럽문화에 대한 동경이 하나의 전통으로 자리 잡고 있다.
유럽은 왜 미국을 멀리 할까? 그동안 지나치게 군사적으로 미국에 의존해온 탓으로 경제적 손실이 많았고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도 미국에 대해 자존심을 꺾어야만 했던 굴욕의 세월이었다. 중동전쟁, 코소보전쟁, 리비아전쟁 등에 동원되어 피도 흘리고 돈도 많이 썼지만 정작 얻는 바는 없었다. 더욱 참을 수 없었던 것은 2008년의 금융위기 이후 원치도 않는 양적완화를 통해 미국달러를 계속 강세로 유지시켜주어야 했던 점이다. 이러다가는 미국만 망하는 게 아니라 유럽도 같이 망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강하게 엄습하고 있다. 브릭스 국가들은 지금 미국에 대해 거대한 방화벽을 쌓고 있다. 불이 나더라도 화재를 진압할 수 없다고 판단되면 일단 그 발화지점을 포위해서 다 타서 재만 남을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 방화벽이다. 미국과 계속 가깝게 지내다가는 그 방화벽에 갇혀 미국과 같이 타죽을 수 있다. 차라리 그리스정부나 도우지 왜 달러를 돕는가?
4. 앞으로의 전망은?
재협상은 없다. 영국이 자진해서 유로가입을 굴욕적으로 청원할 때까지 유럽은 기다릴 뿐이다. 영국이 유로에 가입하게 되면 영국사회는 비로소 민주주의국가가 될 수 있다. 지금까지 영국은 마치 로마가 바티칸의 지배하에 있듯이 시티의 금융자본의 지배하에 있다. 영국이 시티의 금융자본의 지배에서 벗어나는 길은 유로가입이다. 그리되면 영국서민들의 삶이 윤택해진다. 유로가입 국가들의 정치적 통합은 더욱 가속화될 수 있다. 그동안 정치통합을 방해해온 훼방꾼이 물러갔기 때문이다. 유로통화의 민주적 운용에 대한 논의가 더욱 활발해질 것이고 진정한 경제민주화가 어떤 것인지 윤곽이 드러난다. 나토해체가 본격화된다. 유럽통합군의 독자군대가 2020년이면 위용을 드러낸다. 민주적이면서도 자주적인 유럽연방이 출현한다. 더 이상 유럽에는 미국의 입김이 작용하지 않는다. 유로에 가입 못하는 EU국가들은 뿔뿔이 각자도생한다. 동유럽 국가들은 다시 러시아를 뒤돌아보며, 카자키스탄과 러시아가 주축이 되어 작년에 창설한 유라시아연방에 문을 두드릴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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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이런 쪽을 잘 몰라서
보면서 이런 맥락이구나 하고 이해가 되었던 글을
같이 읽어보면 좋겠어서 퍼왔습니다.
혹시 문제가 된다면 댓글달아주시면 지우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