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누라가 딱히 밥을 잘 챙겨준다던가,
나를 왕대접 해준 것도 아닌데,
결혼한지 3개월만에 75킬로이던 몸무계가 80을 넘어가고,
2년이 지나자 86킬로를 찍더군요.
남들한테 이 얘기를 했을 때
너는 키가 있으니까 그렇다라고 위로 아닌 위로를 했고,
저 또한 원래 살찌는 체질이 아니니까,
뭐 그냥 이러다가 말겠지 싶었네요.
사회생활하면서,
잦은 야근에 야참에 회식에 술자리까지...
불규칙한 식사시간,
염분이 한푸데기나 들어갔을 것 같은 회사 근처 백반집.
마누라가 없는 날에는 참치와 묵은지, 고추장 등을 함께 넣고
국물이 걸쭉해질 때까지 쫄여서 밥 비벼먹고,
저녁에 약간 출출하다 싶으면,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라면봉지 툴툴 털어 흡입하곤 했습니다.
과일 종류를 일부러 피하는 것은 아닌데,
내 배는 과일 따위의 속빈 섬유질을 거부했고,
배를 채운다라고 함은
단백질과 기름이 풍부한 어떤 음식으로 인해
배가 풍만해 짐과 동시에 그 어떤 무엇의 음식도 들어가지 않는 상태를
제 나름대로 정의하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회사에서 폭풍근무를 하던중
너무 결려오는 어깨 탓에 몇일을 끙끙 앓다가
한의원에 갔더니만,
혈압을 제보더군요...
소싯적,
그러니까 20대 중후반 정도의 제 혈압은 저혈압이였는데,
고혈압 초기라는 말도 안되는 헛소리를
간호사 언니께서 종알종알종알...
약을 먹으라고 종알종알종알 거리셨습니다.
장사속이라고 생각하면서도,
그 혈압수치가 140을 넘기는 것을 보니,
어렵게 결혼해서 이쁘다 이쁘다 보듬으며 사는 마누라 얼굴이 스치더군요.
고혈압은 가족력도 한몫 한다기에,
할배부터 아버지까지 되짚어 보니,
할배, 작은 할배 전부 혈압과 관련하여 돌아가셨더라구요.
헬스,
전에도 했습니다.
삼개월치 등록해놓고
일핑계로 세번 나가고 환불 받으려다 몸싸움까지 했었지요.
나에게 그 무거운 바벨로 단순 운동을 시키는 것은,
운동이 아니라 노동이였습니다.
어렸을 적엔 공 하나만 던져놔도 하루종일 뛰어놀고,
나름 운동에는 자신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되집어 보니 공 안만져 본지도 삼년이 넘어가더군요.
내가 몸짱이 된다면 마누라는 참 좋아하겠지요.
하지만,
결정적으로 나는 뼈도 얇고 피부도 하얀데다 털도 별로 없으며,
근력은 제로이기 때문에 노동같은 운동은
내 자신을 너무 잘 알기에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럼 무슨운동을 할 것인가.
조기축구회...
전반 뛰면 내장을 토할지도 모릅니다.
그렇다고 청소년처럼 농구공 들고 운동장 가서
"한겜 하실래요"
라고 발랄하게 말 붙혀 시합하기엔
1분도 안돼 운동장에 파전 부칠 것이 뻔하기 때문에
상대방에게 민폐라는 생각도 들었죠.
나름 요래조래 고민하던 중에
집 앞 상가에
"무에타이, 킥복싱 다이어트"
라는 간판을 발견했습니다.
우리동네에도 저런게 있었네...
라고 지나치려 했는데,
호기심이 나더군요.
남자라면,
말초신경을 자극하게 만드는 링안의 치열한 혈투.
태어나서 주먹질 한번 제대로 해본적 없습니다.
술먹고 꼬장 피우는 사람
일방적으로 귓방망이 한번 날려봤고,
군대에서 아랫놈 말 안듣기에 궁뎅이 한번 걷어차봤고,
기껏해야 초등학교 때 태권도장 열심히 다니며 딴 검은띠가 제 경력의 다였죠.
하지만 30살 중반에 다다르는 제 나이로
저 격한 운동을 하다가는 뼈가 분쇠될지도 모른다는 두려움도 있었고,
그 쪽의 연령대가 어느정도인지,
혹시 너무 힘들어서 일에 지장이 되진 않을지 "잡걱정"이 지나치는 찰나에,
가서 구경이라도 해보자라고 마음 먹었습니다.
머피의 법칙인가요..
마음먹고 오늘 퇴근 후에 꼭 가봐야지 했더니
회사에서 사고가 터져 이틀밤을 새고,
토요일날 피곤한 몸 끌고 갔더니 관장님 안나오신다고 하고,
월요일 회사 끝나고 가려했더니
오랫만에 집에 온 마누라께서 가운만 입고 돌아다니시네요;;;;
이런저런 핑계로
나의 운동계획이 사라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밤,
그날도 여느때 처럼 밥 먹고 쇼파에 마누라랑 같이 퍼져서
티비보며 낄낄 거리는데,
배에 뭔가 이상한 느낌이 들어 봤더니..
허허..
마누라가 내 뱃살 사이로 손가락을 숨기고서
"이햐! 너 이제 이런것도 되네"
하며 놀리더군요.
뱃살...
어느날 부턴가 배에 접히는 살의 숫자가 세겹이고,
그 두께가 보기 흉물스러울 정도가 되었으며,
이제는 마누라의 놀림감이 되어버린 내 뱃살.
나름 분주한 성격과
집안 내력상 뚱뚱보는 없다고 생각하며,
남들보다 밥을 두배 내지는 세배를 먹어도 늘 날씬했던 내 뱃살이
이제는 물렁물렁 지방질이 되어 버린거지요.
밤 열시 쯤이였던 것 같아요.
그자리에서 박차고 일어나서,
옷도 안갈아 입고
흐줄근한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집에서 나왔습니다.
그리고 집앞에 있는 체육관으로 걸었지요.
체육관 앞에 서서 안쪽을 훔쳐보니
뻥!뻥! 거리며 샌드백을 신나게 차는 청소년들과,
몸에 문신을 하신 얄팍한 몸의 어른,
통통한 아가씨가 땀을 바가지로 흘려가며 운동을 하고 있더군요.
그러던 중 젊어보이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는데,
저도 모르게 눈 인사를 했습니다.
"들어오세요"
반갑게 맞이하는 그 남자.
탄탄한 근육에 호남형 얼굴.
관장이였습니다.
얼떨결에 상담을 시작했습니다.
체중도 줄이고,
근육량도 좀 늘이고,
혈압도 좀 떨어뜨리고,
뭐 이러고 싶다고 설명했더니,
운동 한달만 하셔도 어느정도 효과는 나타날 것이라고 하더군요.
그리고 정말 얼떨결에 한달 등록을 했고,
어느새 제 손엔 까만 글러브가 쥐어져 있었습니다.
그날 부터 기본적인 동작을 익히기 시작했습니다.
처음이라고 스텝부터 가르쳐 주더군요.
전신거울 앞에서 하나 둘 하나 둘 하며 제자리 걸음을 하는데,
ㅎㅎㅎㅎㅎ
어찌나 어색하고 부끄럽던지..
거울에 비친 나는 말 그대로 동네 아저씨 였습니다.
나름 외모에 자신 있다고 생각했는데,
이건 뭐 영락없는 동네 아저씨 ㅋㅋㅋㅋㅋㅋ
33살에 결혼까지 했으니 동네 아저씨 맞지만,
그래도 망가진 몸매는 서글프기 까지 하더군요.
첫날이라 하루종일 제자리에서 스텝만 했는데도
땀은 정말 한 양동이 쏟아졌습니다.
스텝하며 뒤에 비치는 고수들...
저 멋진 발차기와 펀치들...
기껏해야 고등학생 또는 대학생 처럼 보이는 친구들의 저 힘있는 공격을 보라...
피가 끓어 오르지만 제가 할 수 있는건 그냥 걸음마 뿐인지라
언젠가를 기약하며 열심히 뒤뚱거렸습니다.
한달동안 정말 열심히 했습니다.
혹시 지겨워 할까봐
관장은 조금 진도를 빠르게 가르쳐 줬고,
저는 하루에 세시간 정도 열심히 배웠습니다.
하루에 세시간 정도 운동을 하고 집에 오면,
몸살이 날 것 같고,
밥도 잘 안넘어가고,
뜨거운 마누라고 뭐고
침대에 눕자마자 시체가 되어 잠들어버리죠.
킥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발이 터져서 피가 나고,
낮에 딱지가 살짝 앉았다가,
밤 되면 또 발로 차서 피터지고..
어느날 주먹이 잘 안쥐어지고 아파서
병원에 갔더니 뼈가 밀려서 기브스를 하라고 하는거,
별로 심각해 보이지도 않아서
그냥 소염제 처방 하나 받고
그날 저녁 또 킥 하고.. ㅋㅋㅋ
그렇게 두달정도 하다보니
링위에서 관장이 호구를 하고 올라 오랍니다.
옛 말로 하면 "상투를 튼다"라고 하지요.
링위에서 글러브를 끼고 서있는 내 모습.
가슴이 두근거리더군요.
관장이 처음이니까 살살하겠다고 살살 치는데,
그날 어찌나 맞았던지
하품이 계속 났습니다.
그리고 뭔가 뿌듯하기도 했지요.
그리고 새로운 목표가 생겼습니다.
언젠가는 관장이라는 저사람 안면을
단 한대라도 치고 말겠다...
2개월동안 몸무계는 거의 변동이 없었습니다.
약 1.5킬로 정도 빠진것 같은데,
무에타이 킥의 특성상 골반을 많이 사용하다보니,
골반에 윤곽이 살아나더군요.
어깨도 조금 생기는 것 같고요.
제가 웨이트는 안했기 때문에 근육은 기대도 안했는데,
그래도 조금씩 변하는 몸이 신기했습니다.
3개월이 지나니 몸이 갑작스럽게 변하기 시작했습니다.
위에서 말한것 처럼 웨이트도 안했는데,
일단 펀치를 많이 치다 보니 팔목부터 팔꿈치 까지의 근육들이 마구 갈라집니다.
터지라던 양복바지가 넉넉해져 벨트를 조이기 시작했고,
몸무게가 5키로가 갑자기 줄었습니다.
가장 중요한 것!!
밤에 런닝타임이 길어졌다는;;;;
스트레스를 풀고 체력이 올라가며 혈압이 낮아지니
밤이.. 허허허허허허허 말로 할 수도 없고..
이제 9개월 쯤 지났습니다.
아주 바쁠 때 빼고는 일주일에 네번은 운동을 갑니다.
얼마전에는 단증도 땄구요(무에타이도 단증이 있습니다)
몸무게는 86.5킬로그램에서 78.8킬로그램으로 줄었네요.
배는 아직 지방이 덕지덕지 붙었지만,
그 두께도 얇아지고 제법 세로로도 갈라집니다.
어깨는 커지고 발차기도 잘한다고 칭찬 받습니다.
폼은 우리체육관 최고 입니다.ㅎㅎ(물론 20킬로나 덜 나가는 고등학생한테도 쥐 터지지만......)
아직 무섭고 반사신경도 따라주질 못하지만,
펀치도 제법 보이고 피할 줄도 압니다.
한마디로 운동할 몸으로 만들어져서 운동이 할만하단 소리입니다.
그리 많이 먹은 나이는 아니지만,
전*가 지난 나이에 운동을 시작하니 힘들긴 하네요.
남자에게 "강함"은 자랑거리 입니다.
특히나 저처럼 지극히 평범한 회사원에게
내가 비록 그들에게 힘을 과시하지 않지만,
그 "강함"은
주변 사람들이 나를 다시 보게 만들고,
나 또한 으쓱하여 기분좋은 미소를 짓게 만드는 삶의 원동력 입니다.
겸손하지 못한 행동이지만,
은근슬쩍
"어제 운동을 했더니 좀 피곤하네요"
"운동하세요?"
"아 무에타이 한지 1년 좀 안됩니다"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이렇게 자랑도 좀 해야지
끈기 있게 그리고 열심히 운동하니까
그냥 스스로에 대한 애교 정도로 자랑 조금 하면서 삽니다.
글이 길어졌습니다.
이글에 대한 요점은,
당신의 나이가 몇살이던지,
당신이 얼마나 바쁘시던지,
가장 즐겁게 할 수 있는 운동을 찾으시고,
무슨 운동을 하시든 간에 망설이지말고 투자하세요.
운동 열심히 하시면,
밥맛도 좋고,
술먹어도 다음날 까지 잘 버티며,
마누라의 아침 반찬이 달라집니다.
또한 혈압도 정상을 유지할 수 있고,
진정 운동으로 힘들게 뺀살은
잠시의 고칼로리 음식의 유혹에 넘어가도 쉽게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리고 재야의 고수들 앞에 겸손해 집니다. ㅎ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