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담. 1부

건데기만세 작성일 11.10.25 16:1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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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부 설레는 연애의 시작 -

 

2002년 6월 29일 이탈리아전 후반 43분, 

설기현 선수의 발끝에서 극적인 동점골이 터졌고, 

내 가슴에 운명적인 하트 한 개도 같이 터졌다. 

광화문에 사람 많아서 응원을 못갔다며, 

우리가 진을 치고 앉은 작은 호프집으로 발길을 돌린 그녀를 처음 보았을 때, 

천사는 이렇게 생긴 사람이라는 것을 알았던 것 같다. 

얼굴이 많이 이쁘지도 않은데, 

환상적인 라인을 가지고 있는 것도 아닌데, 

그냥 남들보다 키 좀 크고 좀 말랐구나라고 생각하면서도, 

그녀를 흘깃거리는 시선과 

쉴새 없이 물 심부름을 해대는 나를 보면서, 

여태 만나온 여자와는 무엇인가 틀리며, 

분명, 나는 이 여자한테 빠져서 평생의 승부를 걸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다.

 

월드컵 4강전, 

나만큼 4강 이상의 성적을 바란 사람이 있었을까. 

그녀를 한번이라도 더 보기위해선 

이유 같은 이유가 있어야 했고, 

세계 축구역사에서 한국 축구는 새로운 역사를 만들고 있으며, 

그 역사에 우리가 동참하지 않으면, 

그것은 매국노이기 때문에 우리는 반드시 “같이” 응원을 해야 한다고 

침을 튀겨가며 역설을 해댔고,

그녀는 그 같지도 않은 핑계를 웃음으로 받아들이면서 

용인에서 올림픽공원까지  

손수 나와 같이 응원하는 친구들을 위해 유부초밥을 싸들고 찾아와줬다.

 

우리가 만날 때는 늘 친구들과 함께였다. 

응원은 함께 해야 제맛이니까. 

처음에는 임금을 먼 발치에서 바라보는 애타는 궁녀의 심정이였지만, 

두어번 보다 보니 슬슬 욕심이 났다.

 

단둘이! 

단둘이서 차도, 술도 한잔 먹고 싶었고, 

흔히들 말하는 “데이트”라는 것에 욕심이 생겼다. 

하지만, 

전역한지 2개월 밖에 되지 않았던지라, 

아직은 개구리복 입혀놓으면 군바리였고, 

남들보다 세련되지도, 매력도, 돈도, 외모도 뛰어나지 않았던 

자신에게 자신감이 뚝뚝 떨어진 패배자의 모습이 짙었던 것 같다. 

이따금 그녀가 메신져에 들어오면, 

친구에게 물어물어 취미가 음악듣기인 그녀에게 

음악은 소음이라고 생각하는 놈이  

잘 알지도 못하는 백스트리트 보이즈의 노래 제목만 외워서 

그 노래 좋아한다고 허풍만 치고 있었고, 

그래도 내 말에 응답해주는 그녀가

행여나 군바리 같은놈 귀찮아 하기라도 하면,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징그러운 놈으로 낙인 찍힐까봐 

상대는 인식도 안하는 밀고 당기기를 얼마나 연구했는지 모른다. 

그렇게 월드컵이 끝나고, 

더 이상 만날 구색이 없어져서 우울해 할 무렵 쯤 

“유람선 타러 갈래?” 

라는 천사의 제안에 뇌속 엔돌핀은 비명을 지르며 입꼬리를 치켜 올렸지만, 

놀람과 어설픈 밀당의 공식이 엉켜서 

굉장히 시덥잖은 대답을 해버렸고, 

전화기 너머로 들리는 그녀의 실망하는 목소리를 듣는 순간 

나도 모르게 

“영광입니다” 

라고 말해버려 둘다 폭소했었다. 

그리고 그렇게 꿈에 그리던 유람선 데이트는, 

여왕을 모시는 몸종의 몸놀림으로 

바람이 많이 불면 셔츠를 벗어서 무릎에 덮어주고, 

혹시나 화장실이 가고 싶을까  

화장실 지날 때마다 내가 먼저 화장실 뛰어 들어갔고, 

그사이 유람선 티켓 먼저 끊어서 내미는 그녀를 보고선 

‘그래 너는 정말 나에게 준 조상의 선물이다’ 

라고 감격에 감격을 했었다.

2주일 정도 짧게 통화도 하고, 

같이 밥도 먹고 시간을 나누는 사이, 

그녀는 나에게 이미 수류탄 파편처럼 깊숙이 박혀버렸고, 

밤에 잠도 못잘 정도로 두근거리게 만들었다. 

그리고, 굉장히 성급한 결정을 했다.

 

“너를 정말 좋아하는 것 같다. 나하고 사귀자” 

한달이 되기전 그녀의 집앞 커피숖에서 고백했다. 

나에게는 이미 “전부”지만, 

그녀는 나를 “호감”이라는 감정으로 지켜보는 상태였기 때문에, 

“너는 나에 대해 얼마나 안다고 벌써 그런말을 하니?” 

라는 대답을 들었고, 

예상했었기 때문에 기다릴께 라고 다시 답변 했다.

 

하루종일 전화기만 봤다. 

호감을 가지고 만나는 대기 연인사이. 

회사로 따지면 인턴이다. 

잘못하면 가차 없이 내팽겨질지도 모른다. 

하지만 잘나지 못했던 나에게 늘 연애의 성공을 안겨준 

근거없는 자신감! 

그것이 나의 최대 무기였다. 

그래 적어도 나는 그녀보다 키는 크지 않은가...

 

 

 

- 그녀를 두 번째 만나던 날 -

 

이제 일분이 지났구나.

점점 더 초조해 지고 얼굴이 달아올라서

다가오는 너의 향기에 식히려고

오는 방향으로 얼굴을 돌려본다.

 

이제 이분이 지났구나.

심장은 일정 맥박수를 넘어 서기 시작하고

몸안의 혈액들은 비명을 지르며 얼굴로 모여든다

 

이제 삼분이 지났구나.

떨림증 증상이 보이고 넘치는 감정탓에

신문 하나 사서 첫 글자에 눈을 돌리지만

한글 읽는 법을 까먹고 만다.

이 세상 글씨는 모두 너의 이름 석자이다.

 

이제 사분이 지났구나.

너가 나타나길 빈다.

손을 흔들며 나타나길 또 빈다.

웃음으로 나타나길 빌고 또 빈다.

내 눈을 보며 나타나길 빌고 또 빌고 또 빌어본다.

 

이제 오분이 지났구나.

혹시 늦는 거니?

여기서 초조함을 견디지 못해화병 걸려 죽으면 넌 살인죄야.

 

이제 육분이 지났구나.

기다림이 행복해 진다.

어쩌면 너가 안와도 행복해 지리라 본다.

너를 위해 무엇인가 하고 있는 이시간도

나에게는 행복으로 다가온다.

 

이제 칠분이 지났구나.

세상의 일분이 이렇게 길면

나는 한시간을 살아도 늙어 죽을 것이다.

 

이제 팔분이 지났구나.

앉아 있을 수 없다.

 

이제 구분이 지났구나.

모든 감정을 정리하고 목소리를 가다듬고

나의 마음을 가장 깊게 전할 수 있는 인사를 생각한다.

 

.....

 

너... 여전히 향기로워.너... 저기서 와도 나는 너의 향기를 보고 아찔하게 멀미가 나기 시작한다.다음 부터 너를 만나기 전에는 키미테를 붙히고 오리라.

 

200207080427

 

내 미니홈피에 쓴 시다. 

남들 보기에는 시 같지도 않은 시지만, 

지금 봐도 당시 내 심정이 너무 잘 드러나 있어서  

아직도 나는 이시를 보면 손발이 오글어 들면서도 웃음이 나온다.

 

당시 그녀는 KMI, 한국의학연구소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었다. 

새벽 여섯시에 출근해서 오후 한시면 끝났었는데, 

나는 전역 후 시간만 충분한 휴학생 이였던지라, 

내가 그녀에게 줄 수 있는 것은 나의 하찮은 시간 뿐이였다. 

무척 더운 8월, 광화문까지 2주를 출근했다. 

그녀가 끝나는 시간이면  

물한통 사들고 어김없이 기다려 주는 사람이 되고 싶었다. 

매일 그러다가 내가 하루만이라도 안나오면, 

내 빈자리를 느낄 수있게, 

귀찮게는 하지말되, 

단 10분이라도 그녀의 생활 속에 일부가 되어보자라고  

아주 기도 안차는 작전을 짰다. 

그리고 약 2주정도 그렇게 기다리던 중에, 

느닷없이 그녀의 오케이 싸인이 떨어졌다. 

아주 느닷없이 나도 니가 좋다고 했다. 

정말 그말 들었을 때는 덥썩 안고 싶다는 생각이 굴뚝 같았지만, 

그녀가 놀랄까봐 그 자리에서 괴성만 질렀다. 

“앗~~~싸~~~아”

 

그녀에게 약 15년간의 짝사랑이자 첫사랑 남자가 있었다. 

군대에 가 있다고 했는데, 

사귄것도 아니고 아닌것도 아니라고 했다. 

손잡고 집에 몇 번 바래다 주다가 갑자기 군대를 가버렸고, 

군대에서 온 편지에 그냥 사랑한다라고만 적혀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처음 고백했을 때 그 남자 때문에 고민을 많이 했었다고 했다.

 

그리고 우리의 연애가 시작되고 내가  

광화문 길 복판에서 괴성을 지른 그날 집에 바래다 줄 때  

그 남자에게 편지가 또 와있었다. 

그녀는 급 어두워진 나의 표정을 봤고, 

내 머릿속은 그냥 하얘졌다. 

그 군바리 남자의 심정도 알겠고, 

그녀의 복잡한 심정도 알기 때문이였다. 

그런 표정의 나를 보면서 그녀는 내 손을 잡고 얘기했다. 

“내가 지금 살짝 고민이 되는데...” 

두시간 전에 내가 좋다고 했잖아!!!!!! 

“......응?” 

“어떻게 얘기해주는게 이 남자가 적게 상처 받을까?”

 

기우였을 것이다.  

나는 못난놈이지만 자신감을 가지고 살아왔다. 

여자 따위에게 휘둘릴 그런 사람이 분명 아닌데, 

이 여자는 너무 쉽게 나를 다루는 것 같았다. 

선수 같았다.

 

그리고 이 생각을 몇주 뒤 이야기 했을 때 

그녀와 처음 다투게 되었다. 

나는 그런 사람 아니고, 

나를 그렇게 못 믿는 거냐고. 

나는 누구의 마음을 조작질 해댈 만큼 연애도 못해본 사람이라고. 

굉장히 큰 상처를 받은 것 같았다. 

그리고 나는 너무 쉽게 내 사랑이 끝난다고만 생각했다. 

조바심이 났지만, 

어쩌면 그녀에게 재촉만 해댄게 아닐까 고민했었다. 

몇일이나 고민에 고민을 했지만, 

결론은 내 옆에 그녀가 있어야 된다는 결론만 났다. 

그리고 연락없이 이틀정도 지났을 때 

그녀가 만나자고 했다. 

난생처음 여자한테 빌 각오로 나갔다. 

남자로 태어나 여자한테 빌 줄이야.. 

울 아버지 아시면 머리채를 잡고 돌릴 일이지만, 

나는 너무 간곡한 마음이였다.

그런데 그녀에게 의외의 말이 돌아왔다. 

“나 A형이야. A형은 소심해서 무슨 일이든 생각을 많이 하게 되지만, 한 번 결정한 일에는 

누가 뭐래도 절대 자신을 믿는 고집스러운 면이 있어. 내 마음은 변하지 않을꺼야”

 

그날 저녁 백부님 제사에서 얼마나 정성스럽게 절을 했는지 모른다. 

종교가 있었다면 그 절대자에게 감사의 말씀을 전했겠지만, 

나는 특정 종교가 없기 때문에 그냥 조상님께 계속 감사하다고 되풀이 했다.


이야기가 길어져서 여기까지 씁니다. 조만간 2부 올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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