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누라 이야기.

건데기만세 작성일 12.04.02 15:35: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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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애시절 만리장성을 쌓자고 구슬리고 타이르고 사탕발림을 1년 가까이 하다가 결국 결전을 치른날, 아무말 없이 눈물을 뚝뚝 흘려버려서 안절부절 못하게 만들더니 갑자기 나를 휙 올려다보며 “별거 아니네”

 

결혼 전 네이트온 대화 중에 아버지가 전세금을 지원해 주신다고 하셔서 기쁜 마음에 네이트온으로 지원 금액을 읊었더니 한참동안 말을 잃고 묵묵부답, 한참 후 그 금액이 적어서 걱정된다는 가시같은 소리를 지껄여 주시고, 너는 도대체 뭘 얼마나 해올꺼냐고 욱 하려다 참고 홧김에 컴퓨터 꺼버렸더니, 다음날 전화해서 기어가는 목소리로...“내가 잘못했어요... ”

 

7년을 연애하고 워낙 가족 같아서 생략하려던 프로포즈, 하지만 무언의 압박과 은근히 바라는 그 말투에 위축되서 할까 말까 고민하는데, 내 마음을 읽었는지 울먹이며 “프로포즈 안하면 너랑 결혼 안할꺼야”

 

결국 친구들과 친구 와이프의 도움을 받아 프로포즈 하는 날, 간만에 펜션에 놀러가서 친구들한테 언질도 없이 ‘나 오늘 프로포즈 할래’라고 했다가 친구들한테 상욕을 바가지로 쳐 먹고 그래도 친구라고 도와주겠다면서 마누라 바로 앞에서 내 카드 빌려가는데도 눈치 못채고.. 갑자기 친구들 반이 쫙 갈라져서 한팀은 먼저 들어간다면서 펜션도 아닌 문구점으로 들어가는데도 눈치 못채고... 친구 와이프가 이건 곰이 아닌 이상 다 알겠다 라고 하는데, 결국 프로포즈 받으면서 “정말 어떻게 이렇게 깜쪽 같이 준비했어?”

 

내숭의 극치를 보여야 하는 결혼식날, 여타 신부들은 행여나 화장이 번질까 부모님께 인사할 때 울지도 못하고 꾹 참는데도 마누라님께서는 부모님께 인사할 때 인사만 꾸벅, 친구들이 축가 불러니주니까 그제서야 눈물을 뚝뚝, 결혼식 내내 여기저기 브이질 해대고 입을 쩍쩍 벌리고 박장대소를 하며 사진 찍어대서 고지식한 우리 친척들 넉다운.

 

신혼여행지에서 조그만 소라껍데기 주워 바늘로 구멍 뚫고 실꿰어 목에 걸어주니 또 눈물 글썽거리고, 결혼한지 3년이 지난 지금 그 실이 누렇게 변했는데도 집에서 가장 잘보이는 곳에 걸어두고 지나갈 때마다 흐뭇하게 바라보며 “귀여븐 것 ㅋㅋ”

 

마누라가 해외를 자주 나가주기 때문에 남편 입장에서는 참 좋지만 하루에 한번씩은 전화로 점호를 받아야 하는데, 일하다가 정신없어 건성으로 받으면 실연당한 여자마냥 시무룩해지고 한국 돌아와서 등돌리고 자며 “넌 변했어”

 

지는 한달에 열흘이 넘게 남편 혼자 두고 나가면서 정작 자기가 집에 있을 때 옆에 없으면 남편 전쟁이라도 내보낸 아낙처럼 풀썩 주저 앉고 하루 종일 풀 죽어서 티비만 돌리고 있다가, 전화러쉬. 그 압박에 못이겨 칼퇴근 해서 집에 가면 명탐정 코난 보면서 지 남편 왔는지도 모르고 인기척 내면 그제서야 고개 돌리면서“어? 왔어?”

 

결혼한지 3년이 되고 나갈 때 브라도 잘 안하면서 옷 갈아 입을 때는 등 돌리면서 “부끄러워서....”

 

싸우다가 언성이 높아지면 눈물을 글썽거리며 “너 무서워...”

 

지가 방구 껴놓고 나한테 왜 꼈냐고 막 성질내고, 자긴 아직도 방구 튼적 없다고 시치미 때면서 화장실에선 문 열고 “자기야 휴지좀~~~”

 

말싸움에서 한번도 이긴적 없으면서 자기가 불리하면 입 닫고 정말 자기가 잘못했나 곰곰이 생각하다 다음날 반성문 읽듯이 와서 “자기야 어제는.... 밥은 뭐먹지..?”

 

정말 사고 싶은 옷이 있다면서 몇날 몇일을 고민하더니 나한테 사도 되냐고 미안하듯 허락맡으려고 하면, 어차피 지가 돈 나보다 더 잘벌고 지가 가계부 관리 다 하면서 왜 물어보냐고 피씩 거리면 그제서야 “그치?”하며 광클.

 

백화점 가서 자기 옷은 한 벌도 안사면서, 지 남편 어디가서 못나 보이는거 싫다고 내 옷만 한푸데기 사서 집에 오면 며칠 뒤 자기 옷 별로 없다고 투덜투덜.. 그리고 백화점 다시 가면 또 내 옷만 사면서 이러길 무한반복.. 내 옷장은 풍족해지고...

 

애기 낳으면 애기한테 자기 사랑 다 뺏기는거 싫다면서도, 해외 나갈때마다 몰래 몰래 사서 모은 애기옷이 한 장농 가득..“그래도 우리 애기 낳으면 이쁘긴 하겠지?”

 

일년에 여덟 번 우리집 제사 힘들어서 나는 못한다고 떼쓰면서도 그날 휴가 내려고 선후배한테 아쉬운 소리하고, 외국에 나가 있어서 참석 못하는 날은 “어머니 혼자 준비하시는게 신경쓰여”라고 또 울먹울먹..

 

그래도 지보다 돈 못번다고 바가지 한번 안긁었고, 남의 풍족을 부러워 하되 나의 행복을 더 즐거워 할줄 알며, 밥은 굶어도 남편 사랑은 못굶고 사는 내 마누라와 며칠 뒤 만난지 10년이 되는군요. 어느 분처럼 전화번호라도 공개해서 축하 메시지를 받고 싶지만, 그러기엔 용기가 부족합니다. 아침밥도 못 얻어 먹고 내조도 잘 못받지만, 저도 해준게 없어서 욕심 나지 않고 오히려 많이 미안합니다. 그냥 마누라가 있어서 요즘 매우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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