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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하이
태양이는 이제 제법 고양이가 되어가기 시작합니다.
처음엔 굶주리고 탈진해서, 마치 노란색 시궁쥐 같은 몸뚱이였는데 이제는 고양이의 길로 돌아온 것 같습니다.
태양이를 구조해서 데려온게 29일째니 추정 나이는 생후 32일에서 33일, 어쩌면 그보다 더 먹었을 수 있겠지요
어미를 찾으며 구해달라고 하루 종일 울었던게 3, 4일 가량인데 그 이전에는 며칠이나마 어미 곁에 있었을 수도 있으니까요.
감염으로 인해 생식기에서 고름이 잔뜩 나와 희석한 항생제를 맞은 뒤로는 고름도 멎고 거의 먹지도 않던 초유를 나름 빨아들이기 시작했고, 또 그것도 고작 며칠, 분유를 먹기 시작한 이후로는 지독한 변비에 걸리게 됩니다.
배변유도로는 전혀 대변을 보지 못해서 3시간마다의 케어타임마다 배변 마사지를 짧게는 수십분, 길게는 시간 단위로 해줍니다.
하지만 그러고도 일을 보지 못하는 날이 더욱 많았죠
아빠의 타율은 고작 35% 미만...
새벽에도 자지 못하고 계속해서 배를 문질러주지만 변을 볼 것 같은 기미가 보이지 않습니다.
아기 때문에 선풍기조차 틀 수 없으니 땀을 뻘뻘 흘리며 열심히 마사지를 해주지만 아기는 도리어 괴로워하고, 아빠를 원망스럽게 여기는 것만 같습니다.
그렇게 대변을 보지 못한지 48시간이 넘어가면 병원으로 데려가서 간호사 선생님들께 맡깁니다.
아빠의 손이 거칠어서 그런지, 배변 자체의 고통인지 가면 갈수록 배변마사지를 하려는 아빠의 손을 발로 차댕기고, 물고, 할퀴고, 팔다리를 격렬하게 파닥거리고,
트라우마가 쌓인 탓인지 집에서 꺼내 케어를 하기 위한 장소로 만들어놓은 거실로 데리고 나오면 그 순간부터 구슬프게 울고 반항하기 시작합니다.
때로는 아빠의 손이 다가오면 겁 먹고 뒤로 물러서기도 하고요.
그래서 간호사 선생님들에게 맡기면, 정말 한시름 덜게 됩니다.
남자가 아니라서 그런지 간호사 선생님들에게는 꽤나 얌전히 몸을 맡기는 편입니다.
아주 반항을 안하는 것은 아니지만, 우는 소리도 상대적으로 낮고 공포가 덜 느껴집니다.
실제로 48시간 이상 대변을 보지 못했음에도 간호사 선생님의 손에서는 한시간 정도만에 쌓이고 쌓인 것들을 모두 배출하는 편입니다.
그런데 그것도 하루 이틀이지, 가면 갈수록 태양이의 복부는 갈수록 딱딱해집니다.
제가 하루 종일 붙들고 있더라도, 또 그러고서 병원에 데리고 가더라도 변을 보게 하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일은 포기한 것이나 다름 없고, 기본적인 살림 정도만을 하기에도 벅찬 24시간과 피로에 지친 몸이 됩니다.
심지어 군에서 다치고 수술한 뒤로 면역이 뒤집힌 탓인지 없던 고양이 알레르기가 생긴지 오래라,
아직 아기인 태양이에게서는 알레르기가 생기지는 않지만 병원에 다녀온 날이면 부교감신경이 활성화되는 새벽에는 꼭 비염 때문에 코가 막히고 재채기가 나와 안 그래도 지치고 힘든 몸을 더 고통스럽게 만듭니다.
그러다가 천식 증상까지 와서 숨을 못 쉬는 상황이 오기도 했지요.
물론 태양이를 구조하고부터 이런 사태를 미리 예측해두었기에 천식 증상에 사용할 약들을 구비해두어 심각한 상황으로는 치닫지 않았습니다만, 아무래도 병원에 또 가는 것이 부담스럽게 됩니다.
간호사 선생님들께서도 이제는 좀 지쳐보이는 표정이 역력합니다.
그렇게 힘겹게 3주차와 4주차를 보내면서 얼른 이유식으로 넘어갔으면 좋겠다, 아예 분유를 떼고 사료와 생식을 했으면 좋겠다는 마음만 간절합니다.
3주차가 되면서 고양이 흉내도 곧잘 냅니다.
만들어준 집과, 최초 동물병원에서 받았던 신발상자가 아니면 울며 벌벌벌 떨며 그 자리에 주저앉아 꼼짝도 못하더니
이제는 잘도 걸어다니며 여기저기 탐험을 해봅니다.
겁이 좀 남아있긴 하지만, 대부분 호기심으로 치환된 것 같습니다.
그리고 역시 마지막까지 변비로 고생한 생후 27일째...
불린 사료를 두알 준비해서 분유와 함께 먹여봅니다.
기대와는 달리, 사료에는 전혀 흥미를 보이지 않습니다.
할 수 없이 입을 벌리고 밀어넣습니다.
한참을 불렸기 때문에 사르르 녹아버릴 정도이기도 하고, 잘게 찢어두었기 때문에 문제는 없겠지요.
다행스럽게 억지로 넣어준 것을 도로 뱉어버리지는 않고, 삼키기는 삼킨 것 같습니다.
28일째는 생후 4주용 통조림을 까서 주어봅니다.
반응이 있습니다.
감격스러운 맛이라는 양, 오오옹로오옳아어렁ㅇ 울어대며 먹습니다.
스푼으로 크게 떠서 준 것을 금새 다 비우고는, 분유도 꿀꺽꿀꺽 마셔댑니다.
역시 잘 먹을 때가 가장 기쁘지만, 거기에다 이제는 좀 변비가 덜하겠지 하는 기대감과 성장에 대한 기쁨이 더해집니다.
이제 한시름 덜었다, 하는 생각으로 다음날을 맞았는데...
아직 변비로 인해 쌓인 것들이 장내에 남아있을 것임이 분명한데도 설사를 마구 쏟아냅니다.
아기 고양이는 설사로 인해 탈수 증상이 심각해질 수 있으므로 좋은 일은 아니지요
아들...변비랑 설사, 그 중간은 없는거냐...
4주 이상의 고양이들을 막 구조했을 때에 일어나는 설사 증상에 대해서는 나름대로 겪어보았음에도 불구하고 당황해서 패닉에 빠지고 맙니다.
아무래도 진심으로 내 아기라고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에 그만큼 동요가 일어나는 것이겠지요
병원으로 전화를 걸어 그동안 돌봐주었던 간호사 선생님과 통화를 해봅니다.
갑자기 고단백 식사를 하게 되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당장은 응급상황이 아니라는 말을 듣고 조금은 안심합니다.
당연한거지만, 통조림을 주지 않으면 설사는 일어나지 않겠지요
아기는 괴로워하지만,
그래도 설사라서 그런지 그동안에 비해 배변마사지와 배변유도를 통해 대변처리는 매우 용이한 편입니다.
거의 하루종일 아랫배를 마사지해주어 무른 변과 물똥을 모두 제거해줍니다.
문제는 한번 통조림에 맛들린 탓인지, 어제는 통조림과 함께 분유도 잘 마셔놓고는 이제는 분유를 별로 마실 생각이 없군요
설사로 인해 입맛이 떨어진 것일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사료를 양껏 불려서 주어봅니다.
역시 사료에는 그다지 흥미를 느끼지 않습니다.
그러면 결국 통조림인데...
통조림을 반스푼 정도 떠서, 불린 사료와 열심히 섞습니다.
스스로는 전혀 입에도 대지 않던 사료인데, 통조림 냄새가 나니까 우와아앙 달려들더니 오어러오오옹로호옳 울며 맛있게도 먹어댑니다.
설사 걱정이 남아있기는 하지만, 곡물 배합의 사료가 대부분의 양을 차지하니 아주 큰 문제는 없겠지요.
혹시나의 일을 대비해서 보리차도 끓여둡니다.
이제 아기는 체온 조절 능력을 어느 정도 갖추었기 때문에,
전기장판을 깔아둔 조그만 집은 치워버리고 침대 아래에 박스를 오려 조립해 우리를 만들어둡니다.
이제 슬슬 모래에 싸는 훈련도 해야하고, 사료를 먹기 시작하면 아빠가 새벽에 몇번이고 잠을 깨서 분유를 먹여줄 필요가 없어지니까요. 그래도 물론 새벽 5시까지는 잠을 자지 못합니다, 지금 이 시점까지도...
전기장판을 감쌀 타월이 배변시트를 넘쳐 적셔서 남은 것이 더 없기 때문에 전기장판을 우리에 넣어줄 수가 없어 조금은 걱정이지만, 이제 아기는 성묘처럼 온몸이 따끈따끈합니다.
언제 어디라도 곧바로 잠이 들 수 있을 것처럼, 머리끝에서 발끝까지 기분 좋은 열기를 뿜고 있네요.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보니,
알아서 챙겨 먹으라고 두었던 사료에는 따로 입을 대지 않은 것 같습니다.
지금도 사실, 우리 안에 먹을 것이 충분하지만 아빠가 밥그릇 근처에 모셔다주지 않으면 굳이 찾아서 밥을 미리 먹어두지 않는 편입니다.
오줌도 모래가 아니라 시트에다 보아서 누렇네요.
역시 부모형제가 가르쳐주지 않기 때문이 아닌가, 조금 서글퍼집니다.
그런데, 밥을 새로 만들어 챙겨먹인 뒤 얼마지 않아 아기가 모래 위에 올라간 것처럼 바스락바스락거리는 소리가 납니다.
아기에게 방해되지 않게 지켜보는 것이 들키지 않도록 몰래 숨어서 훔쳐봅니다.
모래 위에서 이리저리 자리를 잡아보더니, 끙끙거리는 작은 신음소리를 흘립니다.
고작 이틀 전까지는 변비로, 하루 전까지는 설사로 고생하던 녀석이 이제는 혼자서 큰 것을 봅니다.
그것도 큰 덩어리를 두개, 마무리로 작은 덩어리를 서너개 모두 풀어낸 뒤 화장실 볼 일을 마칩니다.
일을 본 뒤 모래로 덮는 것을 가르쳐주었지만 아직 어설프게 처리하긴 했네요.
그런데 그게 대수겠습니까...
우리 아기가 이제 화장실을 알아서 가렸다고 동네방네 떠들고 다니고 싶을 만큼 기쁨이 차오릅니다.
아기의 성장이 무한한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쓰레기를 버리고 오는 길에 태양이의 어미와 형제일지도 모르는 녀석들을 마주칩니다.
이전에 태양이가 갇혀있던 차의 차주분이 지목했던 것과는 다른 고양이로, 아직 1년도 채 안되어보이는 젊고 예쁜 치즈태비였습니다.
아파트 단지 내에서 한두번 마주친 적은 있지만 태양이의 엄마일거라 전혀 상상도 못했었지요
녀석을 주변으로, 통통하게 자란 새끼 고양이 몇마리가 노닐고 있습니다.
태양이보다는 덩치가 좀 더 좋군요.
태양이는 변비 때문에 먹는 양이 아주 충분치는 못해 덩치가 좀 작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만, 만약 저 녀석들이 태양이의 친부모형제라면 아직 나이도 어린 것이 대단한 모성애로 잘 길러낸 것이겠지요
생김새도 거의 비슷하고, 새끼들의 나이도 태양이와 비슷할테니 태양이가 다른 곳에서 차를 타고 옮겨진 것이 아니라 이 아파트 단지 내에서 태어난 거라면 친부모형제일 가능성이 거의 확실할 테지요
그동안 피로에 절어서 나이 먹은 치즈색 고양이가 눈에 띄면 니가 아기를 버려서 내가 이 고생을 하잖아! 라고 욕도 퍼부어 주었지만, 그 녀석은 아마도 무고한가 봅니다.
이전에 차주분이 주차 차량을 다른 위치로 다시 옮겨서 주차했을 뿐이라는 이야기를 불분명하게 했기 때문에 줄곧 의아하게 생각했었지만, 정말 그랬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장마 때문에 비가 오기 시작한 시점부터, 태양이를 미리 차 안으로 이소시켜두었다가, 혹은 태양이를 마지막으로 옮기려고 하던 찰나에 차량이 다른 위치로 옮겨 세워지면서 의심스럽게 여겨 버렸다거나, 혹은 그다지 건강치 못하다고 여겨 버렸거나, 하는 것이겠지요
이미 무엇이든 간에 확신할 수 있는 바는 없지만, 그런 부분들을 한번씩 생각하고는 합니다.
계속해서 느껴오고 있었던 바지만,
아직 어린 엄마 고양이가 열심히 길러낸 새끼들과 함께 한밤의 화단을 거닐고 있는 모습이 너무도 아름답고 성스럽게 보였던 까닭에,
분유를 먹이느라 변비가 오고, 변비 때문에 아기가 괴로워할 수밖에 없는 상태와 처치를 하게 되고...
그러면서 무엇 하나 자연스러운 고양이 부모라면 당연하게 줄 수 있는 정서적 안정과 고양이로서의 교육 등을 주지 못하고
착하고 얌전한 아기의 성격만 버리고...
아무리 열심히 해왔다고 한들, 한번씩은 실패하면서 익숙해진 것일 뿐이기에 아기에게 불필요한 고통을 얼마만큼이나 주어왔을까, 나는 참 완벽하지도 못할 뿐더러 나쁜 아빠였구나, 하는 생각에 아기에게 미안한 것이 거듭 더해집니다.
앞으로도 그런 것들이 계속되겠죠
사진은 아빠와 태양이 사이의 가장 평온하고 행복한 시간입니다.
분유는 대충 먹고 고개를 치워버리지만, 아빠 손가락을 찾아서 물고 쪽쪽거리며 빨다가 태양이도 잠들고 아빠도 꾸벅꾸벅 졸고는 합니다.
분유를 뗀 지금도 쭙쭙이는 계속하고 있지요.
앞으로도 대략 23일에서 24일, 첫 예방접종을 하기까지 치명적인 질병의 위협이 남아있습니다.
안심하고 마음 놓는 일 없이, 계속해서 아기를 돌보아야겠지요
어쩌면 예방접종을 맞히는 순간이 되면 아빠는 펑펑 울고 말지도 모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