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괴한 망상의 둥지 0002 -지져스크라이스트-

NEOKIDS 작성일 06.05.19 05:21: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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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이 이미 어두워져 있었다. 하지만 한 소년의 마음만큼 어둡지는 않았다. 그 소년, 한주성은 지금 인터넷을 뒤져보고 있었다. 어딜 가나 자신의 비난뿐이었다.



인터넷에 자신의 사진이 뿌려지면서 비난이 일었다. 길거리를 다녀도 누군가 자신을 흘끔흘끔 보고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학교에서도 그런 기분은 마찬가지였다. 아무도 자신에게 말을 걸지 않았다. 그 모든 것은 일주일 전의 일로부터 시작되었다.



뒷산에서 목을 맨 유훈석의 유서에는 모든 것이 언급되어 있었다. 한주성이 너무 잘났기 때문에, 그리고 그 잘난 놈이 나를 너무 괴롭혔기 때문에 죽는다고. 경찰은 전혀 외상 같은 것이 없었다면서 그냥 일반적인 자살로 마무리지었다. 언론의 실수로 주성의 이름이 찍혀 있는 이미지가 인터넷에 돌았고 그것이 어느 학교 몇 학년 몇 반 누구라는 것까지 모두 누군가에 의해 드러나 버렸다.



하지만 주성은 훈석을 괴롭힌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오히려 너무 드러나지 않아서 자신도 별로 가까이 하지 않는 친구였다. 하지만 유서는 그렇게 쓰여져 있었다. 그리고 세상은 그렇게 돌아갔다.



교무실에 불려가서 자신은 가혹행위를 하지 않았노라고 말을 해도 사람들은 반신반의할 뿐이었다. 학교성적도 상위권이고, 평소에 아무런 불량스러움도 없었던 아이였지만, 청소년의 시기에 하는 말 따윈 곧이곧대로 믿을게 못 된다는 듯 바라보는 그 의심의 시선이 주성은 끔찍이도 싫었다. 주성은 점점 지쳐갔다.



그런 주성을 믿는 이가 단 한사람, 같은 반 친구인 윤철이였다. 평소에 공부도 앞뒤를 다투고, 운동도 썩 어울려 같이 잘 하고, 여러 군데 잘 어울렸던 윤철이만은 자신을 믿어주었다.









학교에서 풍물패 동아리 연습 때도 사람들의 눈은 힐끔힐끔 자신을 쳐다보았다. 자꾸 박자를 틀렸다. 소년은 동아리 선생의 조용한 호출을 당했다. 이대로는 조금 있을 교내 축제 때에 풍물패는 아무것도 하지 못한다고. 당분간은 빠져있으라는 말이었다.



모든 것이 자신으로부터 멀어져가는 느낌에 소년도 자살을 하고픈 충동을 느꼈다. 하지만 소년은 그러지만은 않기로 굳게 다짐했다. 자신이 죽어도 해결되는 일은 없다. 가슴을 펴고 버티자. 내가 그러지 않았다는 진실 그것 하나만 믿고 버티자. 하지만 다음 일주일은 그런 마음마저 허물어지게 만들 정도로 고되었다.



의심과 회피의 시선은 날로 늘어만 갔다. 심지어는 대놓고 살인자랑은 수업 못받겠다고 말하는 애까지 있었다. 학부모회에서도 찾아와서 그 학생을 빨리 내쫒아 버리라는 야단법석이 그치질 않았다. 그리고 학교 축제 때가 다가왔다.



그 일주일동안, 단 한 사람, 의심과 회피의 시선 속에서 교내에서 자신을 불쌍하게 쳐다보는 사람이 딱 한 사람이 있다는 것을 소년은 깨달았다. 맨 뒷줄에서 언제나 졸고 있던 소년이었다. 주성이 샤프를 떨어뜨려 주우려 하는 순간 그 녀석과 눈이 마주쳤다. 웬일인지 그 때따라 그 녀석은 졸지 않고 주성을 쳐다보고 있었다.



학칙에 맞지 않는 긴 머리와 마치 난 불량한 학생입니다 하고 선전하는 듯 온 몸의 껄렁한 움직임, 치렁거리는 금속장신구들. 하지만 이상하게도 선생은 그에게 어떤 불만도 내비치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선생들이 그 애의 심기라도 건드릴까봐 더 쩔쩔매는 듯 했고, 그 애 역시 다른 누구와도 어울리지 않았다. 그 애가 자기반 애가 맞는 건지 주성은 의심조차 일었다. 학기 초부터 그 애는 어떤 관심도 끌만한 행동을 하지 않았었다. 조용하던 애가 갑자기 치렁치렁 머리를 기르기 시작하고 금속장신구를 하니 학급의 아이들 모두가 안 그래도 살인자가 있는데 불량한 놈까지 생기고 있다고 수군댔다. 여자애들은 끔찍이도 둘 모두를 싫어했다.



그런 놈이 자신을 불쌍하다는 듯 쳐다보고 있는 것이다. 주성은 기분이 못내 좋지 않았지만, 더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그러다 문득 주성은 뭔가 생각해내곤 갑자기 오싹해졌다.



그 녀석의 이름을 자신은 모르고 있는 것이었다. 반에 끽해봐야 50여명, 그것도 같이 복닥대는 사이인데 학기가 3분의 1이 지나도록 자신이 그 녀석의 이름을 모르고 있다는 것, 그리고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녀석이 출석을 부를 때 대답한 적이 없다는 것. 그런데도 50여명 모두가 그것에 대해 한 번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는 것. 생각을 해낼수록 주성은 뭔가 두려움을 느꼈다.



“왜 그래?”
윤철이가 묻자 주성이는 대답했다.
“저 자식 이름 아냐?”
“아니? 그런데 별로 관심도 없어. 저런 양아치 새끼 뭐하러 관심두냐.”
“아니, 곰곰이 생각해보니까, 이제까지 출석 부를때 대답한 적이 없는 것 같아서....”
“뭐? 에이, 설마. 잘 기억을 못하는 거겠지.”
“그런데 왜 아무도 몰라.”
“왜, 그런거 있잖아. 사람은 관심을 별로 안가지면 사물에 대한 기억도 떨어지는 거, 뭐 그런거 아냐?”
“아무리 그래도 학기 3분의 1이 지났는데 모를 수가 있냐?”
“뭐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어. 그보다 너나 좀 신경 써라. 안그래도 힘들텐데, 뭐하러 그런 쓸데없는 생각까지 하냐.”


윤철은 어깨를 으쓱하곤 주성이의 어깨를 토닥였다. 하지만 주성의 신경쓰임은 멈추질 않았다.



축제는 실내강당 안에서 성대하게 치러졌다. 주성이가 속했던 풍물패는 공연 동아리 중에서도 가장 많은 갈채를 받았다. 그 속에서도 여러 가지 부들이 활동을 했지만, 심령부의 인기는 높았다. 분신사마부터 시작해서 별의별 잡다한 지식들을 전시해놓고, 마치 유령이라도 나올 것처럼 꾸민 심령부의 내부는 인기가 높았다.

특히 그 분신사마가 아주 절정이었다. 정말 뭐든지 맞춰대는 것이었다. 그래서 마지막 순간에 그들은 최고의 활동부에 뽑히게 되어 수상을 하러 나왔다. 주성은 학교에 나와서 그런 것들을 보기는 했지만, 별로 즐겁지가 않았다. 자신은 실내강당에서 외따로 떨어진 곳에 앉아 있었다.



그런데 어느 사람이 순간 외치는 소리에 주성은 퍼뜩 눈길을 돌리며 일어났다.
“훈석이를 죽인 게 누구인지 물어봐 주세요.”
그 말 한마디에 강당 안의 분위기가 싸늘하게 변했다. 모두들 주성이 쪽을 돌아보았다. 갑작스런 전개에 주성은 그저 놀랄 뿐이었다.
“분신사마에게 물어봐주세요. 우린 단지 알고 싶을 뿐입니다.”
심령과학부 아이들은 난처해했다. 보다못한 지도교사가 나서서 말했다.
“그런 문제는 아직 다 밝혀진 건 아니니까....”
“선생님, 정말 알고 싶어요.”
“맞아요, 해보게 해주세요.”




아이들의 거의 광기에 들리다시피 한 보챔에 지도교사도 결국 한 걸음 물러날 수밖에 없었다. 와있던 몇몇 학부모들도 그런 상황을 막지 않았다. 사실, 그들도 지도교사도 주성을 믿지 못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었으니까.
“좋아. 심령과학부, 한 번 해보렴. 하지만 이건 어떤 결과가 나오더라도 그냥 재미일 뿐이야. 거기까지만 받아들여야 한다.”
심령과학부 아이들이 썩 맘에 들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분신사마를 시작했다. 방송부 아이들이 프로젝터를 이용해 대형스크린 화면에 그것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펜이 흔들림이 왔다.
“오셨으면 1번에 동그라미를 쳐주세요.”
두 사람이 맞잡은 손이 떨리듯 움직이더니 그 손에 쥔 연필이 1번에 동그라미를 쳤다.
“그럼 여기 훈석이가 와 있는지 말해주세요.”
그러자 연필이 또 예스 쪽으로 움직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숨을 죽였다. 주성은 미칠 것만 같았지만, 지금 결과가 나온다면, 그래서 자신의 결백이 나오기만 한다면 그것도 괜찮을 것 같아서 지켜보고 있었다. 제발, 괜찮게 나오기를.....




“지금 여기에 훈석이를 죽인 범인이 있나요?”
연필은 예스에 동그라미를 그렸다.
“그 사람의 이름이 뭔지 가르쳐 주세요.”
연필이 움직이는 것을 보고 주성은 경악하기 시작했다. ㅎ, ㅏ, ㄴ, ㅈ, ㅜ, ㅅ, .......

"그만!“
주성은 소리를 지르면서 주저앉았다. 사람들의 시선이 싸늘하게 그를 향해 돌아보았다. 연민 같은 것은 추호도 없었다. 마치, 당장이라도 주성을 내칠 듯한 기세가 강당을 가득 맴돌았다.









그 때 누군가의 목소리가 강당 위쪽에서 쩌렁쩌렁 울려 퍼졌다.

“도대체 너희 인간들이란 것은......이래서 내가 즐겁다니깐.”
누군가의 낄낄거리는 듯한 목소리에 사람들은 눈을 돌렸다. 그런데 누가 둥실둥실 떠있었다. 바로 그 긴 머리의 불량학생이었다.



그 녀석이 금속장신구가 치렁치렁한 손으로 손짓을 하자, 강당의 문이 쾅 하고 닫히더니 온 바닥이 불길에 휩싸이기 시작했다. 사람들은 비명을 지르며 나가려 했지만 창문도 마치 방탄유리가 된 듯 깨지지 않았다. 우왕좌왕 하던 사람들이 자신의 손에 닿는 불이 전혀 뜨겁지 않다는 걸 알아채기까지는 시간이 걸렸다. 그 우왕좌왕하는 모습을 긴 머리의 소년은 조용히 내려다보고 있었다.



“심령과학부. 너희들의 그 장난이 진짜라고 믿는 건 아니겠지? 그건 여기 모인 인간들의 사념에 불과한 것이거든. 니들이 믿는 대로 움직인단 말야. 하긴, 태고적에 했었던 장난을 아직도 하는 발전 없는 니들 때문에 우리가 포식을 하기도 하지만.”
심령과학부 아이들이 자신들이 호명되자 겁에 질린 듯 뒤로 물러섰다.
“진짜 진실을 나도 알기까진 약간 시간이 좀 걸렸어. 워낙 진범이 마음을 잘 숨기고 있었거든. 하지만 이젠 모든 걸 보여줄게. 너희들이 갈 지옥까지도 말야.”



그리고 다시 긴 머리의 소년이 손짓을 했다. 순간 강당의 공간은 진한 청색 하늘의 어둑한 곳이 되었고, 큐빅들이 즐비하게 늘어서 있는 곳의 상공으로 변했다. 저 편 가운데에선 마치 등대처럼 뭔가 빛이 오가고 있었고, 큐빅들 사이엔 좁은 통로가 있었으며, 공포의 비명과 탄식들이 비어져 나오는 사이를 흉측한 무언가가 분주히 오가고 있었다. 사람들은 거의 미치기 일보직전이었다. 하지만 긴 머리의 소년은 주의를 흩뜨리지 않게 사람들의 눈에 영상을 비쳤다.



“씨발놈의 새끼야. 너같은 벌레가 이 세상 살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냐?”
“제발, 살려.....줘.....배가.....죽을 것 같아......”
“버러지 새끼가 이제 말을 좀 듣는군, 이거부터 써.”
야산에서 어떤 놈이 쓰러진 훈석의 앞에 연필과 종이를 놓았다. 그리고 베껴쓸 것까지 아예 다 써온 듯 노트도 하나 펼쳐놓았다.
“똑같이 써, 개보지 터럭 같은 새끼야.”
“알았...어,....하란대로 할테니 제발 때리지만......”
“써 이 씨발놈아.”
우악스럽게 발길질을 뒤통수에 내리꽂으면서 그 녀석은 유서쓰기를 강요하고 있었다. 훈석이는 유서를 쓰면서 울고 있었다. 그가 베껴쓰기를 끝내자 쓰기를 강요한 놈은 그걸 장갑을 낀 손으로 잘 접어서 봉투에 넣고는 준비해온 밧줄을 집었다.
“어.....살려준다 그랬잖아!”
“언제 그랬냐 내가 이새끼야. 그냥 곱게 디져 이새끼야.”


그리고는 밧줄로 훈석의 목을 감아 졸랐다. 훈석은 몇 번 발버둥을 쳤지만 소용없었다. 온갖 오물과 소변을 다 흘리면서 괴로운 표정으로 죽어 버린 훈석의 목줄을 나뭇가지에 걸쳐서 자살한 것처럼 열심히 꾸며놓고는 그 녀석은 한참 그 훈석이 대롱거리는 걸 바라보고 있었다. 곧 그 놈의 얼굴이 보였다.



마치 악마가 웃는 듯 송곳니를 드러낸 채 자신이 한 일을 자랑스럽게 바라보고 있는 그 놈은 바로 윤철이였다. 사람들은 그 영상에 비명을 질렀다.



곧 등대 같은 빛이 사람들 틈 속의 윤철을 비추었다. 윤철은 당황한 듯 주위를 둘러보았지만 이미 사람들은 멀찌감치 피해 있었다.

“나.....난 그저 저 자식이랑 주성이가 꼴보기 싫었을 뿐이야......버러지는 버러지대로, 잘난 놈은 잘난 놈대로......”

윤철의 입이 마음대로 움직이면서 말을 토했다. 마치 하려 했던 말이 아니라는 듯이 윤철은 황급히 입을 막으려 했지만 그 입은 윤철의 손을 깨물어 살을 뜯어버렸다. 하지만 윤철은 비명도 지를 수 없었다. 자신의 살을 물어뜯은 입이 피와 고기조각을 머금은 채 계속 움직였다.



“나....난 정말 죽일 생각은 아니었는데.....어찌나 그날따라 화가 치밀던지....그냥 죽여버렸어야만 했어.....물론 외상이 남지 않게 기술적으로 때려야 했지.....그런건 아버지가 의사라 자신이 있었거든.....그날따라 아버지가 너무 심하게 날 다그쳤어.....일류대 가야 하는데 주성이 같은 자식한테 밀렸다고.....넌 그 새끼보다 못한 버러지라고......”



말을 다 토한 듯 윤철의 입이 다물어지자 그제야 윤철은 자신의 손에 대한 고통의 비명을 질러댈 수 있었다. 사람들은 그가 그 꼴을 하는 동안 모두 얼어붙어 있었다. 그건 주성도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그의 온몸이 비틀어지기 시작했다. 어떤 곳은 부풀어오르기도 하고, 흉측한 피와 살과 근육들이 범벅이 되기도 했다. 비명을 지르며 손길을 뻗었지만, 누구도 도와주지 않았다. 오히려, 모두 도망가고 싶어 했지만 그럴 수도 없었다. 아까부터 발이 떨어지질 않는 것이었다. 그런 부풀어오르는 사이에서 이빨이 날카로운 벌레같은 것들이 스멀스멀 기어나왔다. 그리고 윤철의 부풀어오른 살을 조금씩 뜯어먹기 시작했다.



벌레들의 수는 늘어났고, 윤철이 지르는 마지막 비명은 벌레가 그의 목젖을 뜯어버림과 동시에 끝났다. 그리고 계속 그 상태의 윤철을 바닥에서 커다란 혀같은 것이 올라와 냉큼 채가 버렸다. 사람들은 동공이 확대된 채 그 광경을 계속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이미 비명 지르기 같은 것은 할 수 없을 정도로 탈진된지 오래였다.



“자, 이젠 모두 알겠지. 그럼 지옥에서 너희들이 갈 자리를 맛봐야지. 지금은 아니지만, 너희들이 떨어질 지옥이니까 먼저 돌아보는 것도 꽤 재미가 쏠쏠할 거야.”


긴 머리의 소년이 손짓을 하자, 주성을 남기고는 모두가 큐빅이 보이는 밑으로 떨어지기 시작했다. 비명소리가 까마득하게 아래로 멀어졌지만 그것도 오래가지 않았다. 밑에서 대기하고 있었던 듯 괴물들이 그 비명을 더 이상 이어지지 않게 나꿔 채갔다. 짧은 으억 소리가 여기저기서 울려퍼졌다. 그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같이 보이지 않게 되었고, 다시 그 사람들의 공포와 고통에 찬 비명들이 여기저기서 들려왔다. 주성은 눈을 감고 귀를 막았다.



“어이.”


주성은 살그머니 눈을 떴다가 놀라서 뒷걸음질을 쳤다. 긴머리의 소년이 바로 앞에 와있던 것이다.


“이거이거, 힘들게 찾아봤더니만 이런 꼴이라니.....이래가지고 날 대적할 수 있겠어?”
“대적이라니?”
“나도 첫만남이 이렇게 될 거라곤 생각도 못했지만, 어쨌거나 우리는 숙명으로 이어져 있어. 내가 널 불쌍하다는 듯 바라본 건 그래서고. 우린 좋은 친구가 될 수도 있지만, 최악의 관계가 될 수도 있어. 너와 내가 맘을 어떻게 먹느냐에 따라서.”
“대체 무슨 소릴 하고 있는 거야?”


잠깐 주성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소년은 조용히 말을 이었다.
“흠, 뭐, 하긴 난 널 일깨워주는 역할도 맡았으니, 모르고 있는 것도 당연하겠지. 꼭 이런 귀찮은 건 날 시킨단 말이야. 신이란 놈도 너무 하지. 뭐, 어쨌든 이번엔 꽤 맛있는 먹잇감도 있고 해서 그냥 조금 도와준 것뿐이야. 네 사정은 네가 천천히 알게 될 거고. 앞으로 네가 통과해야 할 의례들 속에서. 맘 굳게 먹으라고. 우리의 마지막 싸움이 재밌게 되기를 기대할게.”
긴머리의 소년은 주성의 옆을 스쳐 지나가면서 나직이 말했다.

“만나서 반가왔어, 지저스 크라이스트.”
“뭐?!”











주성은 다시 강당으로 돌아와 있었다. 긴머리의 소년도 사라졌다. 사람들도 모두 그대로 돌아와 있었다. 하지만 모두가 정신까지 그대로는 아니었다. 돌아왔다는 것도 모른 듯 사람들은 자신의 팔뚝살을 물어뜯거나 다른 사람들의 목을 물어찢고 있었다. 그리고 바로 경찰이 들이닥쳤다. 피와 살조각들이 바닥을 난장판으로 만들었다.



축제는 끝났다. 하지만 누구도 축제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았다. 다만 학교의 자리는 군데군데 비어 있었다. 일주일 후 학교는 폐쇄될 예정이다. 영문을 모르는 교사들과 교장에게는 안된 일이었지만 그 학교의 대다수 아이들과 학부모 일부가 헛소리를 하거나 사람고기를 먹으려 하는 기행을 보이고 있다는 소문이 이미 퍼져 버린 상태였다.



정신병원으로 강제격리를 시키느라 몇백대의 앰뷸런스가 온 것도 소문이 퍼지는데 단단히 한 몫을 했다. 몇몇 사람들은 이사를 갔고, 남아 있는 아이들 역시 제정신이 아닌 듯하다. 그들의 몸에는 아직도 이빨자국들이 남아있다. 주성은 그들을 돌아보다가 가만히 고개를 돌렸다. 아무도 그 때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고 아무도 그 긴 머리의 소년을 기억하지 못한다.



주성은 그 긴 머리의 소년이 남긴 말을 기억한다. 그리고 만약 그 소년의 말대로라면, 아마도 자신은 조만간, 그 소년을 다시 만나게 될 것이다.



왠지 주성은 그 때가 기다려지는 듯한 두근거림을 자신의 심장에서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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