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쩔수없는 자조적인 말들이 나오기 시작하는 것 같다.
뭘해도 이 세상은 바뀌지 않을 것이야 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하면 그 동안 내팽게친 개인적인 일들이 떠오르게 될 것이다. 그 자리가 개인적인 책임감에 의해 죄책감이 든다면 더욱 심화 될 것이다. '그래, 나라도 자리를 지켜야지. 내가 망하면 이 세상도 없는거야.' 라는 생각.
일면 괜찮은 생각이고 또한 그렇게 하라고 하는 사람들도 많다. 이완용이 그랬다고 하기도 하고 종교지도자들도, 또한 선생들도, 그리고 역사속에서 얼마든지 발견 할 수있다.
일제시대때 자기 앞가림에만 신경 쓴 사람들의 자손들은 평안한 삶을 누린다. 독립운동을 했던 사람들은 자신뿐만 아니라 후손의 삶 마저도 담보로 해서 이 나라의 독립을 위해 싸웠다.
그 댓가는 참으로 참혹하고 비루하게 돌아왔다.
아마도 친일파나 외면했던 사람들은 그래서 더욱 그들의 행태를 알리고 싶어하지 않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부끄러움에 의해서던 아니면 나름의 확실한 신념에 의해서던.
광야가 이제 광장으로 바뀌었다. 일제시대보다 더 오랜 세월을 쌓아올린 그 부끄러운 비겁함에 대해 이야기해야 한다. 살아남은 사람은 그 시대의 부역자들의 자손이다. 그 부끄러움을 제대로 세워야 하는 때이다. 명확하지 않은가? 그래서 싸워야 하는 대상이 분명하지 않은가.
저 요지부동의 부끄러움을 모르는 자들을 앞에 두고 어찌 물러날수 있을까?
우리의 자식들이 저런 자들의 지배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은 상상만으로도 끔찍하다.
지치지 말아야한다. 적들이 저 앞에 있는데 분명하게 보이기 시작하는데 제자리에 주저앉거나 돌아서버린다면 그 옛날의 조상들과 다를바가 무엇이랴.
3.1운동은 위대했다. 그러면서도 그 한계에 대해 역사는 이야기 한다.
그리고 근 30년이 그렇게 지나가버렸다. 그 끔찍한 패배감을 돌이키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국민이 역사를 만든적이 얼마나 될 까? 지금이 바로 국민이 역사를 만들고 있는 현장이고 그것은 자랑스럽게 기록되어 청사에 남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