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민호(39·삼성)는 기자단 투표와 팬 투표 합산으로 선정되는 KBO리그 월간 최우수선수(MVP)에 오르며 식지 않은 기량을 과시했다. 강민호가 월간 MVP에 오른 건 이번이 처음이다. 시대를 풍미한 베테랑이라도 월간 MVP 한 번을 받는 게 이렇게 어렵다는 것을 실감할 수 있다.
물이 들어온 김에 노를 힘차게 저은 결과였다. 시즌 초반까지만 해도 공이 잘 뜨지 않아 고민이 있었던 강민호는 7월 들어 공이 뜨기 시작하며 장타가 대폭발했다. 타구 속도는 어느 정도 유지하고 있었으니 공이 뜨는 건 장타의 예고였다. 강민호는 7월 20경기에서 타율 0.408, 11홈런, 26타점, 출루율 0.444, 장타율 0.868, OPS(출루율+장타율) 1.312라는 대활약으로 삼성의 공·수를 이끌었다.
사실 강민호는 월간 MVP를 받을지 몰랐다고 했다. 별 기대도 없었다. 발표 시점에는 잠을 자고 있었다. 7월 MVP는 9일 발표됐고, 삼성은 9일 새벽 광주에 도착해 선수들이 오전에는 휴식을 취하고 있던 시점이었다. 강민호도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일어나보니 아내에게 메시지가 와 있었다. 월간 MVP 수상자로 선정됐다는 소식이었다.
강민호의 목표 중 하나가 뒤늦게 이뤄지는 순간이었다. 그러자마자 강민호의 머릿속에는 하나의 단어만 맴돌았다. 이제 하나만 남았다고 생각했다. 그 단어는 '한국시리즈'였다. 강민호는 "자고 일어났는데 와이프로부터 월간 MVP를 축하한다는 메시지가 와 있더라"면서 "그래서 (와이프한테) '이제 목표 하나 남았다. 이제 한국시리즈만 남았다. 월간도 받아봤으니 이제 한국시리즈만 한 번 가보면 되겠다. 여한이 없을 것 같다'고 이야기했다"고 웃어보였다.
훗날 KBO 명예의 전당이 만들어진다면 강민호는 의심의 여지없이 입성이 가능한 경력을 가지고 있다. 2004년 1군에 데뷔해 올해까지 KBO리그 통산 2341경기에 뛰었다. 그것도 경력 대부분이 포수 출전이었다. 이미 2000안타(2086안타)-300홈런(335홈런)-1000타점(1229타점)을 모두 달성한 몇 안 되는 선수이기도 하다. 포수로 이런 누적 성적을 남긴 선수는 손에 꼽는다.
그런데 정작 한국시리즈 우승은커녕 나간 적이 한 번도 없는 비운의 선수이기도 하다. KBO리그 역사상 강민호처럼 정규시즌에서 2341경기에 나갔는데 한국시리즈 냄새도 못 맡은 선수는 없다. 2004년 롯데에서 데뷔한 강민호는 2017년 롯데를 떠날 때까지 몇 차례 포스트시즌에 나간 경험은 있지만 한국시리즈까지 올라가지는 못했다. 삼성으로 이적한 뒤에도 역시 한국시리즈는 못 갔다. 2021년이 천추의 한이다. 당시 정규시즌 우승을 놓고 kt와 벌인 타이브레이커에서 졌고, 플레이오프에서는 두산에 업셋을 허용하며 절호의 기회를 놓쳤다.
어렸을 때는 언젠가는 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고, 이제 경력의 마지막을 향해 가는 시점에서 한국시리즈는 더 간절해졌다. 작년에는 팀이 하위권으로 처지며 이 목표가 일찌감치 접혔다. 하지만 올해는 해볼 만한 위치다. 삼성은 12일 현재 58승51패2무(.532)를 기록하며 리그 3위를 달리고 있다. 선두 KIA와 경기차는 5.5경기로 다소 벌어져 있지만 2위 LG와 경기차는 1.5경기다. 2위까지만 올라가도 한국시리즈 진출을 위한 유리한 고지에 올라설 수 있다.
그런 강민호는 팀의 한국시리즈 진출을 위해 솔선수범하고 있다. 시즌 108경기에서 타율 0.306, 16홈런, 64타점, OPS 0.876으로 활약 중이고 여전히 포수 마스크를 쓴다. 박진만 삼성 감독은 "여름에는 네가 다 책임져야 한다"며 초반에는 강민호의 출전 시간을 조정했는데, 박 감독의 주문대로 강민호가 공·수 모두에서 여름을 책임지고 있는 셈이다.
11일 광주 KIA전에서도 최근의 기세를 이어 가는 홈런을 터뜨리며 자신의 몫을 했다. 이날 삼성은 1회부터 3점을 뺏기며 어려운 경기를 했다. 하지만 2회 강민호가 상대 선발 에릭 라우어의 커터를 받아쳐 좌월 솔로홈런을 날리며 분위기를 바꿀 수 있었다. 한가운데 몰린 것은 아니고 높은 쪽에서 몸쪽으로 꺾여 들어오는 공이었다. 실투까지는 아니었다. 하지만 최근 감이 좋은 강민호가 이를 정확하게 끄집어내 홈런으로 연결했다. 그렇게 삼성은 분위기를 반전시킨 끝에 연장에 가 승리를 거둘 수 있었다. 이 정도 레전드가 '묻어가는' 한국시리즈에 만족할 리는 없다. 강민호가 마지막 목표를 향해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