뻐큐와 꺼져

gentile 작성일 15.12.04 03:5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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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남 XX학원에서 14살 때 처음 그녀를 만났고 인연이 시작됐다.

 

당시 최고 반이 경시반이었는데 경시반에 그녀가 있었다.

 

항상 그녀는 나보다 점수에서 앞섰고 난 항상 두 번째였다. 그녀는 XX학원의 원탑으로 선생님들이 항상 귀여워했다.

 

그녀는 나에게 질투의 대상이면서도 짝사랑의 대상이었다.

 

하지만 여자사람과 대화하는 방법을 몰라서 그녀가 친근하게 인사를 해도 뻐큐를 날리고

 

무심한 듯 시크한 듯 꺼져/응/아니 단답형만으로만 대답을 했다.

 

뻐큐를 날렸을 때 그녀의 반응이 재밌어서, 그게 보기 좋아서 항상 뻐큐를 날렸던 것 같다.

 

난 가학적 변태인가.

 

내가 이렇게 재수 없게 대하는데도 항상 먼저 인사를 했다.

 

17살이 되고 난 일반고로, 그녀는 대원외고에 합격했다.

 

어느 순간 그녀가 학원에 나오질 않는다.

 

씁쓸했다. 보고 싶었다.  그냥 달갑게 대할걸. 후회했다.

 

그녀에 대한 기억이 점차 희미해져갈 때쯤 독서실 복도에서 우연히 그녀를 마주치게 됐다.

 

그녀가 어?? 하면서 쳐다보더니 야!! 안녕이라 인사를 했다. 

 

나는 놀랐지만 씩 웃으면서 쿨하게 손만 쓱 올리고 도로 위의 맨홀뚜껑 무시하고 지나가는 자동차마냥 쿨하게 지나갔다.

 

뒤에서 야!!! 하는 소리가 들렸다.이런 천하의 병.신.새.끼

 

입실한 뒤 책상을 치고 후회를 했다. 조금만 더 친근하게 대할걸. 안부 좀 물어볼걸.

 

그녀와의 인연은 비극적이게도 여기서 끝이 났다.

 

아마 그녀는 SKY에 합격했을 거고 지금 누군가의 여자친구가 됐을 거다.

 

성격도 착하고 공부도 잘하고 의리도 있고 예뻤던 그녀.

 

비록 그녀에게 건넨 말이라곤 뻐큐와 꺼져였지만, 뻐큐와 꺼져라는 말속엔 나의 순수한 애정이 담겨있었다.

 

대학교 가서 이제야 여자사람과 대화하는 방법을 터득했다.

 

요즘은 여자들이 지겹다. 나에게 불순한 목적을 가지고 가식적으로만 접근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녀만은 나에게 진실로 다가왔다.

 

돈, 외모, 명예, 집안 이딴 거 안 따지고 아기 같은 애정을 나누던 그때가 그립다.

 

나의 애정이 담긴 뻐큐와 꺼져란 비언어적, 언어적 신호에 웃음으로 답해주던 순수했던 그녀.

 

아.. 생각해보니, 그녀도 나에게 뻐큐를 날렸던 적이 있었다. 아마 항상 인사를 하면 뻐큐를 하니 빡쳤던 것 같다.  

 

그에 나는 쌍뻐큐를 날렸던 아름다운 기억이 아직도 내 마음 한편에 간직되어 있다.

 

그녀와의 추억을 생각할 때마다 한 쪽 입꼬리가 피식 올라간다.

 

타임머신이 개발된다면 다시 10대로 돌아가서 그녀에게 다시 뻐큐를 날리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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