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회찬, 윤리와 도덕, 마키아벨리, 체자레 보르지아

적벽의공영 작성일 18.07.24 01: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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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노회찬 정치인의 자살을 보고 느낀 바 생각을 적어봅니다.

 

개인적으로 여차저차 들은 생각을 쓰는 것으로 편의상 해 체를 쓰고자 하는데 

 

어떤 악의가 있는 것은 아니기에 생각해주시고 봐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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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회찬 의원이 자살했다.

 

유언은 5천만원을 받았고 당과 가족에게 죄책감을 느껴 자살한다는 내용이었다.

 

그의 평소 소신과 발언이 그를 죽음으로 내몰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나칠 정도로 느껴지는 도덕성, 결백함, 순수함에 대한 추구...

 

지나온 자신의 삶과 정면으로 대치되었기에 딜레마를 극복하기 위해서 그는 끝내 자살이라는 선택지를 고를 수 밖에 없었을까?

 

돈을 받았냐

 

거부할 수 없는 물음을 앞두고 그는 자신을 파괴하는 길을 택하고야 말았다. 

 

노무현의 사례와 도덕성의 흠결에 정치 인생과 실 인생을 저버리고 마는 수많은 예시에서

 

나는 항상 윤리와 현실 정치의 딜레마에 대해 깊이 고민하게 되었다.

 

도덕과 정치는 별개의 것이라는 혁명적인 이론을 내세운 니콜로 마키아벨리 이래로 국제사회는 현실주의 이론 속에서 충실히 적자생존의 논리로서 돌아가고 있지만 국내 사정은 그렇지 못하다.

 

한 시대에 통용되는 통상의 도덕 윤리 관념은 그 사회에 필수적으로 필요한 가치의 재분배 보다 우위에 있는 것일까?

 

정치학자 데이비드 이스턴은 정치란 가치의 권위적 배분이라고 했다. 어느 시대나, 어느 국가나 우월한 가치는 소수의 계층만이 대부분을 가져가고 그 나머지를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눠 갖는다.

 

가치의 불균형한 분배가 극도로 심화되면 반드시 민중 봉기와 민란이 일어난다. 그리고 혁명이 일어난다.

 

신라 후기, 고려 후기, 조선 후기, 로마 제국 후기, 18세기 프랑스 왕국, 원나라-명나라 교체기

 

국가가 교체되는 극심한 혼란의 시기에 항상 불균형한 가치의 분배는 극도로 심화되었었고, 언제나 그것을 해결하지 못했고,

결국 무력을 가진 집단이 사회 체제를 통째로 전환시켜야만 했다.

 

이러한 사태가 오기 전에 할 수 있는 해결책은 그나마 평화롭게 평상시에 개혁을 추진하는 수 밖에 없었다.

 

하지만 이 과정은 항상 그 시대의 지배적인 주도 계층과의 필연적인 갈등을 낳을 수 밖에 없다.

 

고려 초기에는 호족, 중기에는 문벌귀족, 후기에는 권문세족, 조선 후기에는 세도 정치가문, 신라에는 진골 귀족간의 권력 경쟁, 공화정 로마에서는 원로원과의 갈등.. 르네상스 시대의 난립하던 도시국가들과 영주들, 용병집단들.

 

한 사회를 건전하게 만드는 것은, 한 사람의 몸을 건전하게 만드는 과정과 유사하다.

 

사회의 역동성, 살아있음, 건강함이 유지되고 신선하기 위해서는 항상 건강한 피를 공급해주어야 한다.

 

넓은 인재 풀, 계층간의 이동이 경색되지 않고 활발한 것, 젊음의 혈기로 왕성하게 치고 나가려는 20~40대들과 그것을 노련한 현실 감각으로 뒷받침해주고 제어해주는 50~70대의 원숙미. 한편으로 지속적인 인력 공급과 다양성이 존중되는 사회.

 

이러한 대대적인 개혁을 이루기위해서는 최소한 50~100년 사이의 기간이 필요하다.

 

체제의 역동성이 사라지는 로마 공화정을 극복하고자 했던 율리우스 카이사르와 그 뒤를 이은 옥타비아누스가 이것을 해내고자 걸린 시간이 최소한 60년이다. 그나마 옥타비아누스는  재위 기간이 보장된 로마 황제, 최고 일인자였음에도 이정도 시간이 필요했던 것이다.

 

후대의 역사가들은 옥타비아누스의 영민함을 대부분 찬양한다. 그와 비슷한 업적을 이루어낸 다른 지도자들에게도 그렇다.

 

그러나 개인적인 옥타비아누스의 삶이 도덕적으로 훌륭하였냐 라고 평가하자면 그렇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정략 결혼을 여러번 하였으며, 한때 아버지라 칭송했던 키케로를 잔인하게 살해하였고, 자신의 혈통을 확실히 하기 위해 자신의 딸을 여러번 강제로 이혼시키고 남자들과 결혼하게 하였고 결국 어긋나게 된 딸은 문란하게 바람을 피워 버렸다..

 

이후 내키지는 않았으나 통치 능력이 검증된 클라우디우스를 후계자로 지명할 수 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개인적인 삶과 반대로 그의 재위 기간 황금기를 맞은 로마 제국 시민들은 말년의 황제에게 찬사를 보냈다.

 

정치와 개인의 도덕성은 어디까지 일치시켜야 하는 것일까?

 

르네상스 시기 각지에서 도시 영주들이 난립했던 이탈리아 반도의 사례에서 

 

이탈리아 신민들의 미래의 항구적인 평화를 위해서는 강력한 통일 왕조의 등장이 절실히 필요했다.

 

하지만 스페인, 프랑스, 교황령의 이간질로 염원을 이루기는 어려웠고.. 강력한 실행력을 가졌던 체자레 보르지아도

결국 실패하고야 만다.

 

국가의 공공선, 국가의 이익, 민중의 이익이라는 공공선을 위해서라면 사소한 죄악은 용인되는 것이라는 마키아벨리의 

파격적인 주장 하에서 체자레는 그에 걸맞는 지도자였다.

 

물론 그의 개인적인 삶이 추문으로 가득한 것은 많은 사람이 아는 사실이다. 불륜, 강x, 여동생과의 근친xx 추문..

 

만약 이들이 현대에 나타나면 어떻게 될까

 

왜 노회찬은 죽은 것일까.

 

현대 정치에서 도덕은 아직 생명력을 유지하고 있다.

 

정치와 도덕 사이에서 나는 그리고 많은 시민들은 무엇을 선택해야 할까 

 

도덕과 정치과 분리되지 않았던 근대 이전에서 얼마나 멀어진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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