짧은 이야기.

피빛망투 작성일 06.06.25 20:36: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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쌀을 힘겹게 짋어지고 가는 할머니의 허리는 휘어져 있었다.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 쌀이 무겁게 느껴진다.

쌀 반가마 포대의 삼분의 이정도 담겨져 있어 보인다.

사실 젊은 사람이라면 그냥 한손으로 어깨에 짊어지고도 뛰어 갈

수 있는 무게이다.

할머니의 얼굴 가득 주름이 마치 세월이 밭에 이랑을 만들어

놓은 것 같다.

아직 초가을이라 햇살은 여름처럼 따갑고 후덥지근하다.

할머니는 시장 입구 가게 한쪽에 쌀 포대를 펼친다.

대형 할인점 앞이라 사람도 많이 다닐 것 같고 점포 앞의 텃세

도 없는 그런 장소이다.

작년에 찧어둔 찹쌀을 틈틈히 파는 할머니는 올 해에도 집에 쌓

아 놓은 쌀을 장에 파신다.

추석이 얼마 안 남아서 그런지 할인점 앞에는 지나가는 사람들

로 북적이다.

아직 추석은 일 주일정도 남았다.

할인점에 들어가는 트럭들이 줄을 지어선다.

할머니는 아직 찹쌀을 팔지 못했다.

어린 아이 두명이 젊고 이쁜 엄마 손을 잡고 깡총거린다.

손주 녀석들 같아 보이는 할머니는 보면서 미소를 짓는다.

12시즈음 되자 옆에 배 과일을 몇박스나 들고 온 육십대의 할머

니가 옆에 앉았다.

배를 하나 덥썩 깍아서 할머니에게 준다.

할머니는 수줍어 하신다.

안 되는데 하시면서 빨리 드시라고 권하는 손이 무안해 질까봐

한 조각 드신다.

사실 할머니는 아직 점심을 먹지 못했다.

사실 혼자 앉아 있기 민망했는데 옆에 누가 있어주는게 고마웠

다. 그런데 과일까지 하나 먹으라고 깍아주니 할머니는 정말

고마워했다.

배는 잘 팔렸다. 과수원에서 바로 따 온 것이라 가격도 저렴했고

맛도 있었기 때문이였다.

할머니는 아직 쌀을 팔지 못했다.

사람들은 자꾸 모여서 배만 사가도 할머니는 허허 거리면서

비닐봉지에 배를 담아주면서 도와줬다.

잠시 손님이 뜸해졌을 무렵 대형 할인점에 양복을 입은 사람

두명과 점원복을 입은 사람 한명이 와서는 배를 파시는 할머니에

게 자리를 비켜달라고 했다.

말로만 하는게 아니라 배 박스를 들면서 다른 데로 옮기고 있었

다. 찹쌀을 팔던 할머니는 큰 소리로 할인점 사람들에게 고함을

쳤으나 주차하기 위한 자동차 시동소리와 트럭 소리 행인들의

소리에 묻혀버렸다.

배 팔던 할머니는 입에 담긴 힘든 욕을 점원들에게 퍼부으면서 투

덜거리면서 시장안으로 배박스를 들고 간다.

하나씩 박스를 옮기려 올 때 마다 찹쌀을 팔던 할머니의 마음이

무겁다.

시장안에 가고 싶지만 시장안에 쌀집 사장한테 궂은 소리를

들은 적도 있어 같이 가지도 못했다.

그러나 점원 사람들은 찹쌀 파는 할머니에게는 옮기라는 말을

안했다.

그렇게 다시 혼자 덩그라니 남은 할머니는 찹쌀을 닳아 뭉퉁해

진 되바가지에 찹쌀을 가득 쌓아올렸다.

지나가던 깔끔한 옷을 입은 할머니가 찹쌀이 얼마냐고 물어본다.

할머니는 첫 마수걸이에 기분이 좋아졌다.

쌀 한되를 팔고 나니 힘이 솟았다.

뒤이어 두 손님이 더 와서 찹쌀을 사갔다.

주머니에 만원짜리 한장과 천원짜리 여러장이 들어와 있다.

할머니는 세어보면서 기뻐한다.

다시 얼마 지나지 않아 또 찹쌀 다섯 되를 순식간에 팔아버렸다.

찹쌀 포대에는 가져온 양의 반도 안 남았다.

할머니는 이제 가벼운 마음으로 시장 상가에 있는 화장실로

가기로 마음 먹었다.

아까부터 소변이 마려왔지만 참아왔었다.

할머니는 쌀을 그냥 놔두고 오는 게 불안하지만 금방 댕겨올

요량으로 총총 걸어갔다.

화장실에 다녀온 후 할머니는 다시 찹쌀 한되를 더 팔았다.

이제 얼마 남지 않았다.

시장에서 배를 팔던 할머니는 빈박스 여러개를 손수레 싣고

오면서 웃으면 먼저 간다고 갔다.

쌀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같이 가자는 것을 거부하고 할머니는

더 팔기 위해 다시 찹쌀을 되바가지에 가득 담는다.

할인점앞에 사람들이 오후 시간이 되자 더욱더 밀려서 북적

거린다. 할인점 마크가 선명한 대형 트럭이 할인점 주차장으로

들어갈려고 한다.

할머니가 찹쌀을 파는 곳이 할인점 입구와 주차장 입구사이였

다. 트럭안의 운전사가 할머니에게 손짓을 한다.

할머니는 차안에 햇빛이 비쳐 반사되어 와서 그 손짓을 자세히

보지 못했다.

운전사는 투덜거리면서 조심스럽게 천천히 트럭을 몰았다.

그러나 사람이 많이 지나가는데다가 좁은 도로라 트럭이

입구로 돌아 들어갈 때 뒷바퀴에 쌀포대를 건들고 말았다.

찹쌀은 아스팔트 바닥에 엎질려져 버렸다.

할머니는 뭐라고 말을 하지 못했다.

직원이 옆에서 보다가 한마디 한다.

왜 할머니 안 비켜줘요. 그러니 그렇죠. 지금이라도 비키세요.

할머니는 굽은 허리를 양손으로 짚고 힘겹게 일어선다.

트럭이 지나간 후 할머니는 찹쌀을 한톨한톨 주워서 포대에 담

는다. 해는 낮아지고 그림자가 길게 기울어진다.

결국 돌이 든 찹쌀을 팔 수 없다고 결심한 할머니는 다시 쌀 포

대를 등에 지고 버스 정거장으로 걸어간다.

할인점 건물의 대형 유리창에 노을의 붉은 빛이 비춘다.

할머니는 굽은 허리에 얼마남지 않은 쌀을 들고 가는 모습이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무겁게 느껴진다.


--몇년 전에 우연찮게 마트앞에서 쌀을 파시다가 쫓겨나는 할머니를 보고

약간의 나의 상상력 덧대어서 만든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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