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괴한 망상의 둥지 0005 -아기-

NEOKIDS 작성일 06.05.20 00:28: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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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 나 왔어.”
남편은 쳐진 어깨를 추스르며 집으로 들어선다. 그 모습을 여자는 반겼다.
“이제 왔어?”
“응. 많이 피곤하네.”
여자는 남자가 들고 온 것을 본다. 먹을 것들이었다. 남자는 씻고 나오면서 미안하다는 듯 말한다.
“오늘은 그것밖에 못 구해왔네. 다음엔 좀 더 나아지겠지.”

하지만 남자의 말투로 보면 가망이 그다지 크지 않다는 것을 여자는 느낄 수 있었다. 하지만 여자는 기쁨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었다. 이제 조금 있으면 예정일, 여자의 배는 산같이 불러 있었다.

“뭐, 여차하면 나라도...”
“몸도 무거운데 뭐 하러 나가. 그리고 바깥은 위험해. 다니지 않는게 좋아. 우리 ID도 정지된 거 몰라? 그것도 암시장에서 겨우 구해온 거라고.”

남자는 한 숨을 쉬었다. ID가 정지되었다는 것은 치명적이었다. 모든 금융거래와 일상활동을 맘대로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난 우리 아기가 그만큼의 가치가 있는 건지 잘 모르겠어.”
“무슨 소릴 하는 거야. 생명은 소중한 거야. 우린 지금 잘 하고 있는 거라고.”
“하지만 말야....우리도 살아야 하잖아.”
“지금 살아가고 있잖아요.”
여자는 힘을 내라는 듯이 말했지만 남자의 표정은 여전히 어두웠다.

다음날 아침 남자는 거리를 둘러보고 있었다. 뭔가 ID가 정지된 사람들이라도 할 수 있는 일을 찾기 위해서였다.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신세였지만 그래도 입에 풀칠이라도 하려면 위험한 일이라도 마다하지 않아야 했다. 다 아기를 위해서였다.

그런 마음으로 그는 거리의 먼지와 노상방뇨, 뱉은 침으로 지저분해진 구인광고 모니터에 손가락을 대고 움직이고 있었다. 그 구역의 모니터는 모든 일들이 하층민 대상이라서 그다지 벌이가 정기적이거나 썩 좋은 것은 없었다.

예전에도 이런 책임감으로 살던 가장들이 있겠지. 그래, 이건 인간의 내면이 발전하기 위한 한 단계일 뿐이야. 이런 고통쯤은 감수해야 해. 이런 생각들은 수없이 많은 일을 겪으면서 점점 부서져 갔다. 이젠 어떻게든 정부에 걸리지 않으면서 먹고 사는 것에만 신경 쓰는 것도 벅차게 되었다. 그는 거리의 큰 전광판 화면을 무심결에 올려다보았다.

“다음 소식입니다. 유전자 조작으로 인공수정이 한결 더 쉬워진 연구결과가 발표되면서 큰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이 연구는 현재 인공수정에서 어려운 요소였던 DNA합성의 문제들을 해결하는데 가장 큰 기여를 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다음 소식은 산아국에 대한 소식......”

그는 전광판을 보며 쓴웃음을 지었다. 자신 역시 욕심을 부렸고, 그 결과가 이 모양이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아직 욕심을 버리지 않는다. 그럴 뿐 아니라 더욱 지독한 욕심과 허영으로 세상을 꾸며간다. 그것을 움직이는 것은 돈이고, 지금의 세상은 가장 추악한 세상이 되었음에도, 모든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한 채 오늘도 움직인다. 짓밟고 살아남으려는 누군가들에 의해 자신들이 순식간에 나락으로 떨어질 수도 있음을 모른 채.

문득, 자신의 친구들이 생각났다. 그 중에는 전화번호를 알고 있는 녀석 하나도 있었다. 남자는 주머니에서 전화카드를 꺼낸다. ID가 다른 사람으로 등재되어 있는 것이었다. 남자는 전화를 걸었다. 친구가 바로 받았다.

“감사합니다, 뉴텍 영업부 김영석입니다.”
“......”
-여보세요?
“나야, 지만이. 잘 지냈냐?”
-지만이? 박지만?
전화기 너머의 사람이 약간 경계심 섞인 음성으로 물었다.

“그래. 임마.”
-야, 너 오랜만이다. 수배되었다는 소식 듣고 나서 한참 지났는데, 건강하냐?
“건강하지. 덕분에 산다. 일은 좀 어때?”
-뭐, 여기 사업이야 그럭저럭이지. 그나저나 너......
“잡혔냐고? 아니, 아직은 안 잡혔어.”
-조심해라. 요즘 너같은 사람들 어떻게 대하는지에 대한 소식이 흉흉해.
“어련하겠냐. 개같은 새끼들.”

-힘드냐? 내가 좀 도와줄까?
“나 ID 정지당했잖아. 무슨 수로 도와주게.”
-왜, 그래서 현금이란 게 있잖아.
“그래도 널 만나야 받잖아. 그런 위험까지 감수하긴 싫다.”
-새끼, 친구가 도와주겠다는데.
“괜찮다. 너한테까지 해 끼칠까 걱정이다. 통화도 오래하면 추적당해. 이만 끊자.”
-지만아, 잠깐만, 여보세.....

남자는 공중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다시 전광판을 올려다보았다. 이미지가 그럴싸한 유전자 조작사의 CF가 흐르고 있었다. 남자는 바닥에 침을 뱉고는 발걸음을 옮겼다.

“여보, 우리 집세 나왔어.”
여자는 마지못한 듯 말을 꺼냈다. 남자는 미칠 것만 같았다.
“집세? 저번에 냈는데 또 내라고?”
“그건 밀린 거였고 오늘 나온 건 이번 거래.”
“젠장!”
남자는 기어이 화를 내고 말았다.
“도대체 어떻게 살라는 거야! 이 좁쌀만한 집 하나 가지고 도대체 얼마나 울궈먹으려 드는거지? 수도도 제대로 나오지 않고, 난방도 제대로 안되고. 뭐가 하나 좋다고 그래 보증금 5000씩이나 쳐받으면서 월세는 꼬박꼬박 받으려 드는거야!”

그래봤자, 남자도 그것이 되지도 않는 투정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그런 식으로라도 지금 답답함을 풀지 않으면 안 될 정도로 남자는 지쳐 있었다. 여자는 그런 남자의 모습을 보면서 눈물을 지었다.

“여보, 그럼 나 애기 지울께......”
“.......”
“이렇게 당신이 고통스러워 할 줄은 몰랐어. 이럴 거면 차라리.....”
“무슨 소리야!”
남자는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 와서 어떻게 애기를 지워. 당신도 위험해진다고. 이렇게 된 이상, 오기로라도 우리 아기를 봐야겠어. 이제 예정도 얼마 남지 않았잖아. 무허가라지만 의사도 구해놨고. 반드시 낳고 말겠어. 그래서 우리 멀리 도망가는 거야. 보증금 빼다가, 저기 어디 섬 같은 데라도 가자구. 그래서 행복하게 살자. 애기 키우면서.”

남자의 눈에도 눈물이 고였다. 이를 악물었다. 어떻게 해서든 우리의 가족을 만들고 말겠어. 어떻게 해서든지......남자는 문득 친구의 전화가 떠올랐다.

어스름이 낀 거리, 남자는 약간 지저분한 지하에 있는 바에서 친구를 기다리고 있었다. 이윽고 시간이 되자, 친구가 주위를 두리번거리면서 입구 쪽에서 나타났다. 친구는 자리에 앉자마자 돈부터 내놓았다. 남자는 친구를 바라보면서 말했다.
“고맙다. 도와줘서.”
“고맙긴 뭘.”

남자는 김영석이란 사람의 손에서 현금뭉치를 받아들고 우울한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이거 어떻게 갚아야 되는거냐.”
“응, 그거, 갚지 않아도 돼.”
“야, 그래도....”
“아냐, 정말이야. 왜냐면.....”

남자의 친구는 주머니를 뒤적이더니 뭔가를 꺼냈다. 그걸 본 남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건 하층민들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은 봤다고 이야기하는 그것이었다. 위치추적기.

“너.....이 개새끼가.....”
“네 마누라 쪽도 이미 사람들이 갔어. 포기하고 새 삶을 찾아. 이게 사람 사는거냐?”

그 때 남자의 어깨 위에 어떤 사람의 손이 올려졌다.
“산아국에서 나왔습니다. 같이 가시죠.”

남자는 바로 그 자리를 박차고 도망가려 했다. 하지만 입구는 이미 총과 헬멧으로 무장된 사람들로 봉쇄되어 있었다. 사색이 된 남자가 돌아보자 산아국의 사람은 기절봉을 꺼내들면서 혀를 찼다.
“쯥. 저항은 소용없습니다. 이런 일 한 두 번 하는 거 아니거든요.”

여자는 조금씩 심해져 오는 격통에 어떻게든 도움을 청해야 했다. 하지만 도움을 청할 곳은 아무데도 없었다. 임신을 한 걸 들키지 않으려고 집에 혼자 박혀있었던 까닭이다. 여자는 눈물이 났다. 이런 때에 아무도 도움을 줄 사람은 없고, 남자도 집에 없었다. 남자가 몰래 사들였다는 핸드폰, 지금은 추적을 당하는 한이 있더라도 연락을 해야 했다. 여자는 집에 달려있는 채로 한 번도 제대로 써보지 않은 인터컴을 눌렀다. 산아국의 사람들이 들이닥친 건 그 때였다.

“썅. 이거 애 낳을려는가 보네. 주사놓고 의료진 불러.”

한 남자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여자는 아픈 와중에도 도망가려고 버둥거렸다. 하지만 목에 차가운 것이 와닿고 뒤이어 따끔함을 느끼면서 여자는 정신을 잃었다.



“1082713번, 2092384번. 정신이 듭니까.”

어두운 방에서 남자와 여자는 정신을 차리고 서로를 보았다. 둘 다 금속침대 위에 누워 있고, 옷은 갈아입혀져 있었으며, 둘 다 묶여있었다. 여자는 자신의 배를 보았다. 뱃속의 아기가 사라지고 없는 모습을 보자마자 여자는 미친듯이 소리를 질러댔다.

“내 애기! 내 애기 어딨어!”
“2092384번, 조용히 하세요. 여기는 산아국 법정입니다.”

처음에 말을 걸었던, 자주색 법복을 입은 노인이 탕탕 나무망치를 내리쳤다.
“정신이 든 것 같군요. 1082713번, 2092384번. 그럼 법정을 시작하겠습니다. 원고측 발언.”

깔끔한 인상의 남자가 일어섰다.

“여기 두 원고는 제정법 305조 산아제한법을 어겼습니다. 그 법의 제정취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신약 환타지아의 복용으로 인해 신체조건을 월등하게 변화시킨 사람들이 가진 임신시의 기형아 출산을 억제하고 산아국의 인공 제조된 아이를 받아 더 나은 사회로 발전시키기 위함. 정확히 이 두 원고는 305조 1항 임신불가조항과 2항 육아의 의무, 3항 사회의 안녕을 위한 자진신고의 의무를 어겼으므로 이에 두 원고를 본 법정에서 심판해 줄 것을 요청하는 바입니다.”
“내 애기! 제발 한 번만 보여줘요. 우리 애기!!”
“조용히 하시오! 원고! 한 번만 더 떠들면 법정소란죄까지 추가하겠소!”

노인은 여자에게 일성을 가하고는 다시 깔끔한 남자에게 눈을 돌렸다.
“정확한 상황을 보고하시오.”
“1082713번은 정확히 2075년 5월 16일에, 2092384번은 정확히 2075년 7월 20일에 환타지아를 2주일에 걸쳐 복용한 사실을 인정합니까?”
“그 땐 누구나 다 먹었다고!”

남자는 소릴 있는대로 질렀다.

“먹지 않는 사람은 병신취급하고, 체지방이 조금이라도 축적되면 회사에서 망신 주고 진급에 차별 당하고! 당신 같은 사람들이 오히려 더 나섰잖아! 아니, 당신도 먹었군그래. 그 몸과 혈색을 보니 말야!”
“조용히 하시오 원고! 인정합니까, 하지 않습니까.”
“인정해, 인정한다고! 그래, 맘대로들 해봐!”
깔끔한 남자는 지겹다는 표정으로 금속침대의 남자에게서 시선을 떼고는 말을 이었다.
“그 이후 2077년 9월 14일 환타지아의 부작용에 대한 발표가 났고, 그 이후로 이 법이 긴급 제정, 통과되었다는 사실을 압니까, 모릅니까.”
“........”
묵비권을 행사하겠다는 듯 남자는 입을 열지 않았고 여자는 계속 흐느꼈다.

“물론 원고의 말대로 전 세계의 모든 사람들이 환타지아를 먹었습니다. 하지만 그건 문제가 아닙니다. 환타지아는 그 자체로는 부작용이 없으나 공해물질이나 중금속 등과의 접촉을 통해서 기형출산의 직접적 원인이 된다는 사실은 이미 공공연하게 회자되었고, 그에 따른 긴급조치법과 기형인들에 대한 인권제한 및 산아제한법이 조치되었습니다. 우리는 재앙을 막아낸 겁니다. 그리고 지금은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모두가 노력하고 있는 이 때에, 이 두 원고는 각종 조치들을 어기면서까지 임신과 출산을 하고 사회에 위해를......”

그 뒤의 말들은 두 사람에겐 들리지 않았다. 제발 아기를 한 번만이라도, 한 번만이라도 볼 수 있다면, 그래서 우리가 가족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제발 느끼게 해주기를.....그것만을 속으로 바라면서 두 사람은 계속 눈물을 흘렸다.

“두 원고는 305조 1항, 2항, 3항을 어긴 사실이 명백하므로 유죄를 인정, 본 법정은 두 원고에게 각각 징역 30년씩을 선고한다.”
“아기! 아기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남자가 노인의 판결을 듣고 다급하게 외쳤다.

“조용히 하시오 원고! 또한 본 법정은 출산된 산아에 대해서는 산아국 진흥법 제3조에 의거 유전자 조작사에 실험재료로 인도될 것을......”
“안 돼! 그럴 순 없어!”
“.......지시하는 바이다.”

법정의 망치가 세 번 내려쳐졌다. 그리고 금속침대는 움직이기 시작했다. 둘 다 다른 방향으로 갔다. 두 사람 다 절규하고 있었다. 그 절규는 그 방에서만 울리고 있는 것이 아니었다. 수많은 방의 수많은 문들 너머로 사람들의 절규소리가 간헐적으로 들려왔다.



“정말, 그래서 한심한 인간들은 안 된다니까.”

깔끔한 남자는 집에서 각종 기름진 음식으로 폭식을 하면서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6살 된 아들, 정확히 말하자면 6년 전 결혼신고와 함께 산아국에서 받아온 아들 녀석은 밥은 안먹고 햄버거와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텔레비전의 만화프로그램을 보고 있었다. 날씬한 아내가 와서 아이가 듣지 못할 정도의 목소리로 남자를 구박했다.

“당신이 그러니까 애도 그 모양이지.”
“저게 내 앤가? 나는 잘 먹이고 입히고 재우기만 하면 되는거야. 그걸로도 보상금은 국가에서 나오고. 그 외에는 지가 스스로 알아서 커야지.”
“그래도 최소한 애 아빠라는 인식은 좀 해봐.”
“그것보다는 우리 마누라 먹여 살리는게 더 중요하네요.”
남자는 히죽거렸다.
“당신도 참. 아, 환타지아 사왔어?”
“그럼. 아예 사는 김에 3개월치 사왔지. 이제 때마다 맞춰먹으라고, 쟤도 좀 먹이고. 쟤 살찌는건 문제가 아닌데 쟤가 살쪄서 내 평점 깎이는 게 문제야.”
“걱정하지 말고. 밖에 나가서 일이나 열심히 하세요.”
“알았으니까 우리 날씬하고 이쁜 마눌님도 몸매관리 잘하세요~”

남자는 여자의 엉덩이를 톡톡 두들겼다. 베란다 너머로 어두워진 도시의 휘황찬란한 불빛들이 비쳐왔고, 아이의 눈에는 텔레비젼의 영상이 비춰지고 있었다. 아이는 혼자서 히죽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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