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옥의 종소리 하면 떠오르는 선수가 있죠?
바로 트래버 호프먼입니다. 전설적인 마무리죠.
일단 통산 성적부터.
호프먼은 신장이 하나 없는 선수로도 유명합니다.
그럼에도 야구를 하는 데는 문제가 없었습니다.
대신 격한 미식축구를 하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몸싸움이 없는 야구가 맞았다고 볼 수 있겠네요.
그리고 호프먼이 프로 입단은 유격수로 입단했습니다. 하지만 성적이 영 별로다 보니 투수로 전향을 했고, 신장이 없는 문제 때문에 드래프트됐던 신시내티에서 방출되어 플로리다(현재 마이애미)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결국 메이저 데뷔는 플로리다에서 했죠.
플로리다에서 나름 강속구를 구사하는 유망주로 알려져 있었는데, 팀에 또 다른 마무리 유망주 랍 넨의 존재와 플로리다의 팀 사정으로 인해 게리 쉐필드와 트레이드가 되며 샌디에이고로 향합니다. (쉐필드는 훗날 박찬호 선수의 도우미로 유명했죠. 물론 약물로 커리어가 먹칠됐지만.)
아무튼 호프먼이 트레이드 되면서 샌디에이고에서 잘 정착하고 있었는데, 또 한 번 위기가 찾아옵니다. 바로 어깨부상이었죠. 이 때문에 150km 후반까지 던지던 강속구를 잃게 됐는데, 이 시기에 바로 호프먼은 훗날 자신을 대표하는 구종인 팜볼성 체인지업을 익히게 됩니다. 또한 구속을 잃은 대신, 구위를 높이는 선택을 하게 되죠.
이렇게 한 번 변화를 겪은 후 호프먼은 샌디에이고의 붙박이 마무리로 자리매김합니다. 1996년에 42세이브를 기록한 동시에 내셔널리그 사이영상 투표 5위까지 올라섰고, 1998년에는 생애 첫 올스타에 뽑힌데다 53세이브로 내셔널리그 최다 세이브를 기록합니다. 사이영상 투표도 무려 2위에 올랐죠.
호프먼은 이후에도 꾸준히 샌디에이고의 마무리로서 활약합니다. 2003년 부상이 한 번 있었는데, 그 때를 제외하면 매 시즌 30세이브 이상을 기록했고, 50게임 전후로 늘 등판했었습니다. 또한, MLB 최초로 통산 600세이브를 올린 선수이기도 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샌디에이고의 구단 사정 때문에 2008년에 방출이 되었습니다. 그것도 문자메시지 통보 하나로 방출되었다고 하네요. 그 때문에 2009년과 2010년에는 밀워키에서 잠시 활약하기도 했습니다. 2011년 1월에 은퇴 선언 후, 샌디에이고는 바로 그의 등번호 51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하기도 했습니다.
이후 명예의 전당에도 도전을 했는데, 첫 턴에는 되지 못했지만 3년째 되던 2018년에 명예의 전당에 올랐습니다. 지금 내셔널리그 마무리투수 상이 ‘트래버 호프먼’ 상이라 불릴 정도로 호프먼에 대한 업적은 지금도 많이 인정받고 있죠.
앞서 말씀드린 대로 호프먼 하면 80마일 대의 포심과 팜볼성 체인지업으로 유명합니다. 간혹 슬라이더도 쓰긴 했습니다만, 비중이 높진 않았습니다. 호프먼은 공이 빠르진 않은데, 구위가 꽤 좋은 투수로 알려져 있습니다. 특히 상승폭이 크다고 알려져 있는데, 2007년 호프먼의 수직 무브먼트가 14.5(약 36cm)인치로 2017년 클레이튼 커쇼보다도 6cm 이상 높았다고 하네요. 메이저리그 평균이 25cm 정도라는 점을 감안하면 꽤나 상승폭이 큽니다. 여기에 체인지업 낙차도 엄청나고 속도도 느려서 배트에 맞추기 매우 힘든 선수 중 하나였죠.
호프먼의 직구와 체인지업을 움짤로 보시겠습니다.
그리고 호프먼의 특이한 점 중 하나가 있는데, 마무리 투수들 가운데서 성격이 매우 온순했습니다. 인종차별 발언을 했던 존 라커나, 똘끼로 유명한 조나단 파펠본, 본인만의 특이한 자세가 있는 크레익 킴브럴 등을 생각하면 더 그렇습니다. 매번 샌디에이고에 새로운 선수가 오면 환영회를 주최했던 선수라고 하고, 박찬호 선수와도 친분이 있어 2006년 WBC 직전에 조언을 해주기도 했답니다.
(아마 박찬호 선수가 호프먼에 대해 말하면 3시간 이상 말할 것 같은 예감이…)
아무튼 이번에는 마리아노 리베라와 쌍벽을 이뤘던 내셔널리그 전설의 마무리, ‘지옥의 종소리’로도 잘 알려진 트래버 호프먼에 대해 알아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